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가와 시력

 

인류의 1/6이 근시인데 독서가 중에는 그 비율이 월등히 높아 24%에 가깝다. 아리스토텔레스, 루터, 새뮤얼 피프스, 쇼펜하우어, 괴테, 쉴러, 키츠, 테니슨, 존슨 박사, 앨릭잰더 포프, 케베도, 워즈워스, 단테, 개브리얼 로세티, 엘리자베스 브라우닝, 키플링, 에드워드 리어, 도로시 L. 세이어스, 예이츠, 우나무노, 타고르, 제임스 조이스, 이들은 모두 시력이 약했다. 많은 경우 사정이 더욱 나빠 호머에서 밀턴, 그리고 제임스 서버와 보르헤스까지 유명한 독서가 중 상당수는 만년에는 맹인이 되기도 했다. 30대 초반에 시력을 잃기 시작해서 더 이상 아무 것도 볼 수 없게 되었던 1955년에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 도서관 관장에 임명되었던 보르헤스는 한때 자신에게 허용되었던 책을 빼앗겨 버린 실패한 독서가의 기이한 운명에 대해 이렇게 논평했다.

 

그 누구도 눈물을 뿌리거나 책망하지 말자

하느님의 권능의 선언을

이처럼 장엄한 아이러니로

나에게 암흑과 책을 동시에 내리셨나니.

 

'망각과 잠을 닮은 창백하고 모호한 재'의 흐릿한 세계에 파묻혀 사는 이런 독서가의 운명을 보르헤스는 양식과 마실 것으로 둘러싸인 채 굶주림과 갈증으로 죽어 가야 했던 미다스 왕의 그것과 비교했다.(420∼421쪽)

 

 

안경의 발명

 

그런 변화가 언제 일어났는지 우리는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그러나 1306년 2월 23일,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교회의 설교단에서 피사 출신의 조르다노 다 리발토가 설교를 했는데, 그 설교에서 그는 신자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유익한 도구의 하나인' 안경의 발명이 벌써 20년 전에 있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기를 "나는 안경을 발견하고 만들었던 사람을 누구보다도 먼저 만났고 함께 대화도 나누었다"고 강조했다.(423쪽)

 

 

안경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15세기 들어서도 상당한 세월이 흐르기까지 독서용 안경은 사치품에 속했다. 비싸기도 했을 뿐더러 책 자체가 극소수의 사람들이 소유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안경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인쇄술이 발명되고 책의 인기가 상대적으로 높아진 뒤부터는 안경에 대한 수요도 증가했다. 예를 들면 영국에서는 행상들이 이 마을 저 마을을 돌면서 '값싼 대륙풍 안경'을 팔고 다녔다. 스트라스부르에서는 구텐베르크의 최초의 성경이 출간되고 겨우 11년이 지난 1466년에 안경 제조업자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뉘른베르크에는 1478년에, 프랑크푸르트에는 1540년에 안경 제조업자가 등장했다. 더욱 많고 더욱 훌륭한 안경이 더욱 많은 독자들을 더욱 훌륭한 독서가로 만들었고, 더욱 많은 책을 구입하도록 했다는 말도 가능하다. 바로 그런 이유로 해서 안경은 지식인이나 도서관 사서, 학자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자리잡게 되었다.(424∼425쪽)

 

    

신은 절대로 문학으로 자신을 바쁘게 만드는 법이 없었다

 

그리스, 로마, 그리고 비잔티움에서는 학자 겸 시인-서책(書冊)이나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것으로 상징되는데-이 귀감으로 삼을 만한 인물로 여겨졌지만 그 역할은 어디까지나 인간에게 국한되었다. 신은 절대로 문학으로 자신을 바쁘게 만드는 법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이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은 절대로 없다. 신의 손에 책을 쥐어 준 종교는 그리스도교가 처음이었고, 14세기 중반 이후 상징적인 그리스도교 책에는 항상 또 다른 이미지, 즉 안경이 동반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느님 아버지의 전지전능함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을 근시안으로 표현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할 것이지만, 교부(敎父)들-성 토마스 아퀴나스, 성 아우구스티누스-과 카톨릭 교회법으로 받아들여진 고대 저자들-키케로, 아리스토텔레스-은 간혹 지혜의 안경을 낀 채 학술 서적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되었다.(426쪽)

 

   

그 책 우리 집에도 있는데

 

이 안경은 주인을 책망하고 있다. 여기, 세상을 직접 보려 들지 않고 책장의 죽은 단어를 응시함으로써 세상을 간접적으로 살피려는 사나이가 있노라고. 브란트가 그린 그 얼빠진 독서가는 "내가 바보선(船)에 가장 먼저 오르려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나에게는 책이 인생의 전부여서 황금보다 더 귀중하다. 여기 나는 엄청난 보물을 가지고 있다. 비록 한마디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이라고 말한다. 그는 고백하기를 학문적인 책에서 이것저것 인용하는 유식한 사람들 틈에 끼여 있다가 "그 책 우리 집에도 있는데" 라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고 털어놓는다. 그는 책은 많이 긁어모았지만 지식은 쌓지 못했던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2세와 자기 자신을 비교하고 있다.(429쪽)

 

 

얼간이 시리즈

 

브란트의 책이 얼마나 인기가 많았던지 1509년 인문주의 학자 가일러 폰 카이저스베르크는 브란트의 책에 등장하는 얼간이들을 바탕으로 일요일마다 한 명씩 빗댄 설교 시리즈를 시작했다. 브란트의 책 제1장을 기초로 한 첫 번째 설교는 당연히 책벌레 얼간이에 대한 것이었다. 브란트는 이 얼간이에게 자신을 묘사해 보라며 단어들을 빌려 주었다. 이 묘사를 이용하여 가일러는 책에 빠진 얼간이를 일곱 가지 형태로 나누었는데, 얼간이의 머리에 달린 종이 딸랑거리는 것으로 갖가지 얼간이를 알아볼 수 있게 했다.

 

가일러에 따르면 첫 번째 종은 책이 마치 값비싼 가구나 되는 것처럼 장식을 위해 책을 수집하는 얼간이를 상징한다. 이처럼 과시용으로 책을 축적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A.D. 1세기에 라틴 철학자인 세네카가 비난하기도 했다.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책을 공부의 도구가 아닌 식당방의 장식으로 이용한다"고 가일러는 강조한다. ······

 

두 번째 종은 현명해지려는 욕심에서 지나치게 많은 책을 읽는 부류의 얼간이에게 울린다. 가일러는 이런 얼간이를 음식을 너무 많이 먹어 일으키는 위통이나, 포위된 상태에서 지나치게 많은 부하들을 거느리고 있어 오히려 방해받는 그런 장군에 비교한다. ······

 

세 번째 종은 책을 모으기는 하되 진정으로 읽지는 않고 자신의 값싼 호기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건성으로 들춰보기만 하는 얼간이를 부른다. 가일러는 이런 얼간이를 마을을 돌면서 남의 집 앞에 걸린 상징물이나 표시물을 찢어 내면서도 그것을 자세히 살피려 드는 그런 미치광이에 비교한다. ······

 

다섯 번째 종은 책을 값비싼 표지로 장정하는 얼간이를 경고한다(여기서 다시 가일러는 은근히 세네카를 인용하는데, 세네카는 "책의 장정이나 상표에서 쾌락을 얻는" 수집가를 경고했다. 이런 무식쟁이의 집에 가면 "서재도 욕실처럼 부유한 가정의 필수적인 장식이기 때문에 천장까지 닿는 선반 가득히 웅변가와 역사학자들의 전집이 꽂힌 것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여섯 번째 종은 고전은 한 번도 읽지 않았을 뿐 아니라 철자나 문법, 수사학에 대한 지식은 쥐뿔도 없으면서 엉성한 책을 써서 출판하는 얼간이를 부른다. 이런 얼간이는 자신의 알맹이 없는 낙서를 위대한 저작물 옆에 세워 두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해 독서가에서 작가로 변신한 인물이다. ······ (429∼432쪽)

 

대중들 앞에서의 낭독이 왜 유익한지

 

학자들과 육감적인 보통 사람들을 구분하며 신체의 강인함과 정신력을 대립시키는 일에는 세심한 논증이 요구된다. 한쪽 편에는 근로자들이나 책에 접근할 기회를 봉쇄당한 노예들이 차지하는데, 인류의 대다수에 해당하는 이들은 가진 것이라곤 뼈와 근육밖에 없다. 다른 한 쪽에는 사상가, 엘리트 필사자, 권력과 결탁한 지식인 등 소수가 서게 된다. 세네카는 행복의 의미를 논하는 대목에서 소수에게만 지혜의 성채를 허용하면서 다수의 의견을 멸시했다. "가장 참다운 것은 대다수로부터 환영을 받아야 하지만 인민들은 그러기는커녕 최악을 선택한다. ······ 인민들의 말에 귀기울이는 것보다 더 해로운 것은 없다. 다수가 승인한 것을 옳다고 판단하고, 이성을 따르기보다는 일치 단결을 위해서만 사는 대중들의 행동을 삶의 모델로 받아들이는 것은 해롭기 이를 데 없다"고 그는 말했다.(434쪽)

 

  

우리가 희미하게 섬광이나 그림자로 느꼈던 무엇인가를 인식하게 될 때

 

시간과 장소, 우리의 기분과 기억, 경험과 욕망에 따라서 독서의 즐거움은 최선의 상태에서도 마음의 긴장을 풀어 주기보다는 오히려 더욱 조이게 만든다. 때로는 신경을 너무 팽팽하게 잡아당겨 우리 독자들은 마음이 긴장을 덜 느끼기는커녕 더 강하게 의식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책장 속에서 펼쳐지는 세상이 우리의 의식으로 녹아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우리는 마치 돈키호테처럼 경이감에 빠져 그런 허구적 풍경 속을 목적 없이 방황하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에 독서가는 아주 팽팽한 상태에서 책을 읽게 된다. 심지어 모든 의심을 접어 둔 상태에서도 우리는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만은 의식하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를 모를 때조차도 우리는 왜 읽는지를 알고 있다. 이때 우리 맘 속에서는 텍스트의 환영과 책 읽기 행위가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결말을 발견하기 위해, 즉 이야기 자체를 위해 글을 읽는다. 우리는 독서 행위 자체를 위해, 즉 종말에 닿기 위해 글을 읽지는 않는다. 우리는 주변을 망각한 채 추적자처럼 무엇인가를 열심히 탐색하며 읽는다. 우리는 또 책장을 건너뛰어 가며 산만하게도 읽는다. 그리고 업신여기듯, 존경하듯, 분노하듯, 태만하게, 열정적으로, 질투하듯, 갈망하듯 책을 읽기도 한다. 또 즐거움을 안겨 주는 것이 대체 어떤 것인지를 파악하지 못하면서도 솟구치는 즐거움으로 책을 읽는다. 레베카 웨스트는 『리어왕』을 읽은 뒤 "이런 감정은 대관절 무엇일까?" 라고 묻는다. "내 인생에서 그토록 엄청난 황홀경을 느끼게 만든 지고한 예술 작품의 힘은 무엇일까?" 우리는 모른다. 그것을 건성으로 읽기 때문이다. 마치 무중력 상태에서 공간을 부유하는 것처럼 우리는 편견에 가득 찬 시선으로 악의적으로도 글을 읽는다. 또 우리는 텍스트의 결함을 고쳐 가면서 관대하게 읽기도 한다. 그러다가 간혹 운이라도 좋으면 누군가가 아니면 무엇인가가 "우리의 무덤 위를 짓밞은 것처럼", 혹은 어떤 기억이 우리의 마음 깊숙이 숨어 있다가 순간적으로 되살아난 것처럼 숨막히는 전율로 책을 읽기도 한다. 이런 현상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뭔가를, 아니면 우리가 희미하게 섬광이나 그림자로 느꼈던 무엇인가를 인식하게 될 때 일어나는데, 귀신 같은 형태로 떠올랐다가 그것이 뭔지를 깨닫기도 전에 다시 우리의 깊은 내면으로 침잠해 버리는 그것은 우리를 한층 더 노숙하고 현명하게 만든다.(437∼4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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