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예술가의 초상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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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공기는 부드럽고 온화했다. 저녁이 찾아오고 있었다. 공기 속에는 저녁 냄새가 섞여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바튼 소령네 농장으로 산책을 나가서 무를 캐어 껍질을 벗겨먹던 날 그 시골 밭에서 나던 냄새였고, 정자 너머 오배자나무가 있던 작은 숲에서 나던 냄새였다.

 

애들은 크리켓 공으로 멀리 던지기라든가 커브 공 및 느린 공 던지기 등을 연습하고 있었다. 그 부드러운 잿빛 공기의 정적 속에서 그는 공이 부딪히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여기저기서 조용한 공기를 뚫고 크리켓 방망이 소리가 들려왔다. 픽, 팩, 폭, 퍽. 분수대에서 철철 넘치는 낙수반(落水盤) 위로 물방울이 조용히 떨어지는 소리 같았다.

(91쪽)

 

(나의 생각)

바로 이런 느낌을 표현하기 위해 나는 얼마나 ('자주'가 아니라) 드물게 낑낑댔던가. 나는 고작 두 줄도 온전히 써내려 가지 못하고, 기어이 도중에 포기한 채 '갑자기 튀어나온 저녁'을 도로 집어넣기 바빴을 뿐인데. 그리고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그저 답담한 가슴만 억누른 채 홀로 끙끙거리기나 할 뿐이었는데... 제임스 조이스의 표현이 너무나 시적이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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