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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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환상, 아폴론이라는 이름

 

음악과 비극적 신화는 똑같은 방식으로 한 민족의 디오니소스적 능력의 표현이며, 서로 분리될 수 없다. 양자는 아폴론적인 것의 저 편에 놓여 있는 예술 영역에서 유래한다. 양자는 하나의 영역을 미화하는데, 이 영역이 지닌 쾌락의 화음 속에서는 불협화음과 마찬가지로 공포의 세계상이 매력적으로 울려 퍼진다. 양자는 자신의 강력한 마술을 믿으면서 불쾌의 가시를 가지고 유희한다. 양자는 이러한 유희를 통해 "가장 나쁜 세계"의 실존조차도 정당화한다. 여기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아폴론적인 것과 견주어볼 때, 현상의 세계 전체를 소생케 하는 영원하고 근원적인 예술의 힘으로 나타난다. 이 현상 세계의 한가운데에는 소생한 개체화의 세계를 삶 속에 붙잡아두기 위하여 새로운 미화의 가상이 필요하게 된다. 우리가 불협화음의 인간화를 생각할 수 있다면 ㅡ 그리고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이겠는가? ㅡ 이 불협화음은 살 수 있기 위하여 훌륭한 환상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 환상은 불협화음이 가진 고유한 본질을 아름다움의 베일로 은폐한다. 이것이 아폴론의 진정한 예술 의도다. 우리는 매 순간 실존 일반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들고 그 다음 순간을 체험해보고 싶게 만드는 아름다운 가상의 저 수많은 환영들을 아폴론이라는 이름으로 포괄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 개체는 모든 실존의 기초, 즉 세계의 디오니소스적 기반에 대해 정확하게 아폴론적 미화의 힘에 의해 다시 극복될 수 있는 양만큼만 의식한다. 그래서 이 두 가지 예술 충동은 영원한 정의의 원칙에 따라 상호 균형 속에서 자신의 힘을 발휘해야만 한다. 디오니소스의 힘이 격렬하게 고양되는 곳에선, 우리가 이를 체험하고 있는 것처럼, 아폴론도 구름에 몸을 감추고 이미 우리 곁에 내려와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어떠면 다음 세대쯤에선 아폴론의 이 왕성한 미적 효과들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러한 효과가 필요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각자가 꿈속에서라도 고대 그리스의 실존 속으로 다시 옮겨졌다고 한번만 생각해본다면 모두들 이를 직관적으로 가장 확실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높은 이오니아식 기둥이 서 있는 복도를 거닐면서 맑고 고상한 선으로 그어진 지평선을 올려다보며, 빛나는 대리석 속에 비치는 자신의 미화된 모습을 곁에 두고, 엄숙하게 걸어가거나 조화로운 음향을 울리면서 율동적인 몸짓으로 부드럽게 움직이는 사람에게 둘러싸인 ㅡ 그가 이 끊임없이 밀려오는 미의 물결에서 아폴론에게 손을 들어 이렇게 외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행복한 민족, 그리스인들이여! 델포스의 신이 그대들의 주신 찬가의 광란을 치유하기 위해선 그와 같은 마력이 필요하다고 간주했다면, 너희 사이에서 디오니소스가 얼마나 위대한 존재여야 하겠는가!" ㅡ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 휩싸여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아테네 노인이 아이스킬로스 같은 고상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면서 이렇게 응답할 수 있을 것이다. "자네 이상한 외국 청년, 이렇게도 말해보게. 이 민족은 그렇게 아름답게 될 수 있기 위해 얼마나 많이 고통을 당해야 했겠는가! 그러나 지금 나를 따라와 비극을 보세. 그리고 나와 함께 두 신의 신전에 제물을 바치세!"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2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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