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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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싫증내지 않고 만족할 줄 몰랐던 가련한 한 인간의 이야기

 

지금까지 모든 중대한 사건의 경우에서 그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는지, 즉 대중이 하나의 신을 숭배했고, 그 '신'은 단지 가련한 희생양에 불과했는지 누가 알겠는가! 성과란 언제나 가장 위대한 거짓말쟁이였고, ㅡ 그리고 '작품' 그 자체는 하나의 성과였다. 위대한 정치가, 정복자, 발견자는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자신이 창조한 것으로 모습을 위장했다. '작품', 즉 예술가나 철학자의 작품은 그것을 창조했고 또 창조했다고 하는 자를 창작해낸다. 존경받고 있는 '위대한 인물들'이란 후에 이루어진 빈약하고 졸렬한 창작인 것이다. 역사적 가치의 세계에서는 화폐 위조가 지배한다. 예를 들어, 바이런, 뮈세L.C.A. de Musset, 포E. A. Poe, 레오파르디E.A. Leopardi, 클라이스트B. H. W. von Kleist, 고골리N. Gogol 같은 위대한 시인들 ㅡ 그들은 지금도 그러하고 아마도 그렇게 되지 않을 수 없다는 데서, 순간을 사는 인간이며, 열광하며 관능적이고 어린아이 같고 불신과 신뢰에서 경솔하고 당돌하다. 그들은 보통 숨겨야 할 어떤 깨진 영혼을 지니고 있으며, 때로는 자신의 작품으로 내적인 오욕에 복수하며, 또 때로는 영혼을 비상시킴으로써 너무나 충실한 기억을 망각하려고 시도하기도 하며, 또 때로는 진흙탕 속에 길을 잃고 헤매다 거의 그것에 탐닉하기까지 하고, 마침내는 늪 언저리를 떠도는 도깨비불처럼 되어 스스로를 별로 착각하게 된. ㅡ 이렇게 되면 민중은 그들을 이상주의자라고 부를 것이다. ㅡ 또 때로는 그들은 오랜 역겨움과 싸우면서 반복되는 불신의 유령과 싸우는데, 이러한 불신은 그들을 차갑게 만들며 그들로 하여금 영광을 갈구하게 하고, 도취된 아첨하는 자의 손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을 먹어치우게 한다 : ㅡ 이러한 위대한 예술가나 일반적으로 보다 높은 인간들은 한번 그들의 정체를 간파한 자에게는 얼마나 고문이 될 것인가! 그들은 바로 ㅡ 고통의 세계에서는 투시력이 있지만,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힘이 미치는 범위를 넘어 돕고자 하고 구원하려는 ㅡ 여성에게서 이렇게 쉽게 무제한적이고 현신적인 연민이 분출되는 것을 체험하며, 이러한 분출을 대중, 무엇보다도 그들을 존경하고 있는 대중이 이해하지 못하고, 호기심으로 제멋대로 해석을 쌓아올린다는 것은 납득할 만한 사실이다. 이러한 연민은 한결같이 자신의 힘을 잘못 보고 있다. 여성은 사랑이 든 것을 해낼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한다. ㅡ 이것은 여성의 고유한 믿음이기도 하다. 아, 마음을 아는 자는 가장 훌륭하고 깊이 있는 사랑마저도, 얼마나 빈약하고 어리석은지, 얼마나 무력하고 불손하고, 잘못을 저지르고 구원하기보다는 파괴하기가 쉬운지를 알아챌 것이다! ㅡ 예수의 생애에 관한 성스러운 우화나 미화 아래에는 사랑에 관한 지식의 순교라는 가장 고통스러운 사례 중 하나가 숨겨져 있다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 즉 그것은 가장 순수하고 가장 열정적인 마음의 순교로, 이 마음은 일찍이 어떤 인간의 사랑에도 만족한 일이 없고, 가혹함으로 광기로 그의 사랑을 거부하는 사람들에 대한 무서운 감정의 폭발로 사랑과 사랑받기를 원하며, 그 밖에는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다. 이것은 사랑에 싫증내지 않고 만족할 줄 몰랐던 가련한 한 인간의 이야기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려고 했던 사람들을 보내기 위해 지옥을 고안했어야만 했다. ㅡ 그리고 그가 마침내 인간의 사랑을 알게 되자, 완전한 사랑이자 완전한 사랑의 능력인 신을 고안할 수밖에 없었다. ㅡ 이 신은 인간의 사랑이 가엽기조차 하며 무지하기 때문에, 인간의 사랑을 측은히 여기는 것이다! 이렇게 느끼고 이와 같이 사랑을 아는 자는 ㅡ 죽음을 찾는다. ㅡ 그러나 왜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에 매달리는가? 가령, 그럴 필요가 없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26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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