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 동서문화사 월드북 6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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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백 년이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 같아

 

"아니야, 난 그런 건 믿을 수 없어." 쏘냐는 되풀이했다. "나는 납득이 가지 않아. 네가 꼬박 일 년 동안 한 사람을 사랑하고 있다가, 갑자기……. 넌 그 사람을 세 번 만났을 뿐이잖아? 나따샤, 나는 널 믿을 수가 없어. 넌 농담을 하고 있는 거야. 단 사흘 동안에 모든 것을 잊고 그런 식으로……."

 

"사흘!" 나따샤는 말했다. "나는 백 년이나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만 같아. 난 그이 이전에는 아무도 사랑한 일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게다가 아무도 그이만큼 사랑한 일이 없어. 넌 이것을 모르고 있어, 쏘냐. 잠깐만 여기 앉아." 나따샤는 그녀를 껴안고 키스하였다. "이런 일이 있다는 것은, 나도 이야기에서 들은 적은 있어. 너도 틀림없이 들었을 거야. 그러나 이런 사랑을 경험한 것은 난 이번이 처음이야. 전하고는 달라. 그 사람을 보자마자 나는 느꼈어. 이 사람은 나를 지배할 사람이다, 나는 이 사람의 노예다, 나는 이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이야. 그래, 나는 노예야! 그 사람의 분부라면 나는 무슨 일이라도 하겠어. 이 기분 넌 모를 거야. 넌 나에게 어떻게 하라는 거야, 쏘냐?" 나따샤는 행복스러운, 그러나 겁먹은 듯한 얼굴로 말했다.(801쪽)


 

 

 

진짜 현인


'확실히 이것이 진짜 현인(賢人)이다!' 삐에르는 생각했다. '즐기고 있는 지금의 순간 말고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불안을 느끼지 않는다. 그래서 언제나 명랑하고 만족하며 침착하게 있을 수 있다. 나도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지 내놓을 텐데!' 삐에르는 부러운 마음으로 생각했다.(819쪽)


 

 

거친 치료

 

궁지에 몰린 부상한 짐승이 쫓아오는 개와 사냥꾼을 바라보듯, 나따샤는 두 사람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

 

"아가씨." 삐에르는 눈을 내리깔고, 그녀를 가엾게 생각하는 마음과, 자기가 해야 할 거친 치료를 꺼림칙하게 생각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것이 사실이건 아니건, 당신에게는 매한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럼, 그 사람이 결혼하였다는 것은 거짓말이군요."

 

"아닙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822쪽)


 

 

그렇지만 내가 용서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네

 

"저, 언젠가 뻬쩨르부르그에서 둘이서 토론한 적이 있었지요." 삐에르가 말했다. "기억하고 있습니까?"


"기억하고 있다마다." 성급하게 안드레이가 말했다. "타락한 여잔 용서해줘야 한다고 나는 말했지. 그렇지만 내가 용서할 수 있다고는 말하지 않았네. 난 용서할 수가 없어."

 

"그러나 그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요?" 삐에르는 말했다. 안드레에가 말을 가로챘다. 그는 날카로운 소리로 외쳤다.

 

"옳지, 다시 한 번 청혼하고 관대하게 대해 주라는 말인가? …… 그래, 그건 대단히 훌륭한 일이야. 그렇지만 나는 그 사나이가 걸어간 뒤를 따라갈 수는 없어. 만약 자네가 계속 내 친구가 되고 싶거든, 두 번 다시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지 마……. 그 이야기를 일체 입 밖에 내지 말게. 그럼, 실례, 잘 가게, 그것은 그녀에게 건네주겠지……?"(830쪽)

 

 

 

당신의 인생은 이제부터가 아닙니까?

 

"그를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지 마세요." 나따샤가 말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모르겠어요……." 그녀는 다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러자 더욱 강하게, 가엾은 생각과 귀여운 생각, 그리고 사랑의 감정이 삐에르를 사로잡았다. 그는 안경 밑으로 눈물이 흐르는 것을 느끼고 그것이 그녀의 눈에 띄지 않았으면 하고 생각하였다.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맙시다." 삐에르는 말했다.

 

나따샤에게는 갑자기 이 삐에르의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이 깃든 목소리가 몹시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다.

 

"이제 그 이야기는 그만둡시다. 내가 그에게 모든 것을 얘기하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만 부탁해 두겠습니다. 나를 당신의 친구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리고 만약 당신에게 도움이나 충고가 필요할 때가 생기면, 여하간 그 누군가에게 자기 마음을 털어놓을 일이ㅡ지금이 아니라, 당신 마음이 더 가라앉았을 때ㅡ있으면…… 저를 생각해 주십시오." 그는 나따샤의 손을 잡고 키스하였다. "도움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행복합니다……." 삐에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제게 그런 말씀 하지 마세요. 난 그럴 가치도 없어요!" 나따샤는 이렇게 외치고 방에서 나가려고 했지만, 삐에르는 그녀의 손을 잡아 세웠다. 그는 아직 나따샤에게 해야 할 말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 말을 입 밖에 내자 그는 자기 자신의 말에 놀랐다.

 

"그만두세요, 그만두세요. 당신의 인생은 이제부터가 아닙니까?"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나의 안생이? 아녜요! 나에게는 모든 것이 끝났어요." 그녀는 자기 자신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자신을 멸시하면서 말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요?" 그는 되풀이했다. "만약 내가, 지금의 내가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장 미남이고 머리가 좋고 뛰어난 인간이라면, 그리고 자유로운 몸이라면, 나는 이 순간 당장 무릎을 꿇고 당신의 손길과 사랑을 구하겠습니다."

 

나따샤는 오랜만에 감사와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삐에르를 흘끗 바라보고는 방에서 나갔다.

 

삐에르도 목구멍에 복받쳐 오르는 감동과 행복의 눈물을 억제하면서 그녀를 뒤따라 거의 뛰어가듯이 현관으로 나왔다. 그리고 소매에 손도 넣지 안혹 모피 코트를 걸친 채 썰매에 올라탔다.

 

"이번에는 어디로 모실까요?" 마부가 물었다.

 

'어디라고?' 삐에르는 자신에게 물었다. '지금 도대체 어딜 갈 수가 있단 말인가? 설마 클럽이나 방문?' 자기가 맛보고 있는 감동과 사랑의 감정에 비하면, 그녀가 마지막에 눈물을 통해서 자기를 흘끗 보았을 때의 부드럽고 감사에 찬 눈빛에 비하면, 모든 인간이 지극히 가엾고 초라해 보였다.

 

"집으로."  삐에르는 영하 10도나 되는 추위도 아랑곳없이, 기쁨의 숨을 쉬고 있는 넓은 가슴 위를 덮은 곰 가죽 외투의 앞자락을 열어젖히면서 말하였다.(832-834쪽)

 

 

 

이 별이야말로

 

꽁꽁 얼어붙은 맑은 밤이었다. 지저분하고 어스름한 어둠에 싸인 거리와 검은 지붕 위를, 별이 반짝이는 어두운 하늘이 뒤덮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던 삐에르는, 지금 자기의 영혼이 도달해 있는 숭고한 높이에 비하면 이 자상의 모든 것들이 창피할 정도로 하찮게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아르바뜨 광장에 들어서는 곳에서 어두운 밤하늘의 거대한 공간이 삐에르의 눈 앞에 펼쳐졌다. 이 하늘의 거의 한복판, 쁘레치스친스끼 가로수 길 상공에, 온통 뿌려놓은 듯한 별에 둘러싸여 다른 것보다 지구에 가깝고, 하얀 빛과 위로 추켜진 긴 꼬리 때문에 한층 눈에 띄는, 거대하고 찬란한 1812년의 혜성이 걸려 있었다. 이 혜성은 이 세상의 모든 공포와 종말을 예언한다고 일컬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긴 빛의 꼬리를 가진 그 반짝이는 별도, 삐에르의 마음에 아무런 두려운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 못했다. 반대로 삐에르는 즐거운 마음으로, 눈물에 젖은 눈으로 그 밝은 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형용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로 헤아릴 수 없이 큰 여러 공간을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가, 갑자기 지면에 꽂힌 화살처럼 스스로 고른 저 검은 하늘의 한 점으로 파고들어, 깜빡이고 있는 다른 무수한 별 사이에서 빛을 내고, 흰 꼬리를 반짝이면서 힘차게 그 꼬리를 위로 들어올리고 서 있는 것 같았다. 삐에르에게는 이 별이야말로 새로운 생명을 향하여 꽃피고, 부드러우면서도 고무된 자기 마음과 이 별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는 것처럼 여겨졌다.(8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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