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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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백 배나 나쁜 것

 

백 배나 나쁜 것은 '관조하는 자들'이다 ㅡ : 나는 저 '객관적' 등받이 의자, 저 냄새를 풍기는 역사의 향락주의자, 반은 성직자 나부랭이며, 반은 호색가인 르낭Renan의 향기보다 구역질을 일으키는 것을 알지 못한다. 르낭은 무엇이 자기에게 결여되어 있는지, 어디에 자신의 결함이 있는지, 이 경우에 어디에서 운명의 여신이 그 잔인한 가위를, 아! 너무나도 외과적으로 다루었는지를 이미 박수갈채를 보내며 가성(假聲)으로 소리 높여 말하고 있다! 이것은 내 취미에 맞지 않으며, 또한 견딜 수 없다 : 그러한 장면을 보고서 더 이상 잃어버릴 만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면, 참아내면서 보는 것이 좋다.ㅡ 나는 그러한 장면을 보면 분노한다. 그러한 '관객'은 구경거리(알고 있는 일이지만, 역사 자체) 이상의 '구경거리'에 대해 나로 하여금 화나게 한다. 이 경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아나크레온풍의 기분이 된다. 황소에게는 뿔을, 사자에게는 크게 벌린 입을 준 이러한 자연, 그 자연이 나에게 발을 준 이유는 무엇인가? ······ 신성한 아나크레온Anakreon에게 그것은 단지 도망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밟기 위해서였다! 썩은 등받이 의자, 비겁한 관조, 역사에 대한 호색적인 내시 근성, 금욕주의적 이상에 대한 추파, 성 불능이 정의인 척하는 위선 같은 것을 짓밟기 위해서였다! 나는 금욕주의적 이상에 전적으로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금욕주의적 이상이 정직한 경우에 한해서 말이다! 이것이 그 자신을 믿고 우리에게 못된 장난을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나는 마침내 무한한 것이 빈대 냄새를 풍길 때까지, 그 공명심이 지칠 줄 모르고 무한한 것의 냄새를 맡는 이 온갖 교태를 부리는 빈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인생을 구경거리로 만드는 하얗게 칠한 무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지혜에 휩싸여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피로한 자와 쓸모없는 자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짚으로 만든 머리 위에 이상이라는 요술 두건을 쓰고 있는 영웅으로 분장한 선동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금욕주의자들이나 성직자들로 알려지기를 원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단지 비극적인 어릿광대일 뿐인 야심만만한 예술가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는 또한 이상주의를 믿는 이러한 가장 최근의 투기꾼들, 반(反)유대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오늘날 그리스도교적으로 아리아적으로 속물적으로 자신들의 눈을 까뒤집고, 가장 진부한 선동 수단인 도덕적 태도를 견딜 수 없을 만큼 남용함으로써 민중 속에 있는 멍청이의 요소들을 모두 불러일으키려고 한다(ㅡ오늘날 독일에서 온갖 종류의 정신적인 사기가 성공을 거두고 있다는 사실은 정말 부정할 수 없고 이미 명백한 독일 정신의 황폐화와 관련이 있다. 이 황폐화의 원인을 나는 신문과 정치와 맥주와 바그너의 음악을 너무 지나치게 섭취한 데서 찾는다. 게다가 이러한 섭생의 전제가 되는 것은 우선 민족적 강박과 허영, "독일이여, 만방에 빛나는 독일이여"라는 강력하면서도 협소한 원리이지만, 그 다음으로는 '현대적 이념'이라는 진전마비(震顫痲痺)이다). 유럽은 오늘날 무엇보다도 흥분제로 충만해 있고 그것을 발명하는 데 뛰어나다. 자극제와 브랜디보다 더 필요한 것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또한 이상의 어마어마한 위조, 이러한 정신의 브랜디도 필요하게 되며, 그러므로 또한 모든 곳에 널리 퍼져 있는 불쾌하고, 악취 풍기는, 거짓의 사이비 알코올 냄새도 필요하게 된다. 나는 이 유럽의 공기가 다시 좀더 청정한 냄새를 풍기도록 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위조된 이상주의나 영웅의 복장이나 호언장담이라는 금속성 장난감의 뱃짐이, 얼마나 많은 설탕이 가미된 알코올성의 동정(상표 : 고통의 종교)을 담은 통[桶]이, 얼마나 많은 정신적인 편평족(扁平足) 환자를 돕기 위한 '고귀한 분노'라는 의족이,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교젹 도덕적 이상의 코미디언들이 오늘날 유럽에서 수출되어야만 했는지를 알고 싶다 ······

 

역자주) 진전마비 Paralysis agitans는 일명 파킨슨Parkinson 증후군으로도 알려져 있는 병으로 서서히 진행하며, 바른 보행, 특이한 자세, 근육 쇠약 등의 특징을 나타내고, 특히 노년기에 생기는 원인 불명의 병으로 보고되고 있다.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2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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