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는 어떤 것을 더욱 명료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
같은 페이지에는 이런 말이 있다. "그의 가르침들은 몇몇의 나뭇잎처럼 바람에 날려 흩어져버렸을 것이다. 만약 이 나뭇잎들이 단단하고 견고한 표지처럼 그의 부활에 관한 맹신에 의하여 합쳐지고 또 그렇게 함으로써 보존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바람에 휘날리는 나뭇잎에 관해 말하는 자는, 바로 뒤에서 그것을 제본소의 작업으로 합쳐질 수 있는 종이잎으로 이해하는 한, 독자의 상상을 잘못 인도한다. 주의 깊은 저술가는 독자를 의심스러운 상태로 내버려두거나 잘못 인도하는 일을 무엇보다 두려워할 것이다. 왜냐하면 비유는 어떤 것을 더욱 명료하게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어떤 비유 자체가 불명료하게 표현되어 미혹시킨다면, 비유가 없을 때보다 더 사태를 애매하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물론 우리의 "고전적 작가"는 주의 깊지 못하다. 그는 "우리의 원천의 손"(76쪽), "원천에서 모든 손잡이의 결여"(77쪽), 그리고 "욕구의 손"(215쪽)에 관하여 용감하게 말한다.
- 『반시대적 고찰 Ⅰ』,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12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