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수치심과 일종의 생활의 미적 감각, 절제와 중용, 그리고 모든 정신 혼란의 진정과 사물들의 한계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는 도덕적 선의 나머지 한 부분에 관해 언급해야 되겠다. 여기에 더 포함시킬 수 있는 것이 그리스어로는, 소위 프레폰이라 말해지는 것으로서, 우리 라틴어로는 데코룸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의 본질은 도덕적 선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왜냐하면 데코룸한 것은 도덕적으로 선하며, 도덕적으로 선한 것은 데코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네스툼과 데코룸 간에 어떤 차이가 있느냐 하는 문제는, 설명의 필요보다는 직감으로 이해하기가 더 쉽다. 왜냐ㅏ면 데코룸한 것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은 명예로운 도덕적 선이 먼저 있고 나서야 비로소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논의되고 있는 도덕적 선의 이 부분에서뿐만 아니라 앞에서 언급한 세 부분에 걸쳐 무엇이 데코룸한지는 명백하게 나타난다. 즉, 이성과 웅변을 사려깊게 이용하는 것과 행동을 신중히 하는 것, 그리고 모든 사물 중에서 어떤 것이 참됨인가를 직시하여 유의하는 것은 데코룸한 것이지만, 반대로 판단을 잘못하여 실수나 오류를 범하여 기만당하는 것은 미쳐 날뛰고 정신나간 짓만큼이나 데코룸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정당한 모든 것은 데코룸하며, 반대로 불의는 추한 것처럼 데코룸하지 않다.

 

용기에 대한 생각도 비슷하다. 왜냐하면 용감하고 위대한 정신의 소산은 남자에게 가치있고 어울리는 것으로 데코룸하게 보이지만, 그 반대의 것은 추한 것처럼 데코룸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는 이 데코룸하다는 것은 실로 모둔 도덕적으로 선한 것, 즉 호네스툼과 관계가 있고, 또 그 관계가 매우 밀접하게 맺어져 있어 어떤 심오한 이성에 의해 식별되는 것이 아니라, 자명한 것으로 나타난다. 사실 소위 데코룸한 것은 모든 덕에서 인식되는 것이고, 사실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사유 능력에 의해 덕에서 더 잘 분리시킬 수가 있다. 육체의 매력과 미는 건강상태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듯이, 우리가 말하고 있는 이 데코룸은 실로 덕과 완전히 혼합되어 있어, 다만 느낌과 생각에 의해서 구별되는 것뿐이다.

 

그런데 그것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가 있다. 하나는 모든 호네스툼에 내재해 있는 어떤 일반적인 데코룸을 이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일반적인 데코룸에 종속되어 있으면서 호네스툼의 각개의 부분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보다 더 우월한 전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되는 것이 보통이다. 즉, '데코룸이라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나머지 짐승의 본성과는 다르다는 점에서 인간의 우수성과 합치하는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부분이 전체에 종속되어 있는 후자는 다음과 같이 정의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데코룸이란 자연, 즉 인간 본성과 합일하여 그곳에서 어떤 예의바른 신사의 태도와 함꼐 중용과 절제가 나타나는 바로 그것이다.'

(74쪽∼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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