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푸는 사람들
일반적으로 베푸는 사람에는 두 부류가 있다. 하나는 마구 베푸는 자이고, 다른 하나는 관대한 자들이다. 마구 베푸는 자는 향연을 베풀고 고기를 배급해 주며, 검투사 시합을 벌이고, 경기를 개최하고, 금수를 싸움시키는 등의 일, 즉 빵과 서커스 구경에 돈을 쓰는 그런 부류로서, 그들은 사람들에게 그 기억을 짧게 남기거나, 전혀 남기지 못할 것이다.
반면 관대한 자들은 자신의 능력으로 강도들로부터 포로들을 사서 되찾아 오거나, 어떤 친구들의 빚을 떠맡거나, 친구들의 딸의 지참금에 도움을 주거나, 재산을 모으고 증식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나는 테오프라스투스가 부(富)에 관한 그의 책에서 중점을 어디에다 두었는지 의심스럽다. 그 책에는 훌륭한 것이 많이 있지만 대중적인 쇼들의 장엄함과 그 준비에 대해 매우 칭찬하고 그런 낭비적인 활동을 부의 향유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런데 내가 몇 가지 예를 인용한 저 관대함의 열매는 훨씬 더 크고 확실한 것처럼 보인다.
대중을 즐겁게 하는 데 쓰여지는 이러한 돈의 낭비를 우리가 신경이 무디어 경악하지 않는 데 대해 아리스토텔레스는 얼마나 준엄하고 진실되게 비난했는가! 그는 말하기를, "만약 사람들이 적에게 포위를 당하여 1섹스티리우스의 물을 1미나로 사게 되었다면, 이것은 우선 믿기 어려운 것으로서 모든 사람들이 놀라겠지만, 획인해본 후에는 곧 그 필요를 인정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저러한 끝없는 베풂과 한없는 낭비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별로 놀라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그것은 필요에 도움이 되지 않고 위엄이 커지지도 않으며, 대중을 즐겁게 하는 것도 잠시 일뿐으로, 매우 경박한 자들이나 하는 짓이다. 바로 그런 점에서 쾌락에 대한 어떤 기억도 만족과 더불어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게다가 그는 훌륭하게 결론짓는다. "이것들은 소년, 부녀자, 노예, 노예와 유사한 자유인들에게는 환영받지만,ㅡ 진짜 고매한 사람들과 정확한 판단으로 발생하는 일들을 처리하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150∼151쪽)
(나의 생각)
'마구 베푸는 자들'을 이제껏 적잖이 봐왔다. '매우 경박한 자들이나 하는 짓'일 뿐이다.
선행과 악행
천재지변과 같은 불가항력의 재난을 당한 사람들에게는 선심을 더 베풀어야 한다. 그러나 또한 절망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단계로 상승하거나 더 잘 되기 위해 도움을 요청해오는 자들에 대해서도 우리는 결코 인색해선 안 된다. 그렇지만 도와줄 적합한 대상을 선정함에 있어서는 정확한 판단과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그래서 엔니우스는,
선행도 잘못 행해지면,
악행이라 생각된다.
고 분명히 말하였던 것이다.
게다가 선하고 고마워하는 사람에게 선심을 베풀었을 경우는 그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즐거운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고마운 선심의 베풂은 무분별한 것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것으로서 최대의 찬사를 받는 것이고, 그 점에서 대다수의 사람들은 가장 고마운 선심의 베풂을 더 열렬하게 찬양하는 것이며, 가장 고귀한 자의 선심은 모든 사람들의 공통적인 피난처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급적이면 모든 자들에게 선심을 베풀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리하여 그 기억들이 그 자손들에게 길이길이 전해져 그들이 배은망덕하지 않도록 하자.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은 선심을 망각하여 배은망덕하는 것을 혐오하며, 그 망각은 선심을 베풀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억제한다는 점에서 불의라고 생각하며, 배은망덕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는 가난한 자의 공동의 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포로를 노예 상태에서 다시 사오고 가난한 자들을 부유하게 하는 것 등의 이러한 선심의 베풂은 개인에게뿐 아니라 공화국에 유익하기조차하다. 사실 우리는 훌륭하게 쓰여진 크랏수스의 연설에서 흔히 우리 원로원의원 신분에 의해 행해진 것을 본다. 따라서 나는 이 선심의 베풂의 관행을 빵과 서커스와 같은 마구 푸는 베풂보다 훨씬 더 선호한다. 전자는 보다 신중하고 더 위대한 사람들의 속성이라 할 수 있고, 후자는 인민 대중의 경망스러움을 쾌락으로 부추기는 아첨꾼의 속성이라 생각된다. (156∼157쪽)
사람들을 도와줄 때에는
사람들을 도와줄 때에는 흔히 성품이나 재산이 고려되곤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실상 호의를 베풂에 있어서 사람들의 재산이 아니라 성품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고 말하기가 쉽고 또 흔히 그렇게 말한다. 참으로 말은 그럴 듯하다. 그러나 정녕 봉사를 할 때 가난하지만 매우 착한 사람보다는 권력 있고 재산 있는 사람의 호의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왜냐하면 그 사람에게서는 더 쉽게 더 빨리 보답이 있을 것이라 생각되어, 대체로 그에게 우리들의 마음이 더 끌리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황의 본질이 무엇인지 보다 신중히 관찰해야 한다. 왜냐하면 확실히 저 가난하나 선한 사람이라면 호의에 보답할 수 없다 하더라도 분명히 고마운 마음을 항상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 어떤 사람이 다음과 같이 아주 적절하게 말하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여전히 돈을 갖고 있다면 그 사람은 돈을 갚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만약 돈을 갚았다면 그는 더 이상 돈을 갖고 있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호의를 갚은 것이라면 그대로 그 사람은 여전히 호의의 감정을 지니고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호의의 감정을 지니고 있다면, 그는 그 호의의 감정을 되돌려준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반면 부유하고 명예로우며 유복하다고 자처하는 자들은 실제로 호의를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매우 큰 어떤 호의를 받으면서도 심지어 자신이 호의를 베풀었다고 생각하며, 또 자기에게 무언가 요구하고 기대하지나 않을까 염려하며, 사실상 자신이 보호권에 의해 이용되거나 피호민이라 불리는 것을 마치 죽음처럼 생각한다.
(160∼161쪽)
테미스토클레스의 조언
한편 가난한 사람은 누군가가 자기를 도와줄 때, 이것은 자신의 경제사정 때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사람 됨됨이 때문이라는 것을 믿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그는 도움을 준 그 특수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가급적 많은 도움을 주는 자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에 장차 유사한 횡재를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걸 수 있는 그 어떤 사람에게도 감사의 표시를 하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만약 그가 자기 차례가 되어 봉사를 하게 될 때면, 그는 그 봉사를 크게 나타내기는커녕 실제로 자기가 행한 바의 중요성을 최소하하려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네가 부유하고 유복한 자들을 변호해서 말한다면, 그 당사자 또는 어쩌다 그 자식에게만 고마운 마음이 한정되어 머물게 되겠지만, 가난하지만 의롭고 겸손한 자를 지지해 도와준다면 악하지 않은 사람들 모두, 즉 시민의 대다수는 언젠가는 네가 자기들의 보호자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상기하기 바란다.
따라서 부유한 사람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보다는 선한 사람들에게 하는 것이 더 낫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온갖 종류의 사람들에게 충분히 베풀 수 있도록 전적으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상황 판단이 곤란하게 되면 분명하게 테미스토클레스의 조언을 따르도록 해야 한다. 그는, 선하지만 가난한 사람과 선하지는 않지만 부유한 사람 중 누구와 딸을 결혼시켜야 할지 조언해 달라고 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돈 있는 악한 사람보다는 돈은 없지만 사람다운 사람을 택하겠오."(16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