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한 권에 문자 한 개씩을 표제(表題)로 삼아 네가 쓰려고 했던 책들. 자넨 그의 에프(F)를 읽었나? 암 읽었지, 그러나 난 큐(Q)가 더 좋아. 그래, 하지만 더블류(W)가 근사하지. 오 그래, 더블류. 초록빛 타원형 잎사귀에, 깊이깊이 몰두하여, 쓴 현현(顯現)(에피파니)들, 만일 네가 죽더라도 알렉산드리아를 포함하여, 세계의 모든 큰 도서관들에다 기증하게 될 너의 책들을 기억하라. 수 천년, 억만 년 후에도 어떤 이가 거기서 읽게 되리라. 피코 델라 미란돌라처럼. 하아, 바로 고래(鯨) 같은 이야기. 우리가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나 버린 저자(著者)의 이러한 신기한 책을 읽게 되면 그 저자와 자신이 한때 같이 있는 기분이 들지 …
(105쪽)
-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스』, <3. 프로테우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