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벙어리처럼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A.D. 1세기 말의 어느 날 저녁,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에실리우스 세쿤두스(미래의 독서가들에게는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사망한 그의 박학한 삼촌 대(大) 플리니우스와 구분하기 위해 소(小) 플리니우스로 알려졌다)는 의분을 느끼면서 로마에 있는 어느 친구의 집을 나섰다. 자신의 서재에 도착하자마자 플리니우스는 자리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으려고(아마도 그가 훗날 책으로 묶게 될 편지 뭉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변호사인 클라우디우스 레스티투트스에게 그날 일어난 사건들을 글로 써서 보냈다. "방금 내 친구 집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 책 읽기를 그만두었다네. 그 문제에 대해 자네에게 직접 말할 수 없어 당장 편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때 읽고 있던 텍스트는 어느 모로 보나 매우 세련된 것이었네. 그런데도 재치 있는 사람 두세 명이 벙어리처럼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들은 입을 여는 법도 없었고 손을 움직이지도 않았으며 앉은 자세를 바꾸려고 다리를 뻗는 일도 없었네. 그런 근엄한 표정을 짓고 학자연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게으름과 자만, 재치와 양식(良識)의 결핍으로 얻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루 종일 시간을 쏟아부은 나에게 비애만 안겨 주고,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고자 했던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 버리니 말야!"

 

그로부터 스무 번의 세기가 흐른 지금의 우리로서는 플리니우스의 절망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의 시대에는 작가들의 낭독이 꽤나 유행했던 행사였으며, 다른 의식에서와 바찬가지로 낭독에도 작가와 청중 모두에게 엄중한 에티켓이 요구되었다. 청중들에게는 비평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 기대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는 텍스트를 수정하곤 했다. 미동도 않던 청중이 플리니우스를 그렇게 분개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356쪽)

 

(나의 생각)

저토록 유명한 플리니우스에게도 저런 황당한 일이 심심찮게 있었던 모양인가 보다. 하물며 오늘날을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수십억 명에 달하는 '보통 사람들' 가운데 어느 한 블로거가 (수많은 대중을 향해 큰 소리로 낭독하는 셈이나 마찬가지 행위인) '사이버 공간에 글을 올리는 행위'를 마치고 난 뒤에, 그 글의 작성자 스스로 '참기 힘든 비애'를 느꼈다고 해도 나는 이상할 게 눈꼽만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그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확신에 찬 모습보다는 어딘지 약간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어느 독서가의 연기를 칭송하면서 플리니우스는 이렇게 묘사했다. "그는 목소리를 자유자재로 낮추고 높였으며, 고상한 주제에서 저급한 주제로, 단순한 주제에서 복잡한 주제로, 혹은 가벼운 주제에서 심각한 주제로 넘어가는 일에도 능수능란했다. 유쾌한 목소리는 또 다른 매력으로 작용했으며, 낭독에 매력을 더하는 겸손함과 얼굴의 홍조와 예민함으로 인해 그 목소리는 더욱 도드라졌다. 나도 이유는 잘 모르지만, 확신에 찬 모습보다는 어딘지 약간 쑥스러워하는 모습이 작가에게는 더 잘 어울린다."(358쪽)

 

 

대중들 앞에서의 낭독이 왜 유익한지

 

플리니우스는 대중들 앞에서의 낭독이 왜 유익한지 그 이유를 몇 가지로 들고 있다. 두말 할 필요 없이 명성이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작가 본인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즐거움 또한 빼놓을 수 없었다. 텍스트를 듣다 보면 청중들도 책으로 묶인 작품을 사고 싶다는 마음이 동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작가나 서적상, 출판업자 모두를 만족시킬 만한 수요가 창출된다는 말로 그는 이 같은 자아 몰입적인 행위를 정당화시켰다. 그의 관점에서는 대중들 앞에서 텍스트를 읽는 행위야말로 그 자체가 출판의 첫 단계였던 셈이다.(360∼361쪽)

 

지방 고유의 언어야말로 

 

그래도 작가들은 즉흥적으로 쏟아지는 대중의 격려를 얻으려고 계속 노력했다. 13세기 말 단테는 '일반 대중의 언어', 즉 지방 고유의 언어야말로 라틴어보다 훨씬 더 고귀하다면서 그 이유를 3가지로 설명했다. 첫 번째는 에덴 동산의 아담이 사용했던 최초의 언어라는 점이었고, 두 번째는 라틴어의 경우 학교에서 배워야만 하기 때문에 '인공적'인 반면 지방의 고유 언어는 자연스럽다는 점, 마지막으로 극소수만 말하는 라틴어와는 달리 지방 언어는 모든 사람에 의해 두루 쓰여지기 때문에 보편적이라는 설명이었다. 단테는 비록 지방 고유 언어에 대한 글을 역설적이게도 라틴어로 쓰긴 했지만 말년에 라벤나에 있는 구이도 노벨로 다 폴렌타의 저택에서 자신의 『신곡』몇 구절들을 자신이 그토록 옹호했던 '지방 언어'로 크게 소리내어 읽었다.(362∼363쪽)

 

 

나 혼자 읽을 때는 아무 결점이 보이지 않던 문장도

 

영국의 소설가 새뮤얼 버틀러도 자신의 『비망록』에서 이렇게 논평했다. "몰리에르가 자기 작품을 하녀에게 읽어 주었다면 그 이유는 큰 소리로 읽는 행위만으로도 자신의 작품을 자기 앞에 새로운 각도로 드러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관심을 작품 한 행 한 행에 집중시킴으로써 작품에 대한 판단을 좀더 엄격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나 또한 내가 쓴 글을 누군가에게 큰 소리로 읽어 주곤 한다. 그 낭독을 들을 상대방으로는 아무라도 좋겠지만 내가 신경써야 할 만큼 영리한 인물이어서는 곤란하다. 나 혼자 읽을 때는 아무 결점이 보이지 않던 문장도 큰 소리로 읽으면 허점이 군데군데 눈에 띈다." (367쪽)

 

(나의 생각)

이런 대목을 읽으면 '최소한의 퇴고 과정도 없이' 글을 함부로(?) 사이버 공간에 버젓이 올리는 사람들 생각이 난다. 그들을 도대체 어떻게 판단해야 할지 대략 난감하다. 그런 글들을 읽는 데도 이젠 신물이 난다. 그런 쓰잘 데 없는 글을 읽을 바엔 차라리 그 아까운 시간에 제대로 검증받은 '고전'을 펼쳐 그 속에 담긴 주옥같은 글을 한 줄이라도 더 읽는 게 백 번 낫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그것도 꽤나 자주.

 

 

디킨스의 낭독회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쓴 그의 두 번째 작품 『종소리』의 낭독회를 열고 난 뒤 디킨스는 부인인 캐서린에게 쓴 편지에서 "만약 당신이 지난 밤 마크레디(디킨스의 친구)를 보았다면, 내가 작품을 읽어 내려갈 때 그 친구가 소파에 앉아 부끄러움도 모르고 어깨를 들먹이며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보았다면, 당신도 내가 느꼈던 것처럼 힘을 가진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것인지 느끼게 되었을 거요"라며 몹시 기뻐했다. 그의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짓누를 힘, 감동을 안겨 주고 동요시킬 수 있는 힘, 그의 작품들의 힘, 그의 목소리의 힘"이라고 덧붙였다. 블레싱턴 후작 부인에게 『종소리』의 낭독회에 대해 "당신까지도 몹시 흐느끼게 만들 수 있다는 희망에 저는 한껏 들떠 있어요"라고 적고 있다.(369쪽)

 

 

디킨스는 훨씬 더 전문가다운 연기인이었다

 

디킨스는 훨씬 더 전문가다운 연기인이었다. 그가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텍스트를 해석하면-말투, 강조, 심지어 이야기를 낭독하기 적합하게 삭제하거나 수정한 것까지도-누구나 그 변형된 텍스트를 유일한 해석으로 받아들였다. 그가 벌였던 그 유명한 낭독회 여행을 보면 이런 점이 더욱 명백해진다. 클리프턴에서 시작하여 브라이턴에서 끝난 최초의 장거리 여행은 40여 개 도시에서 80여 차례 낭독회를 갖는 것으로 꾸며졌다. 그는 '창고, 무도회장, 서점, 사무실, 공회당, 호텔과 펌프실에서' 글을 낭독했다. 처음에는 높은 책상 앞에서, 나중에는 관중들이 자신의 몸짓을 더 명확히 볼 수 있게 좀더 낮은 책상 앞에서 낭독을 했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 한 편을 듣기 위해 모인 청중들도 자기 친구들이 그 작품에서 받았던 인상을 그대로 받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을 갖고 있었다. 청중들은 디킨스가 바라던 대로 반응했다. 어느 남자는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흐느끼다가 나중에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자기 앞에 놓인 의자의 등받이 위로 쓰러져 격한 감정에 몸을 맡겼다. 디킨스가 다른 주인공이 다시 등장할 때가 되었다고 느낄 때면 이제는 다른 사람이 웃음을 거두고 두 눈을 닦다가 그 인물이 등장하자마자 도저히 참지 못하겠다는 듯이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니 그의 낭독에 대해서는 아마 플리니우스도 고개를 끄덕였으리라.

 

이런 결과는 고된 훈련 끝에 얻어진 것이었다. 디킨스는 한 작품의 낭독과 몸짓을 연습하느라 적어도 2개월 이상의 시간을 들였다. 그는 글을 낭독할 때 자신이 어떤 반응을 비쳐야 하는지도 궁리하고 있었다. ······ 그 결과 소설들은 마치 그를 통해 말하는 것처럼 느껴지게 되었다. 낭독회가 끝나면 뜨거운 찬사가 쏟아졌는데, 디킨스는 이런 찬사에 대해 한 번도 감사의 마음을 표했던 적이 없었다. 청중들에게 고개를 한 번 까딱이고는 무대를 떠나 땀에 흠뻑 젖은 옷을 갈아입는 것이 고작이었다.(370∼371쪽)

 

 

글을 쓴다는 것은 마술같은 행위로 비쳐지기 때문

 

일부 독자들은 미신적인 마음에 끌려 낭독회를 찾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들은 도대체 작가란 인간들은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어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글을 쓴다는 것은 마술 같은 행위로 비쳐지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있어 소설이나 시를 창작할 줄 아는 누군가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작은 우주의 창조자 아니면 작은 신의 얼굴을 보는 것 같은 기분에 젖게 한다. 그런 사람들은 "폴로니우스에게 행운이 깃들기를. 저자 혜존(蕙存)" 식의 헌사(獻辭)라도 받을 희망에 저자의 코밑으로 책을 밀어넣으며 서명을 요구한다. 이런 사람들의 극성에 떼밀려 윌리엄 골딩은(1989년 토론토에서 열린 문학 축제에서) "언젠가는, 나의 소설 중에서 윌리엄 골딩이라는 사인이 들어 있지 않은 것을 발견하는 것이 큰 횡재가 될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말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이런 독자들의 호기심은 꼭두각시 극장의 무대 뒤편을 들여다보고 싶어하거나 곧잘 시계를 분해하는 어린이들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들은 『율리시스』를 쓴 그 손에, 심지어 조이스가 언급했듯이 "그 손은 다른 일도 많이 했는데도" 굳이 그 손에 입을 맞추고 싶어한다. (279쪽)

 

 

"당신은 셸리를 정말로 보았나요?" 라고 물으면

 

스페인 작가인 다마소 알론소는 대중 낭독회에 별다른 감명을 받지 못했다. 그는 대중 낭독회를 "속물 같은 위선과 우리 시대의 치유 불가능한 천박함을 드러내는 것" 정도로 여겼다. 홀로 소리내지 않고 읽으면서 서서히 책의 진가를 발견하는 것과, 군중이 꽉 들어찬 원형극장에서 순식간에 어떤 작가의 얼굴을 익히게 되는 경우를 구분하면서, 알론소는 후자에 대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숨어 있는 조급증의 결과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야만의 결과이다. 왜냐하면 문화는 점진적인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풀이했다.

 

토론토, 에든버러, 멜버른 아니면 살라망카에서 열리는 작가들을 위한 축제에서 저자들의 낭독회에 참여하는 독자들은 자신들도 예술 활동의 한 부분이 되디라는 기대를 갖는다. 전혀 예기치 않았고 전혀 연습도 없이, 그러면서도 결코 잊을 수 없는 이벤트가 그들의 눈앞에 펼쳐져 자신들까지 창조의 순간을 목격한 존재로 만들어 주기를 그들은 희망한다. 아담에게조차도 거부되었던 그 창조의 환희를 말이다. 그래서 먼 훗날 수다떨기를 좋아하는 늙은이가 되었을 때 누군가가 로버트 브라우닝이 언젠가 빈정대는 투로 물었던 것처럼, "당신은 셸리를 정말로 보았나요?" 라고 물으면 그 대답은 "그럼요"가 될 것이다.(372∼373쪽)

 

 

보호와 번식의 기관

 

판다의 위기에 관한 에세이에서 스티븐 제이 굴드는 "동물원은 포획과 진열의 기관에서 보호와 번식의 기관으로 바뀌고 있다"라고 쓰고 있다. 가장 훌륭한 문학 축제를 통해, 가장 성공적인 대중 낭독회를 통해 작가들은 보호되고 번식된다. 보호된다는 뜻은 (플리니우스가 고백했듯이) 작가들에게 자신들의 작품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청중이 많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는 의미에서이고, 또 잔인한 표현일는지는 모르지만 (플리니우스와는 달리) 노동에 대한 대가를 받는다는 뜻에서 보호된다고 할 수도 있다. 그리고 번식된다는 뜻은 작가들이 독자들을 낳고, 또다시 독자들이 작가를 낳기 때문이다. 낭독회가 끝나고 책을 사는 관중들은 그 낭독회를 증식시키는 것이고, 작가 입장에서는 백지장을 채워 나가는 그 행위가 텅빈 벽을 향해 공허하게 떠들어내는 꼴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함으로써 고무를 받아 더 많은 글을 쓰게 되는 것이다.(3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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