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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ㅣ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평점 :
내가 기록하고 그려낸 사상이여! 나의 고통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꽃과 기적이여!
아, 그대들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대들 내가 기록하고 그려낸 사상이여! 그대들이 여전히 그렇게 다채롭고 젊고 악의적이고 가시가 가득 돋아 있고 은밀한 향냄새를 내어, 내가 재채기가 나게 하고 웃게 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ㅡ 그런데 지금은? 이미 그대들은 자신의 참신함을 잃어버렸고, 그대들 가운데 몇몇은 두렵게도 벌써 진리가 되려고 한다 : 그것들은 벌써 그만큼 불멸의 것으로 그만큼 가슴이 메어질 정도로 성실한 것으로 그만큼 지루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전에는 사정이 달랐단 말인가? 우리는 도대체 어떤 일들을 기록하고 그린다는 말인가, 중국 붓을 사용하는 중국 관리인 우리, 기록할 수 있는 사물들이 영원히 전해지게 만드는 자인 우리, 우리가 오로지 그릴 수 있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아, 언제나 막 시들어가려 하고 향기를 잃어가기 시작하는 것뿐이다! 아, 언제나 물러가는 지칠 대로 지친 폭풍우나 누렇게 변한 말년의 감정들뿐이다! 아, 언제나 날다가 지쳐서 헤매는, 이제 손으로 ㅡ 우리의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새들뿐이다! 우리가 영원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더 이상 오래 살 수 없고 날 수 없는 것, 지치고 약해질 대로 약해진 사물들뿐이다! 그대들 내가 기록하고 그려낸 사상들이여, 오직 그대들의 오후만을 위해 나는 색깔을, 아마 많은 색과 많은 다채로운 애정을, 50가지 정도의 황색, 갈색, 녹색, 적색을 가지고 있다 : 그러나 그 누구도 그대들이 아침에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 알아낼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나의 고독에서 갑자기 나타난 불꽃과 기적이여, 그대 나의 오래되고 사랑스러운 ㅡ ㅡ 나쁜 사상들이여!
- 니체, 『선악의 저편』,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29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