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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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가 마치 나를 위해 책을 쓴 것처럼 그를 이해했다.

 

나는 쇼펜하우어의 독자다. 그의 책의 첫 페이지를 읽은 후 확고하게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을 것을 알았고, 그가 한 모든 말에 귀를 기울이는 독자 가운데 한 사람이다. 나는 곧 그를 신뢰했고, 지금도 9년 전이나 똑같이 신뢰한다. 나는 그가 마치 나를 위해 책을 쓴 것처럼 그를 이해했다. 물론 여기저기서 작은 오류들은 발견했지만, 그에게서 한번도 역설(逆說)을 발견한 적이 없는 것도 그 때문이다. 실제로 역설이란, 저자가 진정으로 믿지 않으면서 주장하기 때문에, 그가 그 주장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 하고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럴 듯하게 꾸미려 하기 때문에 신뢰를 주지 못하는 주장 이외의 무엇이겠는가? 쇼펜하우어는 결코 꾸미려 하지 않는다. 그는 그 자신을 위해 글을 쓴다. 그리고 세상에 기만당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게다가 적어도 '아무도 속이지 마라, 너 자신도 속이지 마라'를 자신의 법칙으로 만든 철학자임에야! 거의 모든 대화의 결과로 나타나며, 저술가가 거의 무의식적으로 모방하는 호의적인 사교상의 기만조차도 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연단에서 청중을 내려다보며 수사학적 기교를 부리면서 저지르는 의식적인 기만은 말할 것도 없다. 그 대신 쇼펜하우어는 자기 자신과 말을 한다. 또는 한 명의 청중을 생각한다면, 아버지에게 가르침을 받는 아들을 상상하면 된다. 사랑으로 경청하는 청중 앞에서 하는 말은 성실하고 소박하고 선의에서 나오는 말이다. 그런 작가가 우리에게는 없다. 그의 목소리가 울리자마자 화자의 힘찬 쾌감이 우리를 감싼다. 마치 교목(喬木) 숲으로 들어가 깊이 숨을 들이쉬면 갑자기 다시 기분이 좋아지는 경우와 비슷하다. 여기에는 항상 변함없이 기운을 붇돋아주는 공기가 있다고 우리는 느낀다. 여기에는 모방할 수 없는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 있다. 집에 있는 것 같은 편안함을 내면에 느끼는 사람, 부유한 집의 주인 같은 사람들이 지닌 자유로움과 자연스러움이다. 스스로 한번 기지를 발휘해서 그 연설이 그로 인해 불안하고 부자연스러워질 때 본인이 가장 놀라는 그런 작가들과는 정반대인 것이다.

 

 - 『반시대적 고찰 』,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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