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처럼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A.D. 1세기 말의 어느 날 저녁, 가이우스 플리니우스 카에실리우스 세쿤두스(미래의 독서가들에게는 A.D.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사망한 그의 박학한 삼촌 대(大) 플리니우스와 구분하기 위해 소(小) 플리니우스로 알려졌다)는 의분을 느끼면서 로마에 있는 어느 친구의 집을 나섰다. 자신의 서재에 도착하자마자 플리니우스는 자리에 앉아 생각을 가다듬으려고(아마도 그가 훗날 책으로 묶게 될 편지 뭉치에 시선을 고정시키고) 변호사인 클라우디우스 레스티투트스에게 그날 일어난 사건들을 글로 써서 보냈다. "방금 내 친구 집에서 화나는 일이 있어 책 읽기를 그만두었다네. 그 문제에 대해 자네에게 직접 말할 수 없어 당장 편지를 써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네. 그때 읽고 있던 텍스트는 어느 모로 보나 매우 세련된 것이었네. 그런데도 재치 있는 사람 두세 명이 벙어리처럼 듣고만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사람들은 입을 여는 법도 없었고 손을 움직이지도 않았으며 앉은 자세를 바꾸려고 다리를 뻗는 일도 없었네. 그런 근엄한 표정을 짓고 학자연하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게으름과 자만, 재치와 양식(良識)의 결핍으로 얻는 게 도대체 뭐란 말인가? 하루 종일 시간을 쏟아부은 나에게 비애만 안겨 주고, 가장 절친한 친구가 되고자 했던 사람을 적으로 만들어 버리니 말야!"
그로부터 스무 번의 세기가 흐른 지금의 우리로서는 플리니우스의 절망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의 시대에는 작가들의 낭독이 꽤나 유행했던 행사였으며, 다른 의식에서와 바찬가지로 낭독에도 작가와 청중 모두에게 엄중한 에티켓이 요구되었다. 청중들에게는 비평적인 반응을 보일 것이 기대되었고, 그것을 바탕으로 작가는 텍스트를 수정하곤 했다. 미동도 않던 청중이 플리니우스를 그렇게 분개시킨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356쪽)
(나의 생각)
저토록 유명한 플리니우스에게도 저런 황당한 일이 심심찮게 있었던 모양인가 보다. 하물며 오늘날을 살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수십억 명에 달하는 '보통 사람들' 가운데 어느 한 블로거가 (수많은 대중을 향해 큰 소리로 낭독하는 셈이나 마찬가지 행위인) '사이버 공간에 글을 올리는 행위'를 마치고 난 뒤에, 그 글의 작성자 스스로 '참기 힘든 비애'를 느꼈다고 해도 나는 이상할 게 눈꼽만큼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게 이상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 그 사람이 도리어 이상한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