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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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 이 세계가 왜 허구여서는 안 되는가?

 

오늘날 철학자는 불신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의심의 심연에서 가장 악의적인 곁눈질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 ㅡ 이와 같은 음울한 찌푸린 얼굴과 어조로 농담하는 나를 용서하기 바란다 : 왜냐하면 바로 나 자신이야말로 오랫동안 기만하거나 기만당하는 것을 달리 생각하고, 달리 평가하는 법을 배워왔으며, 최소한 기만당하는 것에 반항하게 되는 철학자의 맹목적인 분노에 대해 옆구리를 쥐어박을 준비가 되어 있다. 왜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가? 진리가 가상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은 단지 도덕적인 선입견일 뿐이다. 이것은 심지어 이 세계에 존재하고 있는 가장 잘못 증명된 가정이기도 하다. 하지만 다음의 것은 많이 허용되어야 한다 : 관점적 평가와 가상성에 바탕을 두지 않는 한, 삶이란 것은 전혀 존립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많은 철학자들이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감격과 우매함으로 '가상의 세계'를 완전히 없애버리려고 한다면, 이제 그대들이 이것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해보면, ㅡ 그러면 최소한 이때 그대들이 말하는 '진리'라는 것 역시 더 이상 남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실로 무엇이 도대체 우리가 '참'과 '거짓'이라는 본질적인 대립이 있다고 가정하도록 강요하는가? 가상성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가정하는 것으로, 그리고 마치 가상의 좀더 밝고 어두운 음영과 전체적인 색조처럼 ㅡ 화가의 언어로 말하자면 다양한 색의 가치가 있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와 어떤 관계가 있는 이 세계가 왜 허구여서는 안 되는가? 이때 "그러나 허구에는 창작자가 있어야 할 것이 아닌가?" 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왜 있어야만 하는가 하고 묻는 사람에게는 명백하게 대답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러한 '있다'는 것이 아마 허구에 속하는 것은 아닐까? 술어나 목적어에 대한 것과 마찬가지로 주어에 대해서도 결국 어느 정도는 역설적이어도 되지 않는가? 철학자는 문법에 대한 믿음을 넘어서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여자 가정교사들에게 모두 경의를 표하자 : 그러나 철학이 여자 가정교사의 믿음과 결별해야 할 시기가 되지 않았는가? ㅡ

 

- 니체, 『선악의 저편』, <제2장> 자유정신, 제34

 

(나의 생각) 읽으면 읽을수록 매력적인 대목이다. 『선악의 저편』뿐만 아니라『도덕의 계보』까지 다 읽고 난 뒤에 다시 찾아와 읽으면 그 '느낌'이 더욱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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