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나의 고전 읽기 1
손택수 지음, 정약전 원저 / 미래엔아이세움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얼과 말을 지키기 위해 활동한 백석의 시에 김이 나온다.

 

 

옛날엔 통제사統制使가 있었다는 낡은 항구의 처녀들에겐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千姬라는 이름이 많다

미역오리같이 말라서 귤 껍질처럼 말없이 사랑하다 죽는다는

이 천희千姬의 하나를 나는 어느 오랜 객주집의 생선 가시가 있는 마루방에서 만났다.

저문 유월의 바닷가에선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방등이 불그레한 마당에 김 냄새 나는 비가 내렸다.

 

                                                                                                                 - 백석, 「통영統營」

 

백석의 시에서 천희라는 여성은 통영이라는 지리적 공간과 겹쳐져서 형상화되고 있다. 시인은 어촌의 풍경을 그리듯 천희를 그린다. "옛날이 가지 않은 천희"는 옛 모습을 지키고 있는 여성의 외모를 보여 주는 동시에 나라를 잃어버리지 않았던 옛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의 통제사가 우리의 바다를 지킬 수 있었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은 강탈당한 모국을 떠올리면서 슬픔의 정서를 낳는다. 그래서 "조개도 울을 저녁" 소라 껍데기 같은 방에서 흘러나오는 등불 빛 아래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는 것이다. 이 비는 통제사와 나라를 잃어버린 통영의 울음이기도 하고, 순정을 저버리지 못하는 천희의 울음이기도 하고, 통영과 천희와 잃어버린 나라를 겹쳐서 생각하는 시인의 울음이기도 하다. 시인은 여기서 이 비를 "김 냄새 나는 비"라고 했다. 김 냄새가 묻어나는 비, 어쩌면 이 특별한 이미지는 마루방에 둥글게 모여 앉아 김에 밥을 싸서 먹던 가족들에 대한 향수를 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 아닐까. 이 시는 민족 공동체와 가족 공동체가 깨어져 버린 시대에 대한 비애를 한 여성과의 만남을 통해 그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백석의 시에서 '천희'를 비유하고 있는 시어 중의 하나가 미역이다. 김처럼 미역은 우리 민족의 밥상을 장식하는 친숙한 해조류이다. 이 친숙함이 천희를 보다 살갑게 만든다. 그렇다면 정약전은 미역을 어떻게 그리고 있을까.

 

 

길이는 열 자 정도로서 한 뿌리에서 잎이 나오고

그 뿌리 가운데에서 한 줄기가 나온다.

또한 그 줄기 양쪽에서 날개가 나오는데,

날개 안은 단단하고 바깥쪽은 부드럽다.

주름이 쌓여 있는 부분은 도장을 찍은 것과 같다.

그 잎은 옥수수 잎과 비슷하다. 1∼2월에 뿌리가 나고

6∼7월에 따서 말린다. 뿌리의 맛은 달고 잎의 맛은 담박하다.

임산부의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데 이보다 나은 것이 없다.

모자반과 같은 지대에서 자란다.

 

 

『초학기』라는 옛 문헌에 보면 새끼를 낳은 고래가 미역을 뜯어먹는 모습을 보고 산모에게 미역을 먹이는 풍습이 생겼다고 한다. 미역은 정약전이 말한 대로 아기를 낳은 고통을 달래 주는 산후 최고의 건강식으로 통한다. 생일날 우리는 싫든 좋든 상에 오르는 미역국을 먹어야 한다. 생일 밥상에 미역국이 오르는 것은 나의 생일이 어머니의 출산일이기도 함을 기억하라는 뜻이 아닐까. 미역국을 먹으며 우리는 아기를 낳는 고통을 기꺼이 감수한 어머니의 사랑을 함께 먹는다.(199∼202쪽)

 

 - 손택수, 『바다를 품은 책 자산어보』, <김과 미역과 어머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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