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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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밑줄긋기)

 

쇼펜하우어와 칸트

 

우리는 슈트라우스가 간질이고 찌르고 때리는 쇼펜하우어에게 얼마나 많은 은혜를 입고 있는가를 이해한다. 그렇기 때문에 쇼펜하우어에 대한 다음과 같은 명확한 호의의 표시도 우리를 더 이상 놀라게 하지 않는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의 저서들에서 사람들은 그저 책장을 넘기기만 하면 된다. 물론 책장을 넘기기만 하지 않고 그것들을 연구하는 것이 여하튼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등등"(141쪽). 속물의 수령은 대체 누구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인가? 그 자신은 쇼펜하우어를 결코 연구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데, 반대로 쇼펜하우어는 그런 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는 연구는커녕 책장을 넘길 만한 가치도 없는 저자다." 쇼펜하우어가 그의 목구멍에 걸린 것이 분명하다. 그는 헛기침을 함으로써 쇼펜하우어를 떨쳐버리려 하고 있다. 그러나 천진난만한 찬사의 양을 가득 채우기 위해 슈트라우스는 게다가 늙은 칸트를 감히 추천한다. 그는 칸트의 1755년 저작 《천체의 일반 역사와 이론》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항상 내가 그의 후기 이성 비판 못지않게 중요하다고 여긴 저작. 여기에서 통찰의 깊이에 경탄하면, 저기에선 전망의 넓이에 경탄한다. 제한되었지만 무엇보다 확실한 인식을 소유한 노인이 여기 있다면, 저기서는 정신적 발견자와 정복자의 넘치는 용기를 지닌 장년 남성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칸트에 관한 슈트라우스의 이러한 판단이 항상 내게는 쇼펜하우어에 관한 판단보다 더 겸손하다고 여겨지지 않았다. 여기서 판단이 매우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 판단을 말하는 데는 특히 확실성을 내세울 수 있는 지도자가 있다면, 저기서는 심지어 칸트에 대한 무지에도 용감무쌍하게 자신이 할 수 있는 칭찬의 정수를 쏟아 넣는 유명한 산문 작가가 우리를 향해 다가온다. 슈트라우스가 칸트의 이성 비판으로부터는 자신의 근대적 이념의 성서를 위해 아무것도 얻을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사실, 또 슈트라우스가 어디서나 매우 조야한 사실주의의 마음에만 들게끔 말하고 있다는 황당무계한 사실은 이 새로운 복음서의 두드러지 특징들 가운데 하나다. 아무튼 이 복음서는 끊임없는 역사 연구와 자연 연구가 힘들게 이뤄낸 성과라고 자평하며 또 그렇게 함으로써 철학적 요소 자체를 부인한다. 속물의 수령 및 그의 "우리"에게는 칸트의 철학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그는 관념론의 기초적 이율배반에 관해, 그리고 극도로 상대적인 일체의 학문 및 이성의 의미에 관해 전혀 예감하지 못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성을 통해 물 자체에 관해 알아낼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이성이 그에게 말해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칸트를 이해하는 것이 특정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불가능하다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슈트라우스처럼 청년 시절에 "거대한 정신" 헤겔을 이해했거나 또는 이해했다고 잘못 생각한 사람, 더군다나 슈트라우스의 말대로 "너무나 많은 통찰력을 지닌" 슐라이어마허를 다루어야 했던 사람에게는 그렇다. …… 일단 헤겔 병과 슐라이어마허 병에 걸린 자는 다시는 완쾌되지 않는다.

 

- 『반시대적 고찰 Ⅰ』, <다비드 슈트라우스, 고백자와 저술가>, 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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