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교장은 햇빛을 등지고 창가에 서서 한쪽 팔꿈치를 갈색 차양에 기대고 있었다. 그는 다른 쪽 차양의 끈을 달랑달랑 흔들거니 동그랗게 고리를 만들거니 하면서 말을 하거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앞에 서 있던 스티븐은 지붕 위로 기나긴 여름 해가 저물고 있는 광경이라든지 또는 이 성직자가 손가락을 천천히 능숙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을 한동안 눈으로 쫓고 있었다. 교장의 얼굴은 완전히 그늘져 있었지만 그의 등뒤에서 저물고 있는 햇살이 그 움푹 들어간 관자놀이와 두개골의 곡선을 비추고 있었다. 그가 이제 막 끝난 방학이니 해외에 있는 예수회 계통의 학교니 교사들의 전근 같은 신통찮은 화제애 대해 무겁고 정중한 어조로 얘기하고 있을 때 스티븐의 귀는 그 목소리 속의 액센트와 음정을 쫓아가고 있었다. 그 무겁고 정중한 목소리는 이야기를 술술 계속하고 있었다. 이야기가 중단될 때마다 스티븐은 존경 어린 질문을 해서 다시 얘기가 시작되게 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그 이야기가 서론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마음속으로는 뒤이어 나올 교장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교장이 부른다는 전갈을 받은 후 그는 그 전갈의 의미가 무엇일까 마음속으로 이리저리 생각해 보고 있었다. 학교 응접실에서 교장을 기다리며 오랫동안 초조히 앉아 있을 때 그의 눈은 벽에 걸린 수수한 그림들을 하나씩 살펴보고 있었고 마음은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거듭하고 있었는데 결국 그 부름의 의미는 거의 분명해졌다. 그래서 예상하지 않은 사정이 생겨서 교장이 들어오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문의 손잡이가 뒤틀리는 소리와 수탄 자락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238-239쪽)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