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의 저편.도덕의 계보 책세상 니체전집 14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김정현 옮김 / 책세상 / 200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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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가장 악질적인 전염병_인간에 대한 커다란 혐오, 인간에 대한 커다란 동정

 

두려워해야 할 것, 다른 어떤 숙명보다도 숙명적으로 작용하는 것은 커다란 공포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커다란 혐오이다. 또한 마찬가지로 인간에 대한 커다란 동정이다. 만일 어느 날 이 두 가지가 교미를 한다면, 어찌할 방법 없이 바로 가장 섬뜩한 어떤 것이, 즉 인간의 '최후의 의지', 허무를 지향하는 그의 의지, 허무주의가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것을 위한 많은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다. 냄새를 맡기 위한 코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눈과 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그가 오늘날에도 들어가는 곳이면 거의 어디서나 정신병원이나 병원의 공기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ㅡ 내가 말하고 있는 것은 당연히 인간의 문화권이나 바로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종류의 '유럽'에 관한 것이다. 인간의 가장 커다란 위험은 병자이다 : 악인이나 '맹수'가 아니다. 처음부터 실패자, 패배자, 좌절한 자 ㅡ 가장 약한 자들인 이들은 대부분 인간의 삶의 토대를 허물어버리고, 삶이나 인간이나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신뢰에 가장 위험하게 독을 타서 그것을 의심하게 만드는 자들이다.  어디에서 사람들은 깊은 비탄이 실려오는 저 가려진 눈길을, 그러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에게 말하는 바를 드러내는 선천적 불구자의 저 내향적인 눈길을ㅡ탄식하는 저 눈길을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이 눈길은 이렇게 탄식한다 : "내가 다른 어떤 존재였으면 좋았을 것을! 그러나 희망이 없다. 나는 나 자신인 것이다 : 내가 어떻게 나 자신에게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어쨌든 ㅡ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진저리가 난다!" ······ 자기 경멸의 이러한 땅 위에서, 진정한 늪지대에서 모든 잡초, 온갖 독초들이 자라나며, 이 모든 것은 그렇게 작게, 그렇게 숨어서, 그렇게 비열하게, 그렇게 달콤하게 자라나는 것이다. 여기에는 복수의 감정이나 뒤에 남은 감정의 벌레들이 우글거린다. 여기에는 비밀스러움과 은폐의 냄새가 악취를 풍긴다. 여기에는 언제나 악의적인 음모의 그물이 ㅡ 잘난 인간들이나 승리한 인간들에 대한 고통받는 자의 음모가 거미줄을 치게 된다. 여기에서 승리한 인간의 모습은 증오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증오를 증오로 인정하지 않으려고 이 무슨 기만인가! 무슨 호언장담이나 태도를 소모하고 있으며, 얼마나 '대단한' 비방의 기교인가! 이러한 못난 자의 입에서 어떤 고귀한 웅변이 흘러 나온단 말인가! 그들의 눈에는 얼마나 많은 달콤하고 끈적거리고 겸허한 복종이 젖어 있을 것인가!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바라고 있는 것일까? 최소한 정의 , 사랑, 지혜, 우월감을 나타내는 것 ㅡ 이것이 이러한 '최하층 인간', 이러한 병자의 야심인 것이다! 그러한 야심은 사람들을 얼마나 능숙하게 만드는가! 특히 여기에서 덕을 각인하는 것이나 심지어 울리는 소리마저도, 덕의 황금의 음색까지도 모방하게 되는 위조지폐자의 능숙함은 놀랄 만하다. 그들, 이러한 약자들이나 치료할 수 없는 병자들은 이제 덕을 완전히 스스로 독점했는데, 이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즉 "우리만이 선한 인간이며, 의로운 인간이다. 우리만이 선한 의지를 가진 인간이다." 그들은 생생한 비난으로, 우리들에 대한 경고로 우리 주변을 배회한다. ㅡ 마치 건강, 성공, 강함, 자부심, 힘의 감정 자체가 이미 사람들이 언젠가는 그 대가를, 쓰라린 대가를 치러야 할 사악한 것처럼 말이다 : 오, 얼마나 그들은 근본적으로 대가를 치르게 만들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얼마나 그들은 사형 집행인이 되기를 갈망하고 있는 것일까! 그들 가운데는 재판관으로 변신한 복수심에 들끓는 사람이 가득하며, 이들은 언제나 독침처럼 '정의'라는 말을 입에 담고, 언제나 입을 뾰족 세워, 불만족스럽게 사물을 보지 않고 기분 좋게 거리를 걷는 모든 사람에게 언제나 침을 뱉을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 가운데는 또한 저 허영에 찬 가장 구역질나는 유형의 인간이 없는 것도 아니며, '아름다운 영혼'을 나타내려고 하며, 일그러진 관능을 시구나 기저귀에 싸, '마음의 순수'로 시장에 내놓으려는 거짓된 불구자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 이것이 도덕으로 지위행위를 하는 인간이나 '자기 만족자'의 유형이다. 어떤 형태의 우월감을 나타내고자 하는 병자들의 의지나 건강한 자들을 압제하는 사잇길을 찾는 그들의 본능ㅡ실로 가장 약한 자들의 힘을 향한 이러한 의지가 발견되지 않는 곳이 있단 말인가! 특히 병든 여자는 지배하고 억압하고 폭력을 행하는 정묘함에서 그 누구도 능가할 수 없다. 병든 여자는 살아 있는 자이든, 죽은 자이든 이런 일을 하는 데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는다. 그녀는 가장 깊이 묻힌 것을 다시 파헤친다(보고스족이 말하기를, "여자는 탐욕스런 이기주의자이다"). 모든 가족, 모든 단체, 모든 공동체의 배경을 살펴보라 : 그 어느 곳에서든지 건강한 사람에게 대항한 병자들의 싸움이 있다.ㅡ대부분은 약간의 독이 섞인 분말가루를 가지고, 아프게 찌르는 말로, 교활한 인내자의 무언극으로, 그러나 때로는 또한 '고상한 분노'를 가장 잘 연출하고자 하는 요란한 몸짓을 하는 저 병자의 바리새주의로 조용하게 싸우는 것이다. 격분해 날뛰며 지르는 병든 개들의 목쉰 소리, 물며 덤벼드는 그러한 '고상한' 바리새인들의 기만과 격노, 이것이 과학의 신성한 영역에까지 들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들 생리적으로 실패한 자들이자 벌레 먹은 자들, 이들 모두는 원한의 인간들이며, 지하의 복수에 완전히 몸을 떠는 토양이며, 행복한 자들에 대해 감정을 터뜨릴 때에도, 또한 복수의 가면무도회를 할 때에도, 복수의 구실을 만드는 데도, 지치지 않고 싫증을 모르는 자들이다 : 그들은 도대체 언제 최후의 가장 세련되고 가장 섬세한 복수의 승리에 이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그들 자신의 불행을, 모든 불행 일반을 행복한 자들의 양심에 밀어 넣는 데 성공할 때인 것이다 : 그러면 이들 행복한 자들은 어느 날엔가는 자신들의 행복을 수치스럽게 여기기 시작할 것이고, 아마 서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것이다 : "행복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너무 많은 불행이 있다!" ······ 그러나 이와 같이 행복한 자들, 잘난 자들, 몸과 정신이 강한 자들이 자신의 행복에 대한 권리를 의심하기 시작하는 것보다 더 크고 더 숙명적인 오해는 없을 것이다. 이런 '전도된 세계'는 없어져버려라! 병자가 건강한 사람을 병들게 하는ㅡ이것이 그 유약화일 것이다ㅡ일이 없다는 것ㅡ이것이야말로 지상에서 최고의 관점이 되어야 할 것이다 : ㅡ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스스로 병자의 모습을 경계하면서, 건강한 사람은 병자와 떨어져 있고, 건강한 사람이 병자와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이 모든 일이 필요하다. 또는 간호인이나 의사가 되는 것이 그들의 임무일까? ······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임무를 더 이상 심하게 잘못 인식하고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ㅡ 위에 있는 자는 밑에 있는 자의 도구로까지 자신을 격하시켜서는 안 되며, 거리의 파토스는 또한 영원히 양자의 임무를 마땅히 분리시켜야만 한다! 그들의 생존의 권리, 음조가 틀리고 깨어져버린 종에 대해 완벽한 음조를 지닌 종(種)의 특권은 실로 천 배나 더 큰 것이다 : 오직 그들만이 미래의 보증인이며, 오직 그들만이 인류의 미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것은 결코 병자들이 할 수 없는 것이며 해서도 안 되는 것이다. 그들만이 해야 하는 것을 이들 병자가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이들 병자가 어떻게 병자의 의사나 위안자나 '구원자'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좋은 공기가 필요하다! 좋은 공기가! 어쨌든 문화의 모든 정신병원이나 병원의 근처에서 멀리 떨어지자! 그러므로 좋은 사교 모임, 우리의 사교 모임이 필요하다. 어쩔 수 없을 때에는 고독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안으로 향하는 부패와 은밀한 병자의 벌레 먹은 자리에서 나는 악취에서 멀리 떨어지자! ······ 나의 친구들이여, 이것은 우리가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 간직해두었을 수도 있는 두 가지 가장 악질적인 전염병에 대해서 적어도 잠시라도 우리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ㅡ 즉 인간에 대한 커다란 혐오에 대해서! 인간에 대한 커다란 동정에 대해서! ······

 

 - 니체, 『도덕의 계보』, <제3논문 : 금욕주의적 이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제1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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