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평화 1 동서문화사 월드북 69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맹은빈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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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술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기분

엘렌이 몹시 머리가 나쁘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삐에르는 정치, 시, 철학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는 아내의 파티나 만찬회에 출석하면 가끔 납득이 가지 않아서 무섭고도 묘한 느낌을 맛보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파티 자리에서 그는, 언제 어느 때 속임수가 간파될지 몰라서 늘 걱정하는 마술사가 경험하는 것과 같은 기분을 느꼈다. 이와 같은 파티를 여는 데에 우열(愚劣)만이 필요한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속임수에 넘어간 인간 자신이 그것을 즐기고 있기 때문인지, 아무튼 속임수는 탄로나지 않았다. 그래서 매력적이고 재치 있는 여성이라는 평판이 베주호프 백작 부인 엘렌의 움직일 수 없는 정평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부질없고 어리석은 말을 하더라도, 모든 사람은 그 한 마디 한 마디에 감탄하고 그녀가 생각해 보지도 않았던 깊은 뜻을 그 말 속에서 찾아내는 것이었다.(604-605쪽)


그가 울고 싶었던 것은


식후에 나따샤는 안드레이의 청을 받아 클라비코드 쪽으로 가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안드레이는 여인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창가에 서서 나따샤의 노래를 듣고 있었다. 가사를 듣고 있던 도중에 그는 입을 다물고 뜻하지 않게 눈물이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자기에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그는 노래하고 있는 나따샤를 보았다. 그러자 무엇인가 새로운 행복 같은 것이 그의 마음 속에 솟아올랐다. 그는 행복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슬프기도 했다. 그에게는 울 만한 일이라곤 조금도 없었지만, 당장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무엇을? 옛 사랑? 작은 공작 부인? 자기 환멸? …… 미래에 대한 자기의 희망? …… 그렇기도 했고 그렇지 않기도 하였다. 그가 울고 싶었던 것은 갑자기 여러 가지로 그가 의식한, 자기 속에 있는 끝없이 위대하고 파악할 수 없는 그 무엇과,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나따샤까지도 예외가 아닌, 답답한 육체적인 그 무엇과의 사이에 가로 놓여 있는 무서운 모순 때문이었다. 나따샤가 노래를 부르고 있는 동안 그 모순이 그를 괴롭히고 또한 기쁘게 했다.(642쪽)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의 가능을 믿어야 한다


‘무엇 때문에 나는 발버둥을 치고 있는가? 무엇 때문에 나는 이 좁은, 출구가 없는 틀 안에서 안달을 하고 있는가? 인생이, 모든 기쁨을 가진 인생의 모든 것이 내 앞에 열려 있는데.‘ 그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는 오래간만에 미래의 행복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우선 아들을 교육시켜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양육자를 찾아서 그에게 아들을 맡겨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퇴직하고 외국으로 가서 영국, 스위스, 이탈리아를 보고 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나는 이토록 많은 힘과 젊음을 느끼고 있는 동안에 내 자유를 즐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마음 속으로 말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행복의 가능을 믿어야 한다고 삐에르가 말한 것은 옳은 말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것을 믿고 있다. 죽은 자를 묻는 것은 죽은 자에게 맡겨 두자.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살아서 행복해져야 한다.‘ 그는 생각했다.(643쪽)



로맨틱하지는 않았지만


안드레이는 그녀의 두 손을 잡은 채 그녀의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그녀에 대한 여태까지와 같은 애정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의 마음 속에서 갑자기 무엇인가 역전하였다ㅡ이제까지와 같이 로맨틱하고 신비한 희망의 매력이 아니라 그녀의 여자다운, 앳된 나약함에 대한 가련함이 있었다. 모든 것을 바치려고 하는 그녀의 애정과 신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영원히 자기를 이 여자와 결부시켜버린, 무거우면서도 기쁜 의무의 의식이 있었다. 지금의 기분은 전처럼 밝고 로맨틱하지는 않았지만 그 대신 진지하고 강했다.(659-660쪽)



오랜 병 끝에 병석에서 일어난 아이가 안색이 변한 것처럼


˝가지 마세요!˝ 그녀는 이렇게만 말했을 뿐이었지만, 그것은 정말로 머물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그리고 그 후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던 목소리였다. 그가 떠난 뒤에도 그녀는 역시 울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며칠 동안을 그녀는 울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무슨 일에도 흥미를 잃고 다만 이따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아, 어째서 그이는 가 버렸을까!˝


그런데 그가 떠난 지 2주일 후에 그녀는, 주위 사람들도 뜻밖이라고 여길 정도로 완전히 마음의 병에서 일어나 전과 같은 그녀로 돌아갔다. 그러나 다만 오랜 병 끝에 병석에서 일어난 아이가 안색이 변한 것처럼, 마음의 모습이 변해 버리고 있었던 것이다.(6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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