하지만 이러한 모든 무지도 기억이라는 현상, 아니 더 나아가 놀랄 만한 기억인 획득 형질의 유전이라 불리는 기억 현상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비교하면 대수롭지 않은 게 아닌가? 세포 물질의 이러한 작용에 대해 기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도 없었다. 아버지의 무수히 많고 복잡한 종의 속성과 개체의 속성을 난자에게 전달해 주는 정자는 현미경으로만 볼 수 있지만, 아무리 배율이 높은 현미경도 그것이 동질체라는 것밖에는 알아낼 수 없고 그것의 혈통은 규정할 수 없었다. 어떤 동물의 정자도 모두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자의 조직 상태로 보아 세포는 그것이 구성하는 상위의 유기체와 조직이 다를 바 없었다. 그러므로 이미 세포 자체도 나름대로 살아 있는 분열체, 즉 개별적인 생명 단위로 구성된 상위의 유기체였다. 그리하여 소위 가장 작은 것에서 재차 더욱 작은 것으로 나아가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원소를 하위 원소로 분해하게 되었다. 동물계가 다양한 종의 동물로 이루어져 있고, 동물과 인간의 유기체가 수많은 세포종의 동물계로 구성되어 있듯이, 세포라는 유기체도 기본적인 생명 단위의 새롭고도 다양한 동물계로 이루어져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독자적으로 성장하는 그 생명 단위의 크기는 현미경으로 볼 수 있는 크기보다 더 작았고, 모든 생명 단위는 같은 종류의 생물만을 낳을 수 있다는 법칙에 따라 독자적으로 번식하고, 분업의 원칙에 따라 공동으로 좀 더 상위의 생명 단계인 세포를 구성하고 있었다.
이것이 유전인자이자 원생자이며 원형질이었다. 한스 카스토르프는 추운 밤에 소위 이런 것들과 알게 디어 기뻤다. 그는 흥분한 상태에서 이런 원시적 자연물을 좀 더 자세하게 규명하면 어떤 해답이 나올까 하고 자문해 보았다. 생명이란 조직에 기반을 두기 때문에 이것들도 생명을 지니는 이상 유기 조직체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유기체는 원시적이지 않고 복합체이기 때문에, 그것들이 유기 조직체라면 원시적이라고 할 수 없었다. 유전인자는 그것이 유기적으로 구성하는 세포라는 생명 단위보다 하위의 생명 단위였다. 하지만 사정이 그러하다면 그것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스스로 '구성되어' 있음에, 그것도 생명의 하나의 단계로서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음에 틀림없었다. 생명 단위라는 개념은 좀 더 작은 하위의 생명 단위로, 즉 좀 더 상위의 생명을 조직하는 생명 단위로 구성된다는 개념과 같은 말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분열해 가도 생명의 특성인 동화, 성장 및 번식의 능력을 지니는 유기적 단위가 존재하는 한에는 분열이 끝나지 않은 것이다. 생명 단위라는 말이 있는 한 원시 단위는 잘못된 말이다. 생명 단위라는 개념은 하위의 구성 단위라는 내재 개념을 무한히 내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시적 생명, 그러니까 이미 생명이면서 아직 원시적이라고 하는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논리적으로는 존재할 수 없어도 결국 이와 같은 것이 어떻게든 정말로 존재함에 틀림없었다. 우연 발생이라는 생각, 즉 무생물에서 생명이 생겨났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외적 자연에서 메우려고 노력했지만 허사로 끝난 저 심연, 즉 생명과 무생물 간의 심연이 자연의 유기적 내부에서는 어떤 식으로든지 메워지고 다리가 놓아져야 했다. 분열이 계속되면서 합성은 되었지만 아직 조직은 되지 않은 채 생물과 무생물 사이를 중개하고, 분자군의 상태로 생명 단계와 단순한 화학 사이의 과도 상태를 이루는 '생명 단위'가 언젠가는 생겨남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화학적 분자에 도달한 순간, 유기 자연과 무기 자연 사이의 심연보다 훨씬 더 신비스럽게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심연, 즉 물질과 비물질이라는 심연 가까이에 이미 와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분자는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리고 이 원자는 극히 작다고 칭할 수 있을 정도의 크기도 지니지 않았기 때문이다. 원자는 극히 미소하며, 비물질적인 것, 아직은 물질은 아니지만 물질과 비슷한 에너지가 조기(早期)에 잠시 모여 있는 것이다. 이것은 아직 물질이라고는 할 수 없고, 오히려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중간물이자 경계점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유기물의 우연 발생보다 훨씬 더 수수께끼 같고 모험적인, 비물질에서 물질의 발생이라는 또 다른 우연 발생의 문제가 대두되었다. 사실 물질과 비물질 사이의 심연을 메우는 것은 유기 자연과 무기 자연 사이의 심연을 메우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으로 절실한 문제였다. 유기체가 비유기 화합물에서 생기는 것처럼 물질을 생겨나게 하는 비물질 화합물, 즉 비물질의 화학이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했다. 그리고 원자는 물질의 원충류와 단충류라는 성질로 보아 물질적이면서도 아직은 물질이 아니기도 했다. 그러나 '작다고조차 말할 수 없는' 단계에 도달하면 아예 기준이 없어져 버려, 그 말은 이미 '어마어마하게 크다'는 것과 같아진다. 그리하여 원자까지 내려간다는 것은 액면 그대로 말해 극도로 불길한 것으로 입증되었다. 물질을 최후까지 쪼개고 나누는 순간 별안간 천문학적 우주가 눈앞에 펼쳐지기 때문이다!
원자는 에너지를 띤 우주 체계였다. 그 안에서는 천체가 태양과 같은 중심체 주위를 빠른 속도로 돌고 있었고, 중심체의 힘에 의해 중심을 벗어나려는 궤도에 묶여 있는 혜성은 천공을 광년의 속도로 날고 있었다. 다세포 생물의 신체를 '세포 국가'로 불렀을 때처럼 이는 그리 호락호락한 비유는 아니었다. 분업의 원칙에 의해 조직된 사회공동체인 도시와 국가는 유기 생명에 비유될 뿐만 아니라, 그것들은 유기적 생명의 반복이다. 이처럼 자연의 깊디깊은 내부에서는 대우주의 별세계가 아주 광범위하게 반영되며 되풀이되고 있었다. 숙달된 솜씨로 몸을 완전히 싸고 있는 젊은 연구자의 머리 위에는 이러한 별세계의 무리, 덩어리, 집단 및 형상이 차갑게 반짝거리는 골짜기 위에서 달빛에 창백하게 떠 있었다. 원자 같은 태양계의 어떤 행성들 ㅡ 물질을 구성하는 이러한 태양계의 대군과 은하계 ㅡ 그러므로 이런 내계적(內界的)인 천체들 중 어떤 천체가 지구에 생명이 서식하기 알맞은 상태에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일까? 신경 중추가 얼큰히 취해 있고, 피부가 '비정상적인' 상태에 있으며, 금지된 영역에서 온갖 경험을 하고 있는 숙달된 젊은이에게는 그러한 생각이 황당무계한 공상이라기보다는 심지어 아무렇지 않을 정도로 쉽게 떠오르고, 논리적인 진실성을 띤 지극히 자명한 공상이기도 했다. 내계적인 천체가 '작다'고 왈가왈부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핑계일지도 모른다. '극히 작은' 질료 부분의 우주적 성격이 명백히 드러난 순간에는 크다든지 작다든지 하는 기준이 무용지물이 될 것이고, 이와 마찬가지로 안팎이라는 개념도 차츰 확고한 근거를 잃을 것이기 때문이다. 원자의 세계도 외계라 할 수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유기적으로 고찰하면 깊은 내부라고 말할 수 있다. 어떤 탐구자는 꿈꾸듯이 대담하게도 '은하계 동물', 즉 살, 다리 및 뇌수가 태양계에서 구성되고 있는 우주 괴물에 관해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한스 카스토르프가 생각한 것처럼, 궁극에 도달했다고 확신한 순간 모든 것을 완전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어쩌면 그의 본성의 깊디깊은 곳에 그 자신이, 또 다른 수백 명의 한스 카스토르프가 따뜻하게 몸을 감싸고, 달 밝은 추운 밤에 고산 지역을 내려다보며 발코니에 누워 얼어붙은 손가락에다 상기된 얼굴을 하고, 인문적이고 의학적인 관점에서 인체의 생명을 연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537∼542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 《제5장》,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