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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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생각도 하나의 은신처이고, 모든 말도 하나의 가면이다

 

은둔자의 저술에서는 언제나 황야의 메아리 같은 어떤 것, 고독의 속삭임이나 두려워하며 주의를 살펴보는 태도와 같은 것을 듣게 된다. 그의 가장 강한 말과 외침소리에서까지도 어떤 새로운 좀더 위험한 종류의 침묵이, 비밀스러운 침묵이 울려온다. 해마다 밤낮으로 홀로 자신의 영혼과 은밀히 다투거나 대화하면서 함께 앉아 있었던 자, 자신의 동굴에서 ㅡ 그것은 미궁일 수 있지만, 황금 갱도일 수도 있다 ㅡ 동굴의 곰이 되거나 보물 채굴자가 되거나 보물 수호자와 용이 되어버린 자, 이러한 사람의 상념 자체에는 마침내 어떤 특이한 어스름 빛을 띠고, 심연의 냄새와 함께 곰팡이 냄새를 풍기며, 그 곁을 지나가는 모든 사람에게 찬 기운을 내뿜는, 무어라 전달하기 어렵고 불쾌한 것이 있다. 은둔자는 일찍이 철학자가 ㅡ 철학자란 언제나 우선 은둔자였다고 가정하고 ㅡ 자신의 고유하고 최종적인 생각을 표현했다고 믿지 않는다 : 사람이란 자기 안에 숨겨져 있는 것을 감추기 위해 책을 쓰는 것이 아닐까? ㅡ 도대체 철학자가 '최종적이며 고유한' 생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를, 그에게는 모든 동굴 뒤에 한층 더 깊은 동굴이 있으며, 또 이는 틀림없는 것이 아닐까 ㅡ 표면적인 세계를 넘어선 곳에 좀더 광대하고 낯설고 풍요로운 세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모든 근거의 배후에, 모든 '근거를 마련하려는 작업' 아래 하나의 심연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는 의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철학은 전경(前景)의 철학이다. ㅡ 이것이 은둔자가 내리는 판단이다 : "철학자가 여기 서서 뒤를 돌아보고 자신의 주위를 살펴본다는 것은, 그리고 그가 여기에서 더 이상 깊이 파고들어가지 않고 삽을 내던져버린다는 것은 무엇인가 자의적인 것이 있다. ㅡ 거기에는 무엇인가 의심스러운 것이 있다." 모든 철학은 또한 하나의 철학을 숨기고 있다. 모든 생각도 하나의 은신처이고, 모든 말도 하나의 가면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 28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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