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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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물었다.

 

『이런 것을 묻는다면 이상하겠지만, 왜 또 이사를 간다니?』

 

왜냐하면 말이야, 집주인이 말이야, 우리를 말이야, 내쫓으려고 하기 때문이란 말이야』처음 대답했던 그 누이가 대답했다.

 

맨 아래 남동생이 벽난로 저편에서『고요한 밤이면 흔히』라는 곡을 노래하기 시작했다. 하나둘씩 그 노래를 따라 부르자 결국은 모두 합창을 하게 되었다. 그들은 그런 식으로 이 노래 저 노래로 이 합창곡 저 합창곡을 부르곤 했는데 그러다 보면 결국 마지막 파리한 빛이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고 최초의 어두운 저녁 구름이 나타나 밤이 되곤 했다.

 

그는 한동안 듣고만 있다가 결국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는 연약하지만 싱싱하고 천진난만한 그들의 목소리 이면에 지켜운 기색이 감도는 것을 듣고 가슴이 아팠다. 그들은 삶의 여정(旅程)을 지처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가야 할 길에 대해 피로를 느끼고 있는 듯했다.

 

그는 부엌에서 노래하는 목소리의 합창이, 여러 세대의 아이들이 부르는 합창의 끝없는 반향 속으로 메아리 치며 증폭해 가는 것을 들었다. 그리고 그는 이 모든 메아리 속에서 빈번한 피로와 고통의 어조가 울리는 것도 들었다. 모두들 삶을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삶에 지친 듯했다. <모든 시대의 아이들이 체험했던 그 고통과 지겨움 그리고 보다 나은 것들에 대한 희망을, 마치 자연 그 자체의 목소리처럼, 발언하고 있는> 베르길리우스의 단편적 시구 속에서 뉴먼 역시 이런 어조를 들은 적이 있음을 그는 기억했다. (252-25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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