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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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함정이란 죄를 짓는 길이었다. 그 함정에 빠져보리라. 아직은 빠지지 않았으나 순식간에 말없이 빠지리라. 빠지지 않는다는 것은 너무 어려웠다. 그는 닥쳐올 어느 순간에 자기 영혼이 겪게 될 말없는 타락을 감지하고 있었다. 영혼은 점점 그 함정으로 빠지고 있으나 아직은 빠지지 않았고, 아직 빠지지 않았으나 막 빠지려 하고 있었다.

 

그는 톨카 강에 놓인 다리를 건너 퇴색한 푸른색 성모 마리아 경당(經堂) 쪽으로 잠시 싸늘한 눈초리를 던졌다. 그 경당은 초라한 오두막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 꼴을 이루고 있는 가운데 우뚝 솟은 기둥 위에 새처럼 얹혀 있었다. 그는 왼쪽으로 돌아서 자기 집으로 통하는 골목을 따라갔다. 강가에 솟은 언덕 위의 텃밭에서는 양배추가 썩는 시큼한 냄새가 희미하게 풍겨왔다. 그는 자기 영혼 속에서 그날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다름아니라 바로 이 무질서이며, 아버지의 집이 처해 있는 난맥상과 혼란이며, 식물 생명체의 침체 상태 등이라 생각하며 미소를 지었다. 또 사람들이 <모자 쓴 사내>라는 별명으로 부르던 농사꾼이 그들 집 뒤의 텃밭에서 외로이 일하던 것을 생각했을 때 그의 입에서는 짤막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또 그 모자 쓴 사내가 하늘을 사방으로 차례차례 살피다가 유감스럽다는 듯이 삽으로 땅을 푹푹 찌르며 일하던 것을 생각하자 첫번째 웃음에 뒤이어 이내 두번째 웃음이 부지불식간에 터져나왔다.(250-25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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