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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ㅣ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신화는 말 속에서는 적절하게 구현되지 못한다.
신화는 말 속에서는 적절하게 구현되지 못한다. 장면의 구조와 구체적인 이미지들은 시인이 말과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보다 한층 더 깊은 지혜를 드러낸다. 이런 현상을 우리는 셰익스피어에게서도 관찰할 수 있다. 예컨대 이와 유사한 의미에서 햄릿의 대사는 행동보다 더 피상적이다. 그래서 앞서 언급한 햄릿론은 그의 말로부터가 아니라 극 전체에 대한 깊은 고찰과 개괄을 통해 얻어졌다. 우리는 그리스 비극을 단지 언어 연극으로서만 접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서 내가 암시했듯이 신화와 말 사이의 불일치 때문에 그리스 비극이 실제보다 더 단순하고 무의미하다고 잘못 생각하기 쉬우며, 고대인들의 증명에 따르면 그리스 비극이 실제로 가졌을 그런 영향보다 더 피상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언어의 시인이 실패한 일, 신화를 최고의 정신과 이상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일을 창조적인 음악가는 어느 순간에든 성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이 아닌가! 진정한 비극이 소유하고 있을 위안, 비교할 수 없이 커다란 위안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음악적 효과의 강한 힘을 학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 이 강력한 음악의 힘도 단지 우리가 그리스인일 경우에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우리 현대인은 그리스 음악을 듣고는 ㅡ 우리에게 낯익고 익숙한, 그래서 훨씬 더 풍부한 음악에 비해 ㅡ 음악적 천재가 청년 시절 수줍은 힘의 감정에 맞춰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집트의 사제들이 말했듯이 그리스인은 영원한 아이이고, 비극적 예술에서도 아이에 불과하다. 그들은 고상한 장난감이 자신들의 손에서 생겨나 ㅡ 장차 파괴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 불과한 것이다.
상징적이고 신화적인 계시에 이르고자 하는 음악 정신의 투쟁은 서정시의 초기부터 아티케 비극에 이르기까지 계속 강해지다가 갑자기, 다시 말해 풍성한 만개(滿開)의 단계를 어렵게 쟁취한 이후 곧 꺾이고 만다. 그리고 그리스 예술의 표면으로부터 사라진다. 반면 이 투쟁에서 탄생한 디오니소스적 세계관은 비밀 의식 속에 생존해서, 멋지고 기이한 변형과 변종을 거듭하면서 진지한 정신을 멈추지 않고 매혹한다. 이 세계관이 언젠가 신비스러운 심연으로부터 솟아올라 다시 예술로 떠오르지 않을까?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7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