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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 1 ㅣ 동서문화사 월드북 6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평점 :
이전의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로스또프 노백작은 귀족 단장을 그만 두었다. 그 까닭은 그 자리가 너무도 막대한 경비가 뒤따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게는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나따샤와 니꼴라이는 이따금 남몰래 걱정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부모의 모습을 보았고, 조상의 유산인 화려한 로스또프네의 저택과 모스크바 근교의 집을 내놓는다는 소문도 듣고 있었다. 귀족 단장 자리에 있지만 않았다면 큰 접대를 베풀 필요도 없었으므로, 오뜨라도노에 마을의 생활도 지난 수년 동안보다는 조용히 지나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광대한 본채와 몇 개의 딴채는 여전히 손님들이 끊일 새가 없었고, 식탁에는 늘 20명 이상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들은 거의가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오랫동안 살고 있는 일꾼 아니면 반드시 백작 집에서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되고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악사 짐레르 부처, 댄스 교사 요겔 일가, 같이 살고 있는 노처녀 벨로바, 그 밖에 많은 사람들ㅡ뻬쨔의 가정교사들, 딸들의 이전의 가정교사, 심지어는 다만 집에 있는 것보다는 백작네에서 사는 편이 낫거나 득이 된다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전처럼 몰려오는 손님들은 없었지만 생활 모습은 여전했고, 백작 부처도 그 이전의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냥개의 수도 여전하기보다는 니꼴라이에 의해서 늘어날 정도였고, 마구간에는 여전히 쉰 마리의 말과 열다섯 명의 마부가 있었으먀, 생일날에는 전과 다름없이 서로 값비싼 선물을 주고 받았다. 또 전체 군을 통틀어 초대하는 호화스러운 저녁 만찬, 백작과 짜고 승부를 하는 권리를 최고로 유리한 임시 수입이라고 생각하는 이웃 사람들에게, 여전히 카드를 부채처럼 펼쳐서 모두가 볼 수 있게 해주고 매일 수백 루블을 따게 해주는 백작 일류의 휘스트와 보스턴 카드게임 등이 열렸다.(711쪽)
모두가 변함 없이 똑같은
˝엄마!˝ 그녀는 말했다. ˝내게 그 사람을 주세요. 네, 주세요, 어머니, 빨리, 빨리요.˝ 그리고 다시금 그녀는 솟구치는 울음을 간신히 참았다.
그녀는 테이블 옆에 앉아서, 역시 테이블 쪽으로 온 니꼴라이와 어른들의 잡담을 듣고 있었다. ‘아, 싫다, 싫어, 늘 같은 얼굴과 같은 화제, 아버지도 여전히 찻잔을 들고, 여전히 차를 식히기 위해 불고 계셔!‘ 모두가 변함 없이 똑같은 집안 사람들에 대해 자기 마음 속에 솟아나는 혐오감을 느끼고 으스스해 하면서 나따샤는 생각했다.(718쪽)
똑같은 사람이면서도 다른
모두가 멜류꼬프네에서 집으로 돌아올 때, 언제나 무엇이든 알아채는 나따샤가 자리 배치를 잘 해서, 마담 쇼스와 자기가 짐레르와 같은 썰매를 타고, 쏘냐는 니꼴라이와 하녀들과 다른 썰매를 타도록 하였다.
니꼴라이는 이제는 추월하려고도 하지 않고 일정한 속도로 집으로 향하여 갔다. 그리고 이 기묘한 달빛 속에서 끊임없이 쏘냐를 바라보면서, 그 코르크 눈썹과 콧수염 아래에서 옛날의 쏘냐와 이제는 절대로 놓지 않겠다고 결심한 지금의 쏘냐를 찾고 있었다. 그는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똑같은 사람이면서도 다른 쏘냐를 알아채고는, 키스의 감각과 뒤섞인 그 코르크 냄새를 상기하고 그는 가슴 가득히 얼어붙은 공기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뒤로 사라져가는 대지와 반짝이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자기가 아직 마법의 나라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733쪽)
오래 입었던 가운을 다시 입은 것처럼
모스크바에서 그는, 아름다운 용모가 시들어 빠진, 혹은 시들고 있는 공작 영양들과 많은 하인들이 있는 광대한 저택에 마차를 몰고 들어간 순간, 시중과 마차를 몰고 다니면서 성상(聖像)의 황금 장식 앞에 무수한 촛불이 켜져 있는 저 이베르스까야의 예배당을 본 순간, 아직 마차 바퀴 자국이 나 있지 않은 저 크레믈린 광장이나 거리의 마차, 씨브쩨프 브라제크 거리의 빈민굴을 본 순간, 아무 욕심 없이 서두르지도 않고 여생을 보내는 모스크바의 노인들을 본 순간, 나이 든 여인이나 모스크바의 귀부인들, 모스크바의 무도회나 모스크바의 영국 그룹들을 본 순간, 그는 나의 집, 조용한 휴식의 장소로 돌아온 기분이 되었다. 그는 모스크바로 오자 오래 입었던 가운을 다시 입은 것처럼 마음이 가라앉고, 따뜻하며, 평상적으로 속된 기분이 들었다.
모스크바의 상류 사회 전체가, 할머니에서 어린 아이에 이르기까지, 항상 자리를 준비하여 비워 두고 있는, 기다리고 기다리선 손님으로서 삐에르를 맞이하였다. 모스크바의 사교계에서 삐에르는 더없이 인상이 좋고 착하며 머리가 좋은, 명랑하고 관대한 기인으로, 동시에 소박하고 선량한 러시아적인 낡은 타입의 나리로 통하고 있었다. 그의 지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었기 때문에 항상 텅텅 비어 있었다.(741-742쪽)
섹스에 관심이 없으니까
젊은 여인과 아가씨들은 그가 별로 누구를 지분거리는 것도 아니고, 야식 뒤에는 누구에게나 다 같이 친절했으므로 그를 좋아했다. ˝저분은 매력적이야, 섹스에 관심이 없으니까.˝ 그녀들은 소곤거렸다.(7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