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문화 한길그레이트북스 58
야코프 부르크하르트 지음, 이기숙 옮김 / 한길사 / 200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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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드디어 이해했는가? 이해하기를 원하는가? 그리스도교적 가치의 전도이자, 모든 수단과 본능과 천재들을 가지고 수행되었으며, 그 반대되는 가치고귀한 가치를 승리하게끔 했던 시도를 ······ 위대한 싸움은 이제껏 바로 이것밖에 없었다. 르네상스의 문제 제기보다 더 결정적인 문제 제기는 이제껏 없었다.
 - 니체, 『안티 크리스트』중에서

 * * *


이 책의 저자 부르크하르트는 '르네상스'에 관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역사가다. 그는 개신교 성직자 집안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신학 공부가 자신의 길이 아님을 깨닫고 이내 역사학 분야로 눈길을 돌렸고, 주로 역사학, 예술사, 문헌학, 고전학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원 클럽 맨'처럼 학자로서의 경력 대부분을 바젤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데 바쳤다.


1858년에 역사학 정교수로 부임한 그는 10년 후 고전문헌학 교수로 처음 그 대학에 부임하는 청년 니체를 만났고, 저자보다 스물여섯 살이나 어렸던 니체는 저자로부터 큰 영향을 받게 된다. 니체는 교수 생활 10년 만에 철학에 전념하기 위해 바젤 대학을 미련없이 떠나지만, 저자는 니체가 떠난 후로도 오랫동안(1893년까지) 그 대학에 남아 역사 강의에만 몰두했다. 저자는 니체로부터 '야콥 부르크하르트 때문에 인문학이 발전했다'는 극찬을 받을 정도로 역사에 큰 자취를 남겼다.("정말 진귀한 그 예외 중의 한 명이 바로 바젤 대학에 있는 나의 경외하는 지기인 야콥 부르크하르트이다 : 바젤 대학이 인문학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것은 그의 덕택이다."  - 니체, 『우상의 황혼』)


이 책은 저자가 바젤 대학의 역사학 정교수로 부임한지 불과 2년 만인 1860년에 발표한 책이지만, 저자가 이미 오랜 기간 이 책의 저술을 철저하게 준비했기 때문에 발표 즉시 기념비적 대작이 되었다. 이 책은 제목에 이미 세 가지 범주가 명백히 규정되어 있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때는 르네상스이고, 장소는 이탈리아이며, 다루는 주제는 문화사다. 르네상스가 무엇이며, 그것이 왜 하필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났는지, 또한 르네상스가 이탈리아의 문화, 더 나아가 유럽 전체와 근대 세계를 어떻게 광범위하게 변화시켰는지가 이 책이 다루는 핵심 주제이다.


이 책과 저자에 대한 명성은 굳이 니체의 몇몇 철학책 후미진 구석에서 그의 이름을 찾기 위해 애쓸 필요가 정도로 광범위하게 계속 확산되면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르네상스에 대한 우리의 관념은 야콥 부르크하르트의 창조물이다."(독일에서 편찬된 『세계사 대계』)라는 웅변적 문장이 단적으로 말해주듯이, 저자가 이 책에서 펼쳐놓은 르네상스 연구는 학계에서 하나의 정설로 통념화된지 오래다.


그가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한 최초의 생각'을 떠올린 건 1847년에 로마를 방문하였을 때였다. '고대의 부활'을 통해 '중세의 미망'에서 깨어나 '인간의 재발견'으로 이어진 문예부흥이 르네상스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저자가 '로마'에서 '르네상스'를 떠올렸던 건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미 오래 전부터 '폐허의 도시 로마'는 숱한 시인들과 역사가들에게 '특별한 명상'에 잠기게 만든 도시였다. 르네상스 시대의 인물인 페트라르카와 단테는 물론, 훗날『로마제국쇠망사』를 쓴 에드워드 기번이나 니부어에 이를 때까지도 '폐허의 도시 로마'를 휘감던 공기와 저녁 노을은 '불현듯' 천재들로 하여금 웅편거작들을 쓸 결심들을 계속 불러일으켰다. 단테의 말대로, "로마 성벽의 돌들은 당연히 경외심을 품고 대해야 하고, 이 도시를 떠받치고 있는 대지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 이상으로 귀중하다."


사실 부르크하르트 이전에도 르네상스라는 용어와 개념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다. 이 개념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 인물들은 바사리, 마키아벨리, 에라스무스, 클로드 졸리, 볼테르, 괴테 등이 꼽힌다. 이 가운데 볼테르와 괴테는 거의 '르네상스의 역사'를 쓸 뻔했던 인물로 꼽힐 만큼 '르네상스 개념'에 정통했던 인물들이다. 훗날 네덜란드의 역사가 호이징가는 볼테르가 『르네상스의 시대』또는 그와 유사한 제목의 역사서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볼테르는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는 잘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결정적으로 '이탈리아'에 대해서 거의 모르고 있었다는 한계가 있었다. 결국 오늘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는, 부르크하르트야말로 르네상스 개념을 가장 먼저 학술용어로, 또 일반적인 교양언어로 만든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애초에 부르크하르트는 이 작품을 쓰기 위해 르네상스 시기의 예술사와 문화사를 결합하고자 하는 웅대한 구상을 품고 방대한 연구에 착수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토록 야심찬 연구 작업이 끝내 완결에 이르지 못찬 채 교착 상태에 머물던 중, 그는 결국 예술사 부문(회화,건축,조각)을 따로 떼어내고 문화사를 다룬 책으로 체계를 바꿔 이 책의 출간에 이른다. 그 과정이 몹시도 지난했던 모양이다. 저자 스스로 이 작품을 두고 '역경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별칭으로 부를 정도였다. 그는 이 작품에 특별히 시론(試論)이라는 부제를 붙였는데, 그 이유는 그가 언제나 스스로 비전문가임을 자처하면서 전체에 대한 조망 능력을 지닌 '딜레탕티즘'을 강조하는 성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이 작품 초판본을 두고 고교 은사에게 보낸 편지에서 표현한 대로, '기존의 그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은, 마치 거친 들에 피어난 야생화와도 같으며, 저자가 상상력을 충분히 발휘할 기회를 가졌고 사료의 기록을 멋지게 활용하고 있다고 믿을 만큼' 자신의 작품에 대해 남다른 자부심은 지녔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역사서라고까지 내세우는 듯한 태도를 취할 순 없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부르크하르트가 역사를 서술하는 방식은 자신의 사후 출간된 작품인『세계사적 고찰』에서 제시한 포텐츠론(Potenzenlehre)으로 설명된다. 즉 역사는 국가 · 종교 · 문화라는 세 개의 잠재력들(Potenzen) 사이의 규제 · 견제 · 대립 · 포괄 · 보완 등 변증법적 상호작용 속에서 하나의 통일적인 상을 형성해간다는 내용의 역사이론이다. 이 책에서 크게 6부로 나눈 구성 또한 저자의 역사 서술 방식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정치 상황은 '제1부 '인공물로서의 국가'에서 다루고, 문화 상황은 제2부에서 제5부에 이르는 '개인의 발전' '고대의 부활' '세계와 인간의 발견' '시교와 축제'에서 다룬다. 당시의 사회 풍습과 종교 상황은 제6부 '관습과 종교'에서 다룬다.

이 책의 핵심을 이루는 내용들은 주로 '문화'를 다루는 장들에 담겨 있다. 고전과 고대의 부흥을 통한 인간의 자아와 세계의 발견, 그에 따른 개성의 성장, 자유주의와 인문주의의 발전 등은 우리가 흔히 르네상스에 대해 갖고 있는 기본 개념들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부르크하르트의 서술이 빛나는 점은 '르네상스의 문화'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의 정치 상황과 도덕적 풍조와 윤리 관념을 포함한 '관습과 종교'를 함께 고려하여 입체적으로 세세히 조명한다는 점이다. 수많은 교황과 황제가 끊임없이 반목과 견제를 주고 받으며 대립하는 당시 이탈리아의 특수한 정치 상황에 대한 저자의 해박한 연구와 묘사는 독자들을 단번에 르네상스 시대의 궁전과 교황청 안으로 바싹 끌어당길 만큼 자세하고 생생하다. 굳이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나 단테의 『신곡』가운데 유명한 대목들을 따로 인용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당시 이탈리아의 극도로 혼란스럽고 드라마틱한 정치적 격변 상황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메디치 가문에 대한 숱한 암살 음모, 교황의 사생아였던 체사레 보르자의 상상을 초월하는 잔악무도한 학살극, 온갖 잔혹한 군소국가 폭군들의 횡포와 만행, 용병대장들의 천인공노할 배반과 찬탈 등은 셰익스피어의 역사극보다 훨씬 더 드라마틱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르네상스의 문화가 봄을 맞은 자연처럼 사방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던 시대에 당시 이탈리아 사람들의 정신적인 풍토와 사회적인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도 중요하다. 언어와 관습, 사교와 축제, 가족과 결혼, 음식과 질병 등 아주 디테일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당시의 사회상을 그대로 들여다 보는 듯한 저자의 설명은 '관습과 종교'에 더없이 세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배우자의 부정에 대한 복수극, 수도사와 참회 설교사들의 타락, 점성술과 마법이 만연하던 풍조, 개인주의와 이기주의의 확산, 갈수록 타락하는 종교에 대한 불신과 세속화 등은 숱한 풍속화와 전기(傳記) 또는 문학 작품 속 묘사 등에 대한 설명과 전거 자료를 통해 탄탄하게 뒷받침되어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핵심으로 내세우는 주제는 '이탈리아인들의 내면 세계에 대한 탐구'로부터 주로 도출된다. 왜 하필 이탈리아 사람들이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등장하여 '유럽의 근대를 탄생시킨 원동력'으로 이어졌느냐 하는 문제를 단순히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몇몇 천재들, 가령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마키아벨리,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문예활동을 적극 지원한 몇몇 탁월한 교황과 군주들의 존재 덕분으로 설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극도로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은 개인이 권력을 얻고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자신의 능력과 재능에 의지할 수밖에 없던 환경을 만들었다. 전통적 기준이나 권위로부터의 해방이 곧바로 개인주의가 싹트고 성장할 수 있는 비옥한 토양이었다. 개인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수많은 재능을 타고난 사람들과 개성 넘치는 다양한 인간들이 자신을 마음껏 표현할 수 있는 기회와 자극이 그들에게 비로소 주어졌던 것이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내면 깊숙하게 자리잡은 '개성 강한 민족성'이 이런 경향을 다른 인접국가 사람들보다 더욱 예민하게 자극했음에 틀림없다.

사실 중세 암흑시대에 교회 건축물의 무게에 깔려 땅속에 묻히고 질식했던 수많은 고대 그리스·로마 고전에 대한 재발견 만으로도 이탈리아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유리한 입장에 있었다. 라틴어가 광범위하게 학습된 점도 이점이었다. 빛나는 로마 시대를 장식했던 인물들, 가령 베르길리우스, 오비디우스, 키케로, 리비우스 등이 남긴 탁월한 작품들도 '개성의 발견'에 중요했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고대 로마'가 그들의 영광스러운 과거였다는 '끈끈한 유대감'부터 남들과 달랐던 셈이다. 제노바 사람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일로 대표되는 지리적 탐험 외에도 갈릴레오로 이어지는 자연 과학의 진보 또한 이탈리아에서 유독 눈부셨다.

부르크하르트의 '세계와 인간의 발견'은 일견 재레드 다이아몬드 교수가 쓴『총·균·쇠』의 일부 대목들을 연상시킬 때도 없지는 않다. 그러나 부르크하르트가 이탈리아 국민들의 '세계와 인간의 발견'에 대한 선구자적 역할을 다이아몬드 교수와 유사한 방식으로 쉽게(?) 결론을 도출하지 않는 점은 도리어 매력적이다. 주로 '이탈리아의 지리적 이점'에 힘입어 이탈리아인들이 그런 식으로 움직였던 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들, 가령 베네치아와 나폴리, 피렌체와 제노바 등이 지중해를 가까이 끼고 있는 덕분에 일찍부터 드넓은 세계와 활발히 접촉할 수 있었다는 점을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부르크하르트는 줄곧 이탈리아 사람들의 내면 세계에 자리잡은 독특한 민족성과 개인의 삶을 중시하는 심리 등을 보다 더 근본적인 '르네상스의 원동력'으로 예민하게 포착한다.

사실 부르크하르트의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 에 대한 연구는 너무나 방대하고 세세한 문헌 자료까지 모조리 들춰보는 방식으로 치밀하게 이뤄졌다. 그래서 르네상스 시대의 이탈리아에 대한 예비 지식을 미리 어느 정도 갖추지 못한 일반 독자들에겐 저자가 쓴 평범한 문장들을 읽을 때조차 편안한 호흡으로 따라가기 벅찰 때가 많을 정도로 전문적이다. 그래서 저자가 경쾌한 속도로 가볍게 서술하는 문장들을 읽을 때조차 우리에게는 몹시 생경한 인물이나 지명 혹은 낯선 용어들 때문에 방해받고 당황할 때도 많다. 또한 문장들과 행간 곳곳에 숨겨진 의도적인 생략과 압축뿐 아니라 다양한 함축과 비약들도 독자들이 쉽게 흡수하기 벅찰 때가 있다. 이런 측면들은 아무래도 독자와 저자와의 사이에 존재하는 '지식 수준의 현격한 차이' 때문이니 결국 어쩔 수 없는 문제다. 때로는 저자가 수십 권 혹은 수백 권의 책들을 샅샅히 찾아 읽고 연구한 내용들조차 불과 몇 줄의 문장 속에 뭉뚱그려 간략하게 짚고 넘어갈 때도 적지 않은 듯하다. 숱하게 옆길로 샐 수 있는 '군더더기 설명의 유혹들'을 저자는 매번 단호하게 뿌리치고 잘도 넘긴다. 그럴 때마다 저자는 우리에게 친절한 안내를 덧붙이곤 한다. 그런 부분들까지 세세하게 탐구하고 분석하는 일은 이 책의 과제가 아니라고 말이다. 그러니 이 책 한 권을 쓰기 위해 저자가 읽은 책이 족히 수백 권을 넘어 수천 권에 이를 정도가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생긴다.

가령 다음과 같은 대목을 읽고 저자의 끝모를 탐구심과 놀라운 상상력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독자가 몇이나 될까.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만사를 이룰 것이니, 그는 수고도 위험도 손해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를 나 자신을 통해 시험해본 결과 다음의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 강렬한 원동력에서 출발하지 않는 인간의 행동은 헛되고 무의미하다고." 물론 구이차르디니의 일생을 기록한 다른 문헌들을 읽어볼 때, 그가 여기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명성이 아닌 명예심이라는 점을 덧붙여두어야 하겠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그 어떤 이탈리아인보다 날카롭게 지적한 사람은 라블레이다. 물론 나는 이 이름을 우리의 연구에 끌어대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 이 비상하고 언제나 괴이쩍은 프랑스인이 남긴 글들은 형식과 미가 없는 르네상스가 어떤 모습일지를 대략이나마 알게 한다. 하지만 텔렘 수도원의 이상향을 그려낸 그의 글은 문화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작품이라서, 여기에 들어간 최고의 상상력이 없었다면 16세기의 모습은 불완전했을 것이다.

라블레의 작품에 나오는 자유의지의 수도회 남녀들에 대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규칙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 그것뿐이었다. 좋은 가문에서 태어나 좋은 교육을 받고 훌륭한 친구와 사귀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덕을 행하고 악을 피하는 본능과 충동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이다. 그것을 가리켜 그들은 명예라고 불렀다."

이것은 18세기 후반기를 고무하여 프랑스 혁명에 길을 터준, 인간 본성의 선함에 대한 바로 그 믿음이었다. 이탈리아인도 저마다 자기 안에 있는 고귀한 본성에 눈을 돌렸다. …… (519∼520쪽)

결국 이 책은 전체적으로 일반화해서 얘기하자면 '무엇에 대해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쓰여진 몹시 전문적인 책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 책이 다루는 핵심 주제인 '르네상스'가 인류 역사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을 한번쯤 심각하게 고려해 본 사람이라면 그 누구라도 실망시키지 않을 만큼 '르네상스'에 대해 충분히 방대한 연구와 예리한 관찰들을 놀라운 필치로 그려낸 작품이 바로 이 책이라는 사실도 우리는 인정해야만 한다. 그래서 이 책이 전문적이면서도 방대하고 예리하지만 읽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는 점은 이 책의 단점이자 또한 장점일 수밖에 없다. 인류의 '생각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놀라운 시기였던 '이탈리아 르네상스'에 대한 숱한 놀라운 이야기가 이 책에 거의 다 담겨 있다고 봐도 좋다. 무려 1,167개에 달하는 방대한 주석은 부르크하르트의 연구의 깊이를 방증하고도 남는다.(이처럼 방대한 주석이 딸린 책으로는 막스 베버의『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도 빼놓기 어렵다. 그 책에 딸린 저자와 역자의 주석을 모두 합하면, 내가 읽은 번역본으로는 1,242개다. 막스 베버도 그 책에서 부르크하르트의 이 책을 인용했다. 베버는 '이 한 줄이 너의 해석을 천 년 동안 기다려 왔다, 라는 마음가짐이 없다면 학문을 하지 말라'고 말했는데, 물론 그 말은 부르크하르트에게 적용해도 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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