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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평점 :
이런 순간들은 사라지고 심신을 소모하는 욕정의 불길이 다시 솟구쳤다. 시구가 그의 입술에서 사라졌고, 분명치 않은 부르짖음과 발언되지 않은 야수적 언어가 그의 두뇌를 밀치고 나왔다. 그의 피는 반란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는 어둡고 더러운 거리를 헤매면서 음침한 골목과 문간들을 기웃거리거나 무슨 소리건 들으려고 했다. 좌절한 채 어슬렁거리며 다니는 야수처럼 그는 혼자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는 자기와 동류인 사람과 함께 죄를 짓고 싶었고, 다른 사람에게 함께 죄를 짓자고 강요하고 싶었으며, 죄를 지으며 그녀와 함께 희열하고 싶었다. 그는 어떤 어두운 실재가 암흑으로부터 거역할 수 없게 그를 엄습하고 있음을 느꼈다. 그 실재는 전적으로 그 자체로 그를 가득 채우는 물살처럼 미묘하게 쫄쫄거리고 있었다. 그 쫄쫄거림은 잠결에 들은 군중들의 웅얼거림처럼 그의 귀를 공략하고 있었고, 그 미묘한 흐름이 그의 몸 속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그는 그 침투로 인한 고통을 겪으면서 두 손으로 불끈 주먹을 쥐었으며 이를 악물기도 했다. 길거리에서 그는 자기를 살살 피해 다니면서 흥분시키고 있는 그 가냘프고 실신하는 듯한 자태를 꼭 붙잡으려고 두 팔을 펼쳤다. 그러자 그토록 오랫동안 목구멍 속에 억눌러 두었던 부르짖음이 입으로 발산되었다. 그 부르짖음은 수난자들로 가득한 지옥에서 들려 오는 절망의 비명처럼 그의 입에서 터져나와 분노에 찬 애원의 울음이 되어 사라졌다. 그것은 또한 사악한 자기 방기(自己放棄)의 부르짖음이요, 어떤 변소의 질척한 벽 위에서 읽었던 음란한 낙서의 메아리에 불과한 부르짖음이기도 했다. (155-15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