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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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비극 예술은 소크라테스에게는 결코 "진리를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비극 예술이 "분별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 즉 철학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호소한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이는 비극 예술을 멀리해야 할 두 가지 이유인 것이다. 플라톤처럼 소크라테스도 비극은 편안한 것만 표현하고 유익한 것은 수술하지 않는 아첨의 예술로 간주했다. 따라서 그는 제자들에게 이런 비철학적 유혹으로부터 엄격하게 거리를 둘 것을 요구했다. 그 결과는 젊은 비극 작가였던 플라톤이 소크라테스의 제자가 되기 위해 가장 먼저 시작품을 불태워버릴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격파할 수 없는 천성이 소크라테스의 원리에 대항한 곳에서도 이 원리의 힘과 저 강한 인물의 무게는 시 자체를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위치로 옮겨놓을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했다.

 

그 예가 방금 언급한 플라톤이다. 비극과 예술 일반의 단죄에 있어서 분명 스승의 소박한 냉소주의에 뒤떨어지지 않는 그도 전적으로 예술적인 필요 때문에 예술 형식 하나를 만들어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예술 형식은 그가 거부한 기존의 예술 형식들과 내적으로 닮아 있다. 플라톤이 과거의 예술에 대해 가했던 주된 비판, 즉 예술은 가상의 모방이라는 것, 경험 세계보다 더 낮은 영역에 속한다는 비난이 새로운 예술 작품에도 해당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플라톤이 현실을 초월하고자 하며 저 사이비-현실을 지탱하는 토대로서의 이데아를 서술하고자 애쓰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로써 사상가 플라톤은 우회로를 거쳐 결국 자신이 시인으로서 고향처럼 익숙하게 생각했던 곳, 소포클레스와 과거의 전체 예술이 저 비난에 엄숙하게 항의했던 곳에 도착했던 것이다. 비극이 이전의 모든 예술 장르를 자신 속에 흡수했다고 한다면, 조금 다른 의미에서 똑같은 말을 플라톤의 대화편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대화편은 기존의 모든 양식과 형식들의 혼합으로 이루어졌으며, 따라서 이야기, 서정시, 연극 사이에서, 산문과 운문 사이를 부유(浮游)함으로써 통일된 언어 형식이라는 엄격한 과거의 법칙을 깨고 있다. 견유파 작가들은 이 길을 계속 걸어가 극히 다양한 형식으로, 산문과 운문 형식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면서 "광란의 소크라테스"라는 문학적 형상, 그들이 실제 삶 속에서 그대로 구현했던 문학적 형상에 이르게 된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난파당한 배 같은 과거의 시(詩)가 자기 자식들을 모두 데리고 올라타 목숨을 구한 조각배와도 같다. 좁은 공간 속으로 밀려 들어와 소크라테스라는 한 명의 사공에게 불안하게 복종하면서 그들은 이제 미지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 세계의 사람들은 이 행렬의 환상적인 모습을 보는 것에 결코 싫증을 내지 않았다. 사실 플라톤은 후세 전체를 위해서 새로운 예술 형식의 모범을 제공했다. 장편 소설의 모범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무한히 고양된 이솝 우화라고 할 수 있다. 이 속에서 시가는, 수백 년 동안 변증론적 철학이 신학에 대해 차지했던 것과 마친가지의 지위를 변증론적 철학에 대해 차지하고 있다. 말하지면 시녀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시가에 주어진 새로운 지위였다. 플라톤은 마신적인 소크라테스의 압력에 의하여 시가를 그런 지위로 전락시킨 것이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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