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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5
제임스 조이스 지음, 이상옥 옮김 / 민음사 / 2001년 3월
평점 :
『빈들빈들 게으름이나 피우는 녀석 같으니라고!』학감이 고함질렀다. 『<안경이 깨졌습니다>라니! 예전부터 학생들이 즐겨 쓰던 속임수지 뭐냐! 당장 손을 내밀지 못하겠니!』
스티븐은 눈을 감고 손바닥을 위쪽으로 편 채 허공에 내밀었다. 학감이 손을 바로 펴기 위해 손가락을 만지는 것이 느껴졌고, 곧 회초리를 쳐드느라 수탄의 소매가 스치는 소리도 들렸다. 막대기가 딱하고 갈라질 때와 같은 따끔하고 찌릿하고 얼얼한 타격에 그의 떨리는 손은 불붙은 가랑잎처럼 오므라졌다. 그 소리와 고통에 그의 눈에는 뜨거운 눈물이 고였다. 그의 온몸은 겁에 질려 떨리고 있었고 팔도 떨리고 있었다. 화끈거리며 새파랗게 질린 오므라진 손 또한 허공에 떠다니는 가랑잎처럼 떨리고 있었다. 울부짖음이 입술까지 솟구쳤다. 그것은 용서해 달라는 호소였다. 그러나 눈물이 그의 눈을 뜨겁게 적시고 고통과 공포로 팔다리가 떨리고 있었지만, 그는 뜨거운 눈물과 목을 태우는 듯한 울부짖음을 억제하고 있었다.
『다른 쪽 손도 내밀어!』학감이 소리쳤다.
스티븐은 못 쓰게 된 떨고만 있던 오른손을 끌어당기고 왼손을 내밀었다. 회초리를 치켜들 때 수탄 소매는 다시 스쳤고 요란하게 내리치는 소리가 났다. 미칠 정도로 강렬하고 얼얼하고 뜨거운 고통 때문에 그의 손은 오므라들었고 손바닥과 손가락은 핏기 없이 떨기만 하는 살덩이로 되어버렸다. 그의 눈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수치와 고통과 공포로 불타며 그는 겁을 먹은 채 떨리는 팔을 끌어들인 후 고통의 비명을 터뜨리고 말았다. 그의 몸은 공포로 인해 마비된 채 떨고만 있었고, 수치와 분노에 쌓인 그는 목구멍에 치밀어오르는 뜨거운 울음과, 화끈거리는 뺨으로 뚝뚝 훌러내리는 뜨거운 눈물을 느끼고 있었다.
『꿇어앉아!』학감이 소리쳤다.
스티븐은 매맞은 손으로 옆구리를 누르며 재빨리 꿇어앉았다. 손이 매를 맞고 아프게 부풀어오른 것을 생각하니 순간적으로 손이 딱하게 느껴졌다. 마치 그 손은 자기 것이 아니고 딱하게 여겨야 할 다른 사람의 손인 것처럼 느껴진 것이다.(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