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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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의 폐기

만약에 권력이 지배자에게 위양된 의지의 총화(總和)라고 한다면, 푸카체프는 대중의 의지의 대표자인가? 만약에 그렇지 않다고 한다면, 왜 나폴레옹 1세는 대표자인가? 나폴레옹 3세는 불로뉴에서 체포되었을 때는 죄인이었는데, 그 후 그가 체포한 자들 쪽이 왜 죄인이 되었는가?

때로는 2,3명의 사람밖에 관여하지 않는 궁정 혁명의 경우도 역시 대중의 의지는 새로운 인물로 이동하는가? 국제 관계의 경우, 국민 대중의 의지는 정복자에게 이동하는가? 1808년에 우리 군이 프랑스군과 동맹해서 오스트리아와 싸움을 했을 때 나폴레옹으로 이동하였는가?

이들 물음에 대해서는 세 가지로 대답을 할 수가 있다.

(1) 대중의 의지는 항상 그들이 고른 한 사람 또는 몇몇 사람의 지배자에게 무조건 위양된다. 따라서 새로운 권력의 발생은 모두, 즉 일단 위양된 권력에 대한 투쟁은 모두 참다운 권력에의 침해로밖에 간주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다.

(2) 대중의 의지는 일정한 어떤 조건하에서 조건부로 지배자에게 위양된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고, 권력에 대한 압력과 충돌 그리고 나아가서는 그 폐기까지도 지배자가 권력을 위양 받은 바탕이 되는 조건을 지키지 않은 결과 생긴다는 것을 분명히 한다.

(3) 대중의 의지는 지배자에게 위양되지만 잘 알 수 없는 또는 분명치 않은 조건하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여러 권력의 발생과 그 투쟁이나 성쇠는 대중의 의지가 어떤 인물에서 다른 인물로 위양되는 경우의 알 수 없는 조건을 지배자가 어느 정도 수행하고 있는가에 따라 생긴다는 것을 인정한다.(1622-1623쪽)

 


의지의 자유 문제의 핵심

비록 분명히 표명되지 않고 있다 해도, 인간의 의지의 자유라는 문제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도처에서 느낄 수가 있다.

진지하게 생각하는 역사가들은 어쩔 수 없이 이 문제에 도달한다. 역사의 모든 모순과 애매함 그리고 역사학이 나아가고 있는 잘못된 길의 근원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데에 귀결된다.

만약에 개개인의 의지가 자유라면, 즉 각자가 바라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면, 역사는 모두 맥락이 없는 우연의 집합에 지나지 않는다.

가령 1000년 동안에 무수한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이라도 자유롭게 자기가 바라는 대로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면, 법칙에 위배되는 그 사람의 단 하나의 자유로운 행위만으로, 전 인류에게 그 어떤 법칙이 존재한다고 하는 가능성이 파괴되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한편 만약에 인간의 행위를 지배하는 법칙이 하나라도 있으면, 자유의사 같은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의지는 그 법칙에 종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모순이야말로 인류 최고의 두뇌를 사로잡아, 고대로부터 그 거대한 의의를 모두 포함해서 제기되고 있는 의지의 자유 문제의 핵심이다.(1637쪽)


 

1000번째로 착수할 때에도

같은 조건에서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으면, 인간은 전과 같은 일을 한다는 것을 경험이나 논리적 판단이 아무리 인간에게 제시해도, 인간은 같은 조건과 같은 성격으로, 항상 같은 결과로 끝난 행위에 1000번째로 착수할 때에도 역시 경험하기 전과 마찬가지로 자기는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미개인이건 사상가이건 어떤 인간도 같은 조건 하에서 두 가지 행위를 생각한다는 것을 논리적 판단과 경험이 제아무리 반박할 수 없도록 증명해도 이 (자유의 본질을 이루고 있는) 무의미한 생각 없이는 삶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그것이 아무리 불가능하다고 해도 그것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왜냐하면 이러한 자유의 생각 없이는 인간은 삶을 이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한 순간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살 수가 없을 것이라고 하는 것은, 인간의 모든 욕망 또는 삶에의 의욕은 자유 확대의 요망이기 때문이다. 부와 빈곤, 명성과 무명, 권력과 예종(隸從), 힘과 무력, 건강과 병, 교양과 무지, 노동과 여가, 포식과 기아, 선과 악은 자유의 정도의 대소(大小)에 지나지 않는다.(1639쪽)


 

미장이

인간이 어느 때인지도 모르는 시기에 원숭이로부터 생겼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이 언제인지도 모르는 시대에 한줌의 흙으로부터 생겼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전자에서는 x는 시간이고, 후자에서는 x는 발생이다). 그리고 인간의 자유의 의식이 인간이 속하고 있는 필연의 법칙과 어떻게 해서 결부되느냐는 문제는, 비교생리학이나 동물학에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개구리, 토끼, 원숭이 등에는 근육, 신경 활동밖에 관찰되지 않지만, 인간에게는 근육, 신경 활동과 의식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자연과학자와 그 숭배자들은 교회 벽의 일면만을 칠하도록 고용된 사람이, 일을 감독하는 사람이 없는 것을 기화로 무턱대고 창도 성상도 발판도 아직 굳지 않은 벽도 회반죽으로 모두 칠하여, 미장이 입장에서 보자면 모든 것이 평평하고 밋밋하게 된 것을 보고 기뻐하고 있는 미장이와 같은 것이다.(1641쪽)



경험 과학과 역사

경험 과학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을 우리는 필연성의 법칙이라고 부르고,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을 생명력이라고 부른다. 생명력이란 우리가 생명의 본질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미지의 것을 나타낸 것이다.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우리는 필연성이라고 부르고, 알 수 없는 것을 자유라고 부른다. 역사에 있어서의 자유란, 우리가 인간 생활의 법칙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제외한 나머지 알 수 없는 것의 표현 바로 그 자체이다.(1652쪽)



 

만약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역사에서 인간의 자유를 역사적인 사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으로서, 즉 법칙에 종속되지 않는 힘으로서 인정한다는 것은, 천문학에서 천체의 운동에 자유로운 힘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것을 인정하는 것은 법칙의 존재, 즉 모든 종류의 지식의 가능성을 분쇄하는 것이 된다. 비록 하나라도 자유롭게 운동하는 천체가 존재한다고 하면, 이미 케플러나 뉴턴의 법칙은 존재하지 않고 천체의 운동은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 만약 인간의 자유로운 행위가 하나 있다고 한다면, 역사의 법칙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고 역사상의 사건을 전혀 상상할 수가 없다.(1652-1653쪽)

 

 

천문학과 역사. 자구의 부동성과 개인의 자유

한때의 천문학 문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역사 문제의 경우도 견해의 차이는, 모두 눈에 보이는 현상의 척도가 되어 있는 절대적 단위를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천문학에서 그것은 지구의 부동성(不動性)이었다. 역사에서는ㅡ그것은 개인의 독립ㅡ자유이다.

천문학에서 지구의 운동을 인정하는 어려움은 지구는 움직이지 않는다고 하는 있는 그대로의 감각과, 천체가 움직이고 있다고 하는 역시 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거부하는 점에 있다. 마찬가지로, 역사에서 개인이 공간, 시간, 인과의 법칙에 종속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어려움은, 자기의 개성은 속박되어 있지 않다고 하는 있는 그대로의 감각을 거부하는 데에 있다그러나 천문학에서 새로운 견해가 분명히 우리는 지구의 운동을 느끼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지구의 부동이라는 것을 인정하면 우리는 난센스에 도달한다. 그런데 우리가 느끼고 있지 않은 운동을 인정하면 우리는 법칙에 도달한다고 말한 것과 마찬가지로, 역사에서도 새로운 견해는 이렇게 말한다. "분명히 우리는 자신의 속박을 느끼고 있지 않으나, 우리의 자유를 인정하면 난센스에 도달한다. 그런데 우리가 외계, 시간, 인과에 속박되어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 법칙에 도달한다." (1655-16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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