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 보론: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 코기토 총서 : 세계 사상의 고전 21
막스 베버 지음, 김덕영 옮김 / 길(도서출판) / 2010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밑줄긋기)


 

 

따라서 시간 낭비야 말로 모든 죄 가운데 제일가는 그리고 원칙적으로 가장 무거운 죄가 된다. 또한 인간에게 주어진 삶의 시간은 각자의 소명을 '굳게 하기'에 너무나도 짧고 소중하다.9) 사교, '쓸모없는 잡담', 사치를 통한 시간 낭비 그리고 심지어 건강 유지에 필요한 시간ㅡ6시간에서 아무리 길어도 8시간ㅡ이상의 수면에 따른 시간 낭비도 절대적인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된다. 아직 프랭클린의 경우처럼 "시간은 돈이다"라는 명제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정신적인 의미에서는 어느 정도 적용된다고 볼 수 있다. 즉 시간이라는 것은 무한히 귀중한 것이다. 왜냐하면 낭비한 모든 시간은 신의 영광에 봉사하는 노동의 기회를 상실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14

 

 

----

 

저자 주

 

14 "시간을 아주 존중하고 네 시간을 조금도 낭비하지 않으려고 매일같이 보다 주의한다면 너는 너의 금과 은을 조금도 잃지 않을 것이다. 만일 헛된 오락, 치장, 축연(祝宴), 쓸모없는 잡담, 아무런 이익도 없는 사교 또는 수면, 이 가운데 어느 것이라도 너의 시간을 빼앗으려고 유혹한다면 더욱더 주의하라." 박스터, 앞의 책, 제1권, 79쪽.ㅡ"시간을 마구 낭비하는 자는 그 자신의 영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매튜 헨리는 말했다(「영혼의 가치」,『청교주의 신학자 문집』,315쪽). 여기서도 프로테스탄티즘의 금욕주의는 예로부터 검증된 길을 따라 움직이고 있다. 우리는 흔히 '시간이 없다'는 것이 현대 직업인의 특징이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하며, 또한 예컨대ㅡ이미 괴테가 자신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52)에서 그랫듯이ㅡ자본주의 발달의 정도를 시계가 매 15분마다 종을 치는지 여부에 따라 측정한다(좀바르트도 자신의 저서 『근대 자본주의』에서 그리했다).ㅡ그러나 우리는 (중세에) 분할된 시간에 따라 산 최초의 인간은 수도승들이었고, 교회의 종은 원래 시간을 분할코자 하는 그들의 욕구를 충족시켰다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

 

역자 주

 

9) 이 문장에서 '굳게 하기'(festmachen)에 인용부호가 있는 것은 이 단어를 성서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하지 아니하리라"(베드로후서 제1장 10절).


52) 괴테는 빌헬름 마이스터를 주인공으로 하는 교양소설(Bildungsroman)을 둘 썼는 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1795∼96)와 『빌헬름 마이스터의 편력 시대』(1829)가 바로 그것이다. 전자에서 괴테는 개인의 주관적·인격적 유일성에 토대를 둔 세계를 문학적 형식을 빌려 형상화하고 있다. 거기에서 개인이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고 혼동할 수 없으며 교체할 수 없는 존재이다. 그리고 후자에서 괴테는 사회적으로 분화되고 직업적으로 전문화된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숙명을 문학적 형식을 빌려 형상화하고 있다. 베버가 보기에 괴테가 문학적으로 묘사한 세계, 즉 직업적 전문가의 행위와 체념의 조합 위에 기초하는 세계는 베버 자신이 이 연구에서 문화사적으로 추적한 바로 그 세계이다. 이 두 거장은 상이한 경로를 통해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던 것이다. 그 밖에도 베버는 1917년에 행한 강연 '직업으로서의 과학'에서 괴테같이 위대한 예술가의 경우에도 자신의 삶을 예술작품으로 만들려고 한 시도는 예술에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하면서 행위와 체념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베버에 따르면 예술가의 인격도 이 행위와 체념에서 나온다. 베버, 『과학방법론 논총』, 591쪽

 

그리고 괴테의 대표적인 희곡 『파우스트』는 모든 학문을 연구했지만 만족하지 못한 주인공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판 대가로 메피스토펠레스의 힘을 빌려 24년 동안 온갖 체험을 한다는 것이 그 줄거리이다. 파우스트는 우주의 신비를 탐구하고 부자가 되어 향락을 누리며 잠시나마 신에 비견될 강력한 자가 되기도 한다. 이로부터 '파우스트적'(faustisch)이라는 형용사가 파생되었는데, 이 형용사는 '끊임없이 새로운 체험과 자극 및 지식 등을 추구하는' 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 *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