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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반시대적 고찰 ㅣ 책세상 니체전집 2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이진우 옮김 / 책세상 / 2005년 5월
평점 :
품절
아이스킬로스의 프로메테우스
이제 나는 이러한 수동성의 영광에 아이스킬로스의 프로메테우스 주위를 밝혀주고 있는 능동성의 영광을 대비시켜보겠다. 사상가 아이스킬로스가 우리에게 말해야만 했던 것, 그러나 시인으로서 자신의 비유적 이미지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단지 예감만 하게 했던 것을 젊은 괴테는 자신이 창조한 프로메테우스의 거침없는 말들을 통해 우리에게 밝힐 수 있었다.
여기 앉아, 인간을 만든다.
내 형상에 따라
나와 닮은 한 종족을,
그는 괴로워하고, 울고,
즐기고, 기뻐한다.
그리고 너희를 존중하지 않는다!
마치 나처럼.
거인의 경지로 올라간 인간은 자신들의 문화를 쟁취하며 신들에게 인간과 결속하도록 강요한다. 그것은 인간이 스스로 얻은 지혜를 가지고 신들의 실존과 한계를 자기 마음대로 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근본사상으로 볼 때 불경의 찬가인 프로메테우스 노래에서 가장 멋진 점은 정의를 지향하는 이이스킬로스적 경향이다. 한편에는 용감한 "개인들"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신의 고민, 자신들의 황혼기에 대한 예감이 있으며, 또한 화해와 형이상학적 일치를 강요하는 이 두 고통의 세계의 힘이 있다 ㅡ 이 모든 것은 강력하게 아이스킬로스적 세계관의 중점과 주제를 상기시킨다. 그의 세계관으로 보면 인간과 신들 위에 군림하는 것은 운명의 여신 모이라다. 올림포스 세계를 자신의 천칭 위에 올려놓고 저울질하는 아이스킬로스의 대담성을 보면서, 우리는 생각이 깊은 그리스인에게서 형이상학적 사유의 확고부동한 토대는 그들의 비밀 의식(儀式) 속에 있으며 모든 회의와 변덕은 올림포스 신들에게 발산된다는 점을 상기해야만 한다. 그리스 예술가들은 특히 이 신들에 대해 상호 의존의 막연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런 감정은 아이스킬로스와 프로메테우스 속에 상징화되어 있다. 예술의 거장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을 창조하고 올림포스의 신들을 적어도 멸망시킬 수 있다는, 그것도 영원한 고통의 대가로 획득했던 자신의 지혜를 통해 멸망시킬 수 있다는 오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위대한 천재의 훌륭한 "능력", 그 대가로 받을 영원한 고통도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그런 능력, 예술가의 지독한 자부심 ㅡ 이것이 바로 아이스킬로스 문학의 내용이자 진수다. 반면에 소포클레스는 오이디푸스 속에서 성자의 승전가를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그러나 아이스킬로스의 신화 해석으로 이 신화가 지닌 놀라운 공포의 깊이가 다 측량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예술가가 되는 기쁨, 어떤 불행도 견딜 수 있는 예술적 창조의 자족감은 비애의 검은 호수에 반사된 밝은 구름과 하늘의 영상에 불과한 것이다. 프로메테우스의 전설은 전체 아리아 민족 공동체가 원래 소유했던 재산이며 심오하고 비극적인 것에 대한 그들의 재능을 기록한 것이다. 원죄 신화가 셈족의 본질을 규정하는 의미를 가지듯이, 마찬가지로 이 신화는 아리아인 종족의 본질을 규정하는 의미를 지니며, 두 신화의 관계가 남매지간이라는 것도 개연성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프로메테우스 신화의 전제는 발전하는 모든 문화의 수호신인 불에게 원시 인류가 부여했던 것과 같은 정도의 엄청난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불을 자유자재로 다루고 불을 붙이는 번개의 섬광이나 따뜻한 태양열 같은 하늘의 선물 외에 다른 방법으로 불을 얻는다는 것은 저 명상적인 원시인들에게는 신적인 자연에 대한 모독이며 약찰처럼 생각되었다. 이렇게 해서 최초의 철학적 문제는 해결할 수 없는 당혹스러운 모순을 인간과 신 사이에 세우고 그것을 마치 하나의 바위 덩어리처럼 모든 문화의 입구로 옮겨놓는다. 그는 인류가 관여할 수 있었던 최상, 최선의 것을 모독 행위를 통해 얻어냈고, 이제 다시 고통과 근심 걱정의 홍수를 대가로 치러야 한다. 모욕당한 하늘의 신들은 이런 것들로 높은 곳을 지향하며 추구하는 인간들을 괴롭힌다, 이것은 모독 행위에 품위를 부여하는 가혹한 생각인데, 그 때문에 샘족의 원죄 신화와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셈족의 신화에서는 호기심, 기만적 현혹, 매수, 호색, 요컨대 주로 여성적인 일련의 정념들이 악의 근원으로 간주된다. 아리아인적 관념의 특징은 능동적 죄를 프로메테우스 본연의 미덕으로 간주하는 탁월한 견해다. 이로써 동시에 염세적 비극의 윤리적 토대, 즉 인간이 지은 죄뿐만 아니라 그로 인한 고통을 포함한 모든 인간적 악을 정당화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사물의 본질에 내재한 악 ㅡ 관조적인 아리아인은 성격상 사물의 본질을 억지로 해석하지는 않는다.
- 『음악의 정신으로부터의 비극의 탄생』, 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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