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의 산 -상 을유세계문학전집 1
토마스 만 지음, 홍성광 옮김 / 을유문화사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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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생명이란 무엇인가?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생명이 생기고 불타오르기 시작하는 시점은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 시점 이후부터는 생명의 영역에서 우발적이거나 우연에 가까운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지만, 생명 그 자체는 우발적으로 생겨난 것이었다. 생명에 관해 말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것이 고도로 발달된 구조를 갖고 있어 무생물계에서는 이와 비견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유기적인 조직체가 없기 때문에 죽어 있다고 말할 가치조차 없는 자연물과 생명의 가장 단순한 현상을 비교하면 허족 아메바와 척추동물 사이의 거리는 아주 하찮은 것이라서 말할 가치도 없다. 죽음이란 생명을 논리적으로 부정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생명과 생명이 없는 자연물 사이에는 아무리 탐구해도 다리를 놓을 수 없는 심연이 아가리를 벌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론으로 심연을 메워 보려고 했지만 심연이 이것을 집어삼켜 버려 그것의 깊이와 넓이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사람들은 생물과 무생물을 이어 주는 연결 고리를 발견하기 위해, 모액 속에서 결정이 이루어지듯이 단백질 용액 속에서 저절로 이루어지는 구조가 없는 생명체, 비유기적인 유기체를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기적 분화야말로 모든 생명의 전제 조건인 동시에 표명이며, 동종 생식에 의해 생겨나지 않은 생물체란 아무것도 없었다. 심해의 밑바닥에서 원형질을 건져 내고 환호성을 질렀지만 창피해서 얼굴을 붉히고 말았다. 원형질로 생각했던 것이 석고의 침전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명 현상을 기적으로 치부하지 않기 위해 ㅡ 유기 자연물과 동일한 물질로 구성되어 있어, 동일한 물질로 분해되어 버리는 생명은 그것이 우발적으로 생긴 이상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ㅡ 자연 발생, 즉 무기물에서 유기물이 생겨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이것 또한 기적이나 다름없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중간 단계와 이행 과정을 생각해 내어, 알려진 모든 유기체보다 하등이긴 하지만 자연에서 좀 더 원시적인 생명 현상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유기체의 존재를 가정하게 되었다. 현미경으로 아무리 확대해서 보아도 보이지 않는 원형 물질 같은 것을 말이다. 그리고 그러한 원형 물질이 생겼다고 생각되는 시점보다 이전에 단백질 화합물의 합성이 일어났음에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럼 생명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열이었다. 형태를 유지하면서 한순간도 동일한 상태에 있지 않은 것이 내는 열의 산물이고, 같은 상태를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다단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단백질 분자가 끊임없이 분해되고 재생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물질열이었다. 그것은 실은 존재할 수 없는 성격을 띤 존재였고, 해체와 갱신이 교차하면서 이처럼 열을 내는 과정에 있을 때에만 감미로우면서도 고통스럽게 존재의 접점에서 가까스로 균형을 유지하는 존재였다. 그것은 물질적인 것도 아니고, 정신도 아니었다. 생명은 물질도 아닌 정신도 아닌 그 중간에 있는 것으로서, 마치 폭포수 위에 걸린 무지개나 불길처럼 물질에 의해 생기는 현상이었다. 생명이 비록 물질은 아니지만 쾌감과 혐오감을 일으킬 정도로 관능적이고, 자기 자신을 느끼고 민감하게 된 물질의 후안무치(厚顔無恥)이며, 존재의 음탕한 형식이었다. 그것은 만물의 순결한 냉기 속에서 은밀하게 꼼지락거리며 움직이는 것이고, 음탕하고 불결하게 몰래 영양을 섭취하고 배설하는 것이며, 성분과 속성을 알 수 없는 나쁜 물질과 탄산가스를 내뿜으며 호흡하는 것이다. 생명은 물, 단백, 염분 및 지방으로 이루어진 것이 물컹물컹한 살로 부풀어 올라 자신의 불안정한 성질을 제어하고 본래의 형성 법칙에 따라 증식하고 자기 발전을 하며 형상을 이루는 현상이다. 그리고 그것이 형태를 얻고 고귀한 모습을 띠어 아름다움이 되었지만, 이와 동시에 관능과 욕망의 화신이기도 했다. 이러한 형태와 아름다움은 문학과 음악 작품에서 나타나듯이 정신을 담고 있지 않으며, 조형 작품의 형태나 아름다움처럼 중간적이고 정신을 소모케 하는 물질, 순결한 방식으로 정신을 감각적으로 지각할 수 있게 해주는 물질을 담고 있지도 않았다. 오히려 이러한 형태와 아름다움은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육욕에 눈뜬 물질, 분해하면서 존재하는 물질인 냄새나는 살을 담고 그것에 의해 완성되어 있었다. (526∼528쪽)

 

 - 토마스 만, 『마의 산_상』, 《제5장》,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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