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2 동서문화사 월드북 70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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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과 천재

 

역사가들이 인정하고 있는 바와 같이 러시아나 프랑스의 위신, 유럽의 균형, 혁명 사상의 확산, 전반적인 진보 등, 여하간 일정한 목적의 달성을 향하여 위대한 인물들이 인류를 이끌어간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연과 천재의 관념 없이는 역사의 현상을 설명할 수가 없다.

 

만약에 현 세기(19세기) 초엽에 유럽에서 있었던 몇 가지 전쟁의 목적이 러시아의 위신을 유지하는 데에 있었다고 한다면, 그 목적은 그 이전의 모든 전쟁이 없어도, 침략이 없어도 달성할 수가 있었다. 만약에 목적이 프랑스의 위신을 유지하는 일이라면 그 목적은 혁명이 없어도, 제국이 없어도 달성할 수가 있었다. 만약에 목적이 사상의 보급이라면, 책의 인쇄가 군대보다도 훨씬 잘 그것을 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목적이 문명의 진보라면 인간이나 그 재산을 무로 돌리는 대신에, 다른 더 이치에 닿는 문명 보금의 방법이 있다는 것은 매우 간단하게 추측할 수가 있다.

 

도대체 어째서 이것이 이런 형태로 생겼고 다른 형태가 되지 않았을까?

 

왜냐하면 이것은 이런 형태로 생겼기 때문이다. "우연이 상황을 만들고 천재가 그것을 이용했다"고 역사는 말한다.

 

그러나 우연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천재란 도대체 무엇인가?

 

우연이나 천재라고 하는 말은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나 그 어떤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정의를 내릴 수가 없다. 이 말은,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어떤 단계를 나타내는 데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왜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알지를 못한다. 알 수 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알려고 하지 않고 우연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일반적인 인간의 성질로부터 동떨어진 행위를 일으키는 힘을 본다. 왜 그것이 생기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천재라고 말하는 것이다.(1542-1543쪽)

 

 

 

우연과 역(逆)의 우연

 

무엇 하나 자기에게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뿐만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의의를 덧붙여서 모든 자기의 범죄를 자랑하는 것을 본질로 삼고 있는 영광과 위대한 이상, 이 사나이와 그와 관계가 있는 사람들을 인도할 이상이, 자유분방하게 아프리카에서 형성된다. 그가 무엇을 하든 모두 성공한다. 그는 전염병에 걸리지 않는다. 포로 학살의 잔인성은 그의 좌가 되지 않는다. 어린이처럼 경솔하게, 이유도 없이 비열하게 아프리카를 떠나 고통받고 있는 동료를 그대로 남겨둔 것은 그의 공적으로 여겨지고, 적의 함대는 또다시 그를 놓치고 만다. 자기가 행한 행운의 범죄에 기분이 좋아진 그가 자기의 역할을 다할 상태가 되어 아무런 목적 없이 파리로 돌아왔을 때, 1년 전에 그를 파멸시켰을지도 모르는 공화국 정부의 붕괴는 극한에 달해 있었고, 당파의 때가 묻지 않은 인간인 그의 존재는 지금 정부의 의의를 높일 뿐이었다.

 

그 사람만이, 이탈리아와 이집트에서 만들어낸 영광과 위대(偉大)의 이상,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난 자기 찬미, 대담한 범죄, 그럴듯한 거짓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만이 이제 일어나려고 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기를 기다리고 있는 곳에 필요한 인간이었으므로 거의 자기의 의지에 관계없이, 그의 우유부단과 무계획, 그가 하는 모든 잘못에도 불구하고 그는 권력 획득을 목적으로 하는 음모에 휘말려 그 음모가 성공을 거둔다.

 

우연이, 무수한 우연이 그에게 권력을 주고 모든 인간들이 상의라도 한 것처럼 그 권력의 강화에 협력한다. 우연이, 당시의 프랑스 총재들의 성격을 그에게 복종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든다. ……

 

…… 그런데 갑자기 그때까지 계속된 일련의 승리에 의해서, 실로 시종일관해서 그를 예정된 목적지로 이끌어온 우연과 천재 대신에, 보로지노의 코감기에서, 혹한과 모스크바에 불을 붙인 하나의 불꽃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역(逆)의 우연이 나타난다. 그리고 천재 대신에 유례없는 어리석음과 비열함이 정체를 드러낸다.

 

침략자는 패주하여 뒤로 물러났고, 다시 패주해서 모든 우연이 이제는 그의 편을 들지 않고 끊임없이 그에게 등을 돌린다.

 

파리ㅡ최종 목적지에 도착한다. 나폴레옹 정부와 군대는 붕괴된다. 나폴레옹 자신은 이제 의미를 가지지 않는다. 그의 모든 행위는 분명히 비참하고 혐오스럽다. 그런데 또 설명할 수 없는 우연이라는 것이 생긴다. 동맹자들이 나폴레옹을 자기들의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하고 미워한다. 힘과 기능을 빼앗기고 악행과 간지(奸智)가 폭로된 이상, 그는 10년 전이나 1년 후에 그랬던 것처럼 동맹자의 눈에 무법한 악당으로 비쳐야 했다. 그런데 무엇인가 알 수 없는 우연에 의하여 아무도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10년 전이나 1년 후에는 무법의 악당이라고 여겨진 인간이 프랑스에서 이틀이면 갈 수 있는 섬으로 보내어지고, 그 섬이 그의 영지로 주어지고, 친위대와 무엇인가를 위하여 지불되는 수백만의 돈도 따라간 것이다.

 

(…)

 

프랑스를 황폐하게 만든 인간이 혼자서 음모도 없이 병사도 거느리지 않고 프랑스로 되돌아온다. 보초라면 누구나 그를 잡을 수가 있었는데 기묘한 우연으로 누구 하나 그를 잡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모두가 하루 전에 저주하고 1개월 후에도 저주하게 될 이 인간을 기쁨으로 맞이한다.

 

이 인간은 총괄적인 마지막 막을 납득이 가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아직도 필요한 것이다.

 

그 막은 끝난다. 마지막 연기가 끝난다. 배우는 옷을 벗고 눈썹과 입술연지를 씻어내도록 명령된다ㅡ그는 이제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인간이 고독하게 자기의 섬에서 스스로 자기에게 비참한 희극을 연출하고, 정당화가 이제 필요 없을 때에 자기 사업을 정당화하려고 쩨쩨한 책략을 꾸미며 거짓말을 하고,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사나이를 인도하고 있었을 때, 사람들이 힘이라고 착각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던가를 온 세계에 알리는 데에 수년의 세월이 흐른다.

 

모든 일을 꾸몄던 자가 연극이 끝났을 때 배우의 옷을 벗기고 우리들에게 보인다.

 

"보시오. 당신들이 믿었던 것을! 이거요! 이제 알겠죠? 이 사나이가 아니라 내가 당신들을 움직였다는 것을."

 

태양이나 우주 공간의 하나하나의 입자는 그 자체로서 완결되어 있지만, 너무나 거대해서 인간으로서는 알 수가 없는 전체적인 것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각 개인도 자기 자신 속에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그 목적은 인간에게는 알 수 없는 전체의 목적에 유용하게 사용하기 위한 것이다.

 

꽃에 머물고 있던 벌이 어린이를 쏘았다. 그래서 어린이는 벌을 무서워하고, 벌의 목적은 사람을 쏘는 것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꽃 속에서 꿀을 따고 있는 벌에 정신이 팔려, 벌의 목적은 꽃의 향기를 들이마시는 일이라고 말한다. 양봉가들은 벌이 꽃가루를 모아 벌집으로 가져오는 것을 보고 벌의 목적은 꿀을 모으는 일이라고 말한다. 다른 양봉가는 더 자세히 벌들의 생활을 연구하여, 벌은 새끼를 기르고 여왕벌을 양성하기 위해 꽃가루를 모으고 있으며 그 목적은 종(種)의 유지에 있다고 말한다. 식물학자는 암수가 서로 다른 식물의 꽃가루를 몸에 묻혀 암꽃으로 날아옴으로써 벌이 수분(受粉)을 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식물학자는 그것을 벌의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식물의 확산을 관찰해서 벌이 그 확산을 돕고 있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관찰자는 이것이 벌의 목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벌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지(人知)가 분명히 밝힐 수있는 제1, 제2, 제3의 어느 목적에 의해서도 모두 밝혀졌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 목적을 해명하는 데에 있어 인지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궁극적 목적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이 더욱더 분명해진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벌의 생활과 그 이외의 생활 현상과의 상관을 관찰하는 것뿐이다. 역사적 인물과 여러 국민의 목적도 마찬가지다. (1545-1551쪽) 

 

 

 

시시한 대상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은 아무리 시시한 것으로 보여도 하나의 대상에 전적으로 몰두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또 그것을 향해 주의를 집중하면, 무한히 커지지 않는 시시한 대상은 없는 것이다.(1575쪽)

 

소년의 기억에 없는 아버지는 마치 하느님처럼 여겨져 그 모습을 공상할 수도 있었고, 그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조이고 슬픔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1584쪽)

 

(나의 생각)

 

어릴 때 부모를 잃은 톨스토이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한 묘사이다.

 


 

늙은 여자

 

이러한 늙은 여자의 상태는 아무도 그것을 화제로 삼은 일은 없었으나 집안사람 모두에게 알려져 있고, 그녀의 이러한 욕구를 채우기 위해 모두가 될 수 있는 대로 노력을 하였다. 다만 니꼴라이, 삐에르, 나따샤, 마리야 사이에서는 서로 가끔 교환되는 시선이나 미소 같은 것 속에, 백작 부인의 상태를 서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시선에는 그 이외에 또 하나의 일을 말하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이제 이 인생에서 자기가 할 일을 다 했다, 이러한 일은 이 사람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도 모두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이다, 한때는 소중하고 생명이 충만해 있었으나, 지금은 이처럼 비참한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의 말을 듣고 그녀에게 순종함으로써 자기를 억제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라는 뜻이 나타나 있었다. 죽음을 잊지 말아라ㅡ하고 그 시선은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온 집안 식구 중에서, 멍청한 사람과 어린아이들만이 이것을 이해 못하고 백작 부인을 피하고 있었다.(1587쪽)

 

 

 

플루타르코스의 책

 

니꼴렌까는 방금 눈을 뜨고 식은땀을 흘리고 자기 침대에 누운 채 자기 앞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무서운 꿈을 꾸다가 눈을 뜬 것이다. 그는 꿈속에서 투구를 쓰고 있는 자기와 삐에르를 보았다ㅡ플루타르코스의 책(그리스, 로마의 「영웅전」)에 쓰여 있는 것 같은 투구였다. 그는 삐에르 아저씨와 함께 대군의 선두에 서서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1607쪽)

 

 

 

아버지도 만족해하실 일을 하겠다

 

'아버지가' 그는 생각하였다. '아버지가(집에는 잘 닮은 초상화가 두 개 있었는데 니꼴렌까는 한 번도 안드레이를 인간의 모습으로 떠올린 일은 없었다) 나와 함께 있어서 나를 만져주었다. 아버지는 나를 옳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아버지는 삐에르 아저씨를 옳다고 생각하신 것이다. 비록 그 분이 뭐라고 하시든 간에 나는 이것을 하겠다. 왼손잡이 무키우스(불굴의 용기를 보이기 위해 적 앞에서 자기의 오른팔을 태웠다고 하는 로마의 전설적인 용사)는 자기 팔을 태웠다. 내 인생에도 같은 일이 없으란 법은 없잖아. 나는 알고 있다. 모두 내가 공부를 하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나는 공부를 그만 둔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하는 거다. 나는 단 한 가지 하느님에게 빈다. 나에게 플루타르코스의 사람들에게 일어난 것 같은 일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그러면 나는 같을 일을 하겠다. 더 훌륭하게 하겠다. 모두가 나를 알고 모두가 나를 좋아하고 모두가 나에게 열중하게 된다.’ 그러자 갑자기 니꼴렌까는 가슴에 흐느낌이 복받쳐 오는 것을 느끼고 울기 시작하였다.

 

"기분이 언짢아요?" 데사르가 물었다.

 

"아뇨." 니꼴렌까는 대답하고 베개를 베고 누웠다. '저분은 상냥하다, 좋은 분이다, 나는 그분을 좋아한다.' 그는 데사르를 생각하였다. '하지만 삐에르 아저씨는! 아, 정말로 훌륭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아버지! 아버지! 그렇다, 나는 아버지도 만족해하실 일을 하겠다 ……."(16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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