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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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속한 것으로 인간을 다시 교육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속함이란 결국 무엇인가? ㅡ 말이란 개념에 대한 음향 부호다. 그러나 개념이란 자주 반복되며 서로 연결되어 나타나는 감각이나 감각군들에 대한 다소 확정된 영상 기호다. 서로 이해하기 위해 똑같은 말을 사용하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 사람들은 같은 종류의 내적 체험을 위해서도 동일한 말을 사용해야 하며, 결국 체험을 서로 공동으로 가져야만 한다. 따라서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일지라도, 한 민족에 속하는 사람들이 다른 민족에 속하는 사람들보다 서로 더 잘 이해하게 된다 : 또는 오히려 사람들이 오랜 시간(기후, 토지, 위험, 욕구, 노동의) 유사한 조건 아래 함께 살아간다면, 거기에서 '서로 이해하는' 어떤 것, 즉 한 민족이 생겨난다. 모든 영혼에서는 같은 횟수로 자주 반복되는 체험이 좀더 드물게 나타나는 체험에 대해 우위를 차지해왔다 : 그러한 체험을 바탕으로 사람들은 빠르게, 더욱 빠르게 이해하게 된다. ㅡ 언어의 역사는 단축 과정의 역사다 ㅡ . 이와 같은 빠른 이해에 의해 사람들은 긴밀하게, 점점 더 긴밀하게 결합하게 된다. 위험이 크면 클수록, 긴급한 문제에 대해 신속하고 용이하게 의견 일치할 필요성도 더욱 커지게 된다. 위험에 처해 오해하지 않는 것, 이것은 인간이 교류하는 데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우정이나 연애에서도 사람들은 이러한 시험을 하게 된다 : 두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똑같은 말을 사용하면서도 상대방과 달리 느끼고 생각하고 추측하고 원하고 무서워하는 상황에 이르게 되면, 바로 그와 같은 관계는 지속되지 않는다. ('영원한 오해'에 대한 공포 : 이것은 서로 다른 성(性)을 가진 인간들이 실로 자주 관능과 심정이 권하듯 너무 조급하게 결합하지 못하게 해주는 호의적인 수호신이다이것은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종의 수호신'과 같은 것은 아니다 ㅡ !) 한 영혼 안에서 어떤 감각군이 가장 빨리 깨어나게 되고 발언하며 명령을 내리게 되는지가 그 영혼의 가치의 전체 위계질서를 결정하며, 이것이 결국 그 영혼의 재산 목록을 확정하게 된다. 한 인간의 가치 평가는 그의 영혼의 구조에 관한 어떤 것을 드러내며, 그 영혼이 어디에서 자신의 생명 조건과 본래의 어려움을 보고 있는지 드러내준다. 이제 가령 어려움이 옛날부터 유사한 기호로 유사한 욕구와 유사한 체험을 암시할 수 있었던 사람들을 서로 접근시켰다고 한다면, 그 결론은 전체적으로 어려움을 쉽게 전달할 수 있다는 것, 다시 말해 궁극적으로 오직 평균적이고 공동의 체험을 한다는 것이 지금까지 인간을 마음대로 해왔던 모든 폭력 가운데 가장 큰 폭력임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좀더 유사하고 좀더 평범한 인간들은 언제나 유리한 입장에 있었으며 지금도 그렇지만, 좀더 선택된 자, 좀더 예민한 자, 좀더 희귀한 자, 좀더 이해하기 어려운 자들은 쉽게 고립되기 쉬우며, 따로따로 떨어져 있어 재난을 당하기도 쉽고 거의 번식하지도 못한다. 이 자연스러운 것, 너무 자연스럽게 유사한 것으로 진행하는 과정, 유사한 것, 일상적인 것, 평균적인 것, 무리적인 것으로 ㅡ 비속한 것으로! 인간을 다시 교육하는 것을 막기 위해, 우리는 거대한 저항력을 불러일으켜야만 한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9장> 고귀함이란 무엇인가?26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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