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가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도대체 얼마나 많은 은폐와 거짓과 속임수가 우리의 눈과 귀를 멀게 했던가를 생각하면 아직도 어이가 없고 그저 기가 막힐 뿐이다. 말을 타는 재주 하나만 가지고도 온갖 입시의 어려운 문턱을 우습게 뛰어넘은 어느 여대생의 기막힌 성공 스토리는 거대한 구성을 지닌 놀라운 역사 드라마의 아주 조그만 시작에 불과했는지도 모르겠다. 거의 모든 계층의 온갖 인물들이 끊임없이 등장하는 이 '희대의 국정 농단 사건'의 폭넓고도 놀라운 전개와 이번 이야기의 바탕을 더욱 탄탄하게 뒷받침하는 오래 묵은 희안한 역사적 배경들이 지닌 기묘하고도 놀라운 모습까지도 함께 되짚어 본다면 말이다.

 

무려 백만이 넘는 군중들이 주말마다 도심 한복판에 모여 들어 엄청난 분노의 함성을 목청껏 쏟아내는 일조차도 이 드라마에선 그저 사소한 무대 배경의 한쪽 구석처럼 아직은 시시하고도 초라해 보일 뿐이다. 수천만 국민들이 저마다 이 끔찍한 현재진행형의 '역사의 현장'에 직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도무지 드라마의 전개 상황은 좀처럼 빠르게 진척되거나 해소될 기미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건의 무리한 극적 전개보다는 싱겁게 웃어넘길 수 있을 정도의 희극적 결말을 함께 바라는 수많은 재외국민들조차 전세계 도처에서 똑같은 주장으로 촛불을 켜고 목청을 돋구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의 눈과 귀를 아예 틀어막은 몇몇 인물들에겐 그런 소리가 좀처럼 제대로 와닿지 않는 걸까.

 

수많은 역사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 인간들이 거의 언제나 한결같은 모습으로 집착해 왔던 '권력에의 의지'는 참으로 무섭고도 질기다는 생각에 다시금 몸이 떨린다. 도대체 이 비극의 연원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일까? 단지 이번 비극에 등장하는 주역들이 유달리 튼튼한 '조상의 갑옷'을 입고 태어난 유별난 존재들이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태생적으로 껴입을 수밖에 없었던 '조상이 남긴 거대한 갑옷'의 무게를 결코 함부로 무시할 일은 결코 아닌 듯하다. 아직도 대단원의 막이 다 내려오기까지는 결코 적지 않은 여러 다양하고도 드라마틱한 국면 전개를 한참이나 앞두고 있는 듯한 이 놀라운 역사적 비극이 도대체 언제쯤 클라이막스를 지나 마침내 서서히 결말에 가까이 다가설지 - 그와 동시에 그 무대에 함께 참여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을 말할 수 없는 비애감과 함께 깊은 침묵 속에 빠뜨리거나 혹은 뜨거운 박수와 감격스러운 기쁨의 눈물로 마주하게 될지 -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 놀라운 역사 드라마의 관객임과 동시에 극중 등장인물들 가운데 아주 중요한 일부분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대중들이 너무 일찍 좌절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이미 이 거창한 드라마의 초반부를 온통 휘어잡으며 맹활약했던 주연급 여배우의 딸의 현재의 처지만 보더라도 그렇다. 드라마는 우리도 모르게 어느새 극적인 반전을 차근차근 미리 준비해 두고 있는지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무려 10억원을 넘는다는 세계적인 명마의 등에 올라 타고 자신의 신분까지도 국내 최고의 대기업 소속으로 포장해 가면서 독일의 승마훈련장을 뽐내며 내달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녀는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부러움과 질시의 희귀한 표본 가운데 하나쯤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적잖은 또래 여학생들이 그런 모습만 보고도 그녀가 뽐내는 것들과 자신들의 암울한 처지를 한번쯤 슬쩍 비교해 보며 잠시나마 깊은 탄식을 토해 냈을지 모르니 말이다. 그러나 지금 그 주연급 여배우의 딸의 처지는 벌써 얼마나 빠르게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는가. 그녀가 이 놀라운 드라마의 초반부에 모든 관객들을 향해 똑똑히 들으라는 듯이 자랑스레 내뱉은 몹시도 기분이 더러워지는 대사('돈도 실력이거든, 니 부모를 원망해')는 또 얼마나 빨리 그 말을 내뱉은 주인공을 향해 무서운 앙갚음을 되돌려 주고 있는가 말이다.

 

이 드라마는 여전히 얼마나 더 자주, 얼마나 더 많은 군중들을 도심의 광장으로 계속 끌어들일지, 또 어떤 피하기 힘든 안타까운 장면들을 더 연출해 낼지 도무지 짐작하기가 너무 어렵다. 그러나 여전히 안개 속과도 같이 복잡하게 전개되는 이 이야기도 언젠가는 그 참담하고도 서글픈 이야기를 끝맺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건 확실하다. 그리고 그 마지막 결말이 결국엔 헌법이 명백하게 규정한 대로 '민중의 승리'로 귀결되리라는 것 또한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지금으로서는 단지 '무거운 갑옷'을 몸에 걸친 채 오만하기 이를 데 없는 모습으로 무대 위를 거침없이 활보하는 악역의 주인공들이 너무 오랫동안 거기에 머무르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들이 이 못난 역사 드라마에 너무 오래 머물수록 끝내 우리 모두에게 무거운 짐과 깊은 상처만 떠안기는 비참한 결말로 다가설 뿐일 테니 말이다.

 

조상이 남긴 거대한 갑옷

 

우리는 풍요로운 세계에서 태어난 인생이, 결핍과 투쟁의 와중에 있는 인생보다 더 낫고 더 우수하리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이런 판단에는 매우 엄밀하고 근본적인 이유들이 있긴 하지만 지금 그것을 거론할 때는 아니다. 여기서는 그 이유들을 열거하는 대신, 모든 세습귀족의 비극에 등장하는 언제나 되풀이되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귀족이 뭔가를 상속한다는 것은 자신이 창조하지 않은, 따라서 자신의 개인적인 삶과 유기적으로 결합되지 않은 인생 조건들을 부여받는다는 것이다. 태어나면서 졸지에 영문도 모른 채 부와 특권을 소유한 것을 발견한다. 그것은 그에게서 유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본래 그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 부와 특권은 다른 사람, 다른 인간, 곧 그의 조상이 남긴 거대한 갑옷이다. 그래서 그는 상속자로 살지 않으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갑옷을 걸쳐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걸까? 세습 '귀족'은 자신의 삶을 사는 걸까, 아니면 선조 귀족의 삶을 사는 걸까?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그는 타인의 삶을 재현해야 하며, 따라서 타인도 자신도 아닌 운명을 짊어진 것이다. 그의 삶은 불가피하게 진정성을 상실하고 순전히 다른 삶을 재현하거나 꾸미는 것으로 변화한다. 그가 관리해야 할 과다한 재산은 자신의 개인적인 운명을 살 수 있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그의 삶을 위축시킨다. 모든 삶은 자기 자신이 되기 위한 싸움이며 노력이다. 인생을 살아가며 부딪치는 어려움은 나의 활동과 능력을 일깨워 활용하게 해준다. 만일 대기가 내게 압력을 가하지 않는다면 내 몸은 이리저리 떠다니는 흐물흐물한 유령처럼 느껴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세습 '귀족'의 인격은 삶의 노력과 활용 부족으로 점차 모호해진다. 그 결과 옛 귀족 가문 특유의 어리석음만이 남는다. 이는 아직까지 아무도 그 내부의 비극적 메커니즘 - 모든 세습귀족을 어쩔 수 없이 퇴보하게 만드는 - 을 그려낸 적이 없는 어리석음이다.(135쪽)

 

 -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중에서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