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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ㅣ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음악은 현상의 모사가 아니라 의지 자체의 직접적인 모사이다
그 자체로 분리된 아폴론의 예술적 힘과 디오니소스의 힘이 서로 나란히 활동하게 되면 어떤 미학적 효과가 발생할까? 좀더 간단히 말해, 음악은 그림과 개념에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ㅡ 이에 관해선 쇼펜하우어가 가장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다. 리하르트 바그너도 이 문제에서 그가 더할 나위 없이 명료하고 투명한 서술을 했다고 칭찬한 바 있다. 그가 서술한 부분 전체를 나는 여기서 인용할 것이다.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 제1권, 309쪽. "이 모든 것에 따라 우리는 현상 세계, 또는 자연이나 음악을 동일한 사물의 서로 상이한 두 표현으로 간주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사물 자체가 둘의 유사점을 유일하게 매개하는 것이고, 유사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매개체를 인식하는 일이 필요하다. 그에 따르면 음악은, 세계의 표현으로 간주될 경우, 최고로 보편적인 언어다. 심지어 이 언어는 개념의 보편성에 대해서도, 개별적인 사물에 대한 관계와 동일한 관계를 맺는다, 그러나 음악의 보편성은 추상의 공허한 보편성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며 일반적이고 명확한 내용과 결부되어 있다. 이런 점에서 음악은 기하학적 도형이나 숫자와 비슷하다. 즉 모든 가능한 경험 대상의 보편적인 형식으로서 모든 것에 선험적으로 적용 가능하지만,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규정되어 있다. 가능한 모든 노력, 흥분과 의지의 표출, 즉 이성이 부정적이고 광범위한 개념인 감정으로 치부하는 인간 내면의 모든 과정이 무수히 가능한 선율 속에 표현된다. 그러나 소재 없이 항상 단순한 형식의 보편성 속에서 표현되며, 마치 육체 없이 육체의 가장 내적인 영혼을 따르듯이 현상을 따르지 않고 언제나 물 자체를 따른다. 음악이 모든 사물의 진정한 본질과 맺는 이 친밀한 관계로부터 다음 현상이 설명될 수 있다. 즉 어떤 장면, 줄거리, 사건, 환경에 적절한 음악이 흐르면, 음악은 그것의 가장 은밀한 의미를 해명해주는 것 같고 그에 대해 가장 정확하고 분명한 주석을 알려주는 듯한 까닭이 설명된다. 이는 어떤 교향곡이 주는 인상에 완전히 몰두한 사람이 음악을 들으면서 마치 삶과 세계의 모든 가능한 과정이 자신을 스쳐 지나가는 것을 보는 경우와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리면 그는 자기 눈앞에서 떠다니던 사물들과 저 음악 사이에 어떤 유사성도 진술할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말했듯이 음악은 현상의 모사가 아니라,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한다면 의지의 적절한 대상의 모사가 아니라 의지 자체의 직접적인 모사이며, 세상의 물질적인 모든 것에 대해 형이상학적인 것, 모든 현상에 대해 물 자체를 표현한다는 점에서 다른 예술과 구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구체화된 음악이라 불러도 되고 구체화된 의지라 불러도 될 것이다. 그러므로 왜 음악이 모든 형상, 즉 실질적 삶과 세상의 장면이 좀더 높은 의미를 가지고 나타나도록 만드는지 그 이유가 분명해진다. 물론 선율이 주어진 현상의 내적 정신과 유사하면 할수록 그 의미는 그만큼 더 명료해진다. 바로 이런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는 시를 노래로서, 구체적인 묘사를 무언극으로서 또는 이 둘을 오페라로서 음악에 종속시킬 수 있다. 음악의 보편적인 언어에 종속된 인간의 삶의 모습들이 필연적으로 음악에 연결되어 있거나 음악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모습들과 음악의 관계는 보편적인 개념들과 임의의 사례들과의 관계와 같다. 그 모습들은 음악이 단순한 형식의 보편성 속에서 표현하는 것을 현실의 명확성 속에서 묘사한다. 선율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편적 개념처럼 현실의 추상화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현실은, 즉 개별적인 사물의 세계는 개념의 보편성과 선율의 보편성에, 눈에 보이는 구체적인 것, 특수하고 개인적인 것, 개별 사건을 제공해준다. 그러나 개념과 선율의 두 보편성은 어떤 측면에서는 서로 대립된다. 개념들은 관조로부터 추상화된 형식, 즉 사물에서 벗겨낸 겉껍질만을 가지고 있어서 추상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에 반해 음악은 모든 형체들에 앞서 존재하는 가장 내밀한 핵심, 사물의 심장을 제공한다. 이런 관계는 스콜라 학파의 언어로 잘 표현될 수 있다. 즉 개념들은 사물 이후의 보편universalia post rem이지만 음악은 사물 이전의 보편universalia ante rem이고 현실은 사물 속의 보편universalia in re이다. 그러나 작곡과 구체적인 묘사 사이에 관계가 성립될 수 있는 것은 이미 말했듯이 이 둘은 세상의 동일한 내적 본질의 상이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어떤 개별적인 경우에 그런 관계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다시 말해 작곡자가 어떤 사건의 핵심이 되는 의지의 활동을 음악의 보편적 언어로 표현할 줄 안다면, 그 노래의 선율, 그 오페라의 음악은 표현력이 풍부할 것이다. 그러나 작곡가가 발견한 둘 사이의 유사성은, 그의 이성이 의식하지 못한 채, 새계의 본질에 대한 직접적인 인식으로부터 얻어져야 하며, 의식적이고 고의적으로 개념들을 통해 매개된 모방이어서는 안 된다. 그럴 경우 음악은 내적 본질, 즉 의지 자체를 표현하지 못하고 의지의 현상만을 불충분하게 모방할 뿐이다. 원래 모방하는 모든 음악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ㅡ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6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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