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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ㅣ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오페라가 음악에 미친 불행한 영향
오페라의 모습에서는 결코 영원한 상실의 비가적 고통이 나타나지 않는다. 영원한 재발견의 명랑성, 적어도 그 순간에는 현실적이라고 상상할 수 있는 목가적 현실에 대한 쾌적한 즐거움이 그 모습에 서려 있다. 그러나 언젠가 한번은 이 상상의 현실이 환상적이고 어리석은 노닥거림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진정한 자연의 무서운 진지함과 인류 초기의 원초적 풍경을 이 장난과 비교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구역질을 느끼면서 이렇게 외칠 것이다. 환영아, 물러가라! 오페라처럼 그렇게 장난스러운 존재를 단지 호통만 쳐서 유령처럼 쫓아버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오페라를 파괴하려는 사람은 저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에 맞서 싸울 각오를 해야 한다. 이 명랑성은 오페라 안에서 너무나 순진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생각을 표현한다. 아니 명랑성 본연의 예술 형식이 바로 오페라다. 미학적 영역에서 유래하지 않고 반쯤 도덕적인 영역으로부터 예술 분야에 몰래 건너와 자신의 잡종적 태생을 여기저기서 숨길 수 있었던 예술 형식이 예술 자체를 위해 무엇을 하리라 기대하겠는가? 진정한 예술의 수액이 아니라면 이 기생충 같은 오페라가 무슨 수액을 먹고 살겠는가?그의 목가적 유혹으로 인해, 그의 알렉산드리아적 아부 예술로 인해 예술에 주어진 엄숙한 최고 과제가 ㅡ 밤의 공포를 응시한 눈을 구제하고 허상의 치료약으로 주체를 의지 발동의 경련으로부터 구원하는 ㅡ 공허한 오락적 여흥의 경향으로 변질되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내가 무대조의 본질로 서술했던 그런 양식의 혼합에서 디오니소스적인 것과 아폴론적인 것이라는 영원한 진리는 무엇이 되겠는가? 음악은 하인으로, 가사는 주인으로 여겨지고, 음악은 육체와 그리고 가사는 영혼과 비교되는 곳에서? 최고의 목적이 과거 아티케의 주신 찬가에서처럼 기껏해야 개작하는 회화적 음악이 있는 곳에서? 디오니소스적 세계 거울이라는 자신의 진정한 존엄성으로부터 음악이 완전히 소외되어 현상의 노예로서 현상의 형식 존재를 모방하고 선과 균형의 놀이를 하면서 피상적인 재미를 주는 일밖에는 할 일이 없는 곳에서? 좀 더 엄밀히 고찰하면 오페라가 음악에 미친 이 불행한 영향은 현대의 음악 발전 전체와 일치한다. 오페라의 발생 속에 그리고 오페라가 대변하는 문화의 본질 속에 숨어 있는 낙천주의는 무서울 정도로 급속하게 음악으로부터 디오니소스적 세계 규정의 성격을 빼앗고 그 대신 형식 유희적이고 오락적인 성격을 성공적으로 새겨 넣었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9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