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 2
미겔 데 세르반테스 사아베드라 지음, 안영옥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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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있어서 모든 것이 늘 같은 상태로 지속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참으로 부질없는 짓이다. 오히려 삶은 모두 원을 그리며 흘러가는 듯하다. 말하자면 중심에다 한 점을 놓고 그 주위를 빙글빙글 도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봄은 여름을 추적하고, 여름은 한여름을 추적하며, 한여름은 가을을 추적하고, 가을은 겨울을, 그리고 겨울은 봄을 추적하니, 이렇게 세월은 멈출 줄 모르는 바퀴를 타고 구르고 또 구른다. 단지 인간의 목숨만이 세월보다 더 가볍게 그 종말을 향해 치닫는다. 인간의 목숨을 제한할 한계가 없는 다른 생애에서가 아니라면 다시 시작해 볼 희망도 없이 말이다. 이 말을 회교도의 철학자인 시데 아메테가 하고 있다. 현생의 가벼움과 불안정성, 그리고 기대되는 내세의 영워한 삶을 이해하게 하는 이 말을, 많은 사람들은 신앙의 빛 없이 자연의 빛으로만 이해해 왔다. 하지만 여기 우리의 작가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산초의 통치가 순식간에 끝나 소멸되고 붕괴되어 그림자나 연기처럼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통치 이레째 되는 날 밤 산초는 빵과 포도주에 질려서가 아니라, 재판하고 의견을 내고 법규나 규정을 만드는 데 싫증이 나서 침대에 누웠다. 서글프게 배가 고파 오는데도 불구하고 졸음이 그의 눈동자를 감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때 바로 섬 전체를 가라앉힐 듯한 아주 요란한 종소리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산초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그 요란한 소리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확인하려고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을 뿐 아니라, 고함 소리와 종소리에 더하여 이제는 나팔 소리와 북소리까지 끝없이 들여왔다. 산초는 더욱 혼란스러워졌고 두려움과 공포에 질려 침대에서 내려와 섰는데 바닥이 축축했다. 그는 슬리퍼만 신고 실내 가운은커녕 그 비슷한 것조차 걸치지 않은 채 방문으로 나갔다. 바로 그때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불붙은 횃불과 칼을 손에 들고 큰 소리로 외치면서 복도로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전투 준비, 전투를 준비하시오, 통치자 나리, 전투를 준비하십시오! 섬에 수많은 적들이 침입해 왔습니다. 나리의 책략과 용기가 우리를 구해 주지 않으면 다 망하고 말 겁니다!」(655∼656쪽)

 

 -『돈키호테 2』 <53. 산초 판사의 힘드었던 통치의 결말에 대하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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