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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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원인과 의지의 자유

 

자기 원인causa sui은 지금까지 사유된 것 중 가장 심한 자기 모순이며, 일종의 논리적인 강요이며 부자연스러움이다. 그러나 인간의 오만한 자부심은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일에 무서울 정도로 깊이 빠져버렸다. 유감스럽게도 설익은 교양인의 머리를 지배하고 있는 것처럼 저 형이상학적 최고 지성이 가진 '의지의 자유'를 향한 열망, 그리고 스스로 자신의 행위에 대해 궁극적으로 완전히 책임지고, 신, 세계, 조상, 우연, 사회를 그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열망은, 말하자면 저 자기 원인이고자 하는 것일 뿐이며 뮌히하우젠Münchhausen을 능가하는 무모함으로 자기 스스로 머리채를 위어잡고 허무의 수렁에서 끌어내어 생존으로 이끌려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가 이와 같이 '자유의지'라는 이 유명한 개념의 조야한 단순함을 간파하고, 이 개념을 자신의 머리에서 지워버린다면, 이제 나는 그 사람에게 자신의 '계몽적 태도'를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해, 저 '자유의지'라는 기이한 개념을 역전시킨 것 또한 자신의 머리에서 지워버리도록 간청한다 : 내가 생각하는 것은 원인과 결과의 오용에서 생기게 된 '부자유 의지'이다. 자연과학자들이 원인이 '작동'할 때까지는 원인을 막아내고 밀어내는 현재 주도하고 있는 기계주의적인 어리석음에 따라 행하고 있듯이(그리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사유에 있어서 누구나 자연주의화되었다ㅡ), 우리는 '원인'과 '결과'를 그릇되게 사물화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원인'이나 '결과'를 단지 순수한 개념으로만, 다시 말해 기술(記述)하고 이해하기 위한 관습적인 허구로만 사용해야 할 것이며, 설명하기 위해 사용해서는 될 것이다. '{원인과 결과} 그 자체'에는 '인과의 합'도 '필연성'도 '심리적 부자유'도 없다. 그것에는 '결과는 원인에 뒤따른다'는 것이 없으며, 이는 어떤 '법칙'이 지배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원인, 계기, 상호성, 상관성, 강제, 수, 법칙, 자유, 근거, 목적을 꾸며냈던 것은 바로 우리이다. 우리가 이러한 기호 세계를 '그 자체'로 사물에 투사하고 혼합시킨다면, 우리가 항시 그렇게 해왔듯이, 다시 한번 그것을, 다시 말해 신화적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그것은 '부자유 의지'라는 신화이다 : 실제의 삶에서 중요한 것은 오직 강한 의지와 약한 의지의 문제뿐이다. ㅡ 한 사상가가 이미 그 모든 '인과적 결합'과 '심리적 필연성' 속에서 강제, 곤궁, 복종해야 하는 상태, 압박감, 부자유 등과 같은 것을 감지하게 된다면, 이것은 이미 거의 그 자신에게 결함이 있음을 나타내는 징후이다. 바로 그렇게 느낀다는 것은 비밀을 노출하는 것이며, 그 인간이 노출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올바르게 고찰했다면, 일반적으로 '의지의 부자유'는 두 가지의 완전히 상반된 측면에서, 그러나 항상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에 의해서 문제로 파악된다. : 어떤 이들은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자신의 책임을,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자신의 공적에 대한 개인적인 권리를 단념하려 하지 않는다(허영심 있는 부류들이 이에 속한다ㅡ). 다른 이들은 반대로 어떤 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고, 어떤 죄도 지려고 하지 않으며, 내면적인 자기 경멸로부터 자기 자신을 그 어떤 무엇으로 전가시킬 수 있다고 요구한다. 이러한 후자의 사람들은 책을 저술하게 되면 오늘날 범죄자의 편을 들곤 한다. 일종의 사회주의적인 동정은 그들의 가장 기분 좋은 가면이다. 그리고 사실상 의지가 나약한 자들의 숙명론이 '인간 고통의 종교la religion de la souffrance humaine'로 받아들이는 것을 인정하게 될 때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게 장식된다 : 이것이 그의 '좋은 취미'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제1장> 철학자들의 편견에 대하여, 제2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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