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삼총사』, 『엉클 톰스 캐빈』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나의 집 가까운 길모퉁이에는 어린이용 책을 제법 잘 갖춘 문구점이 있었다. 그때 나는 노트(아르헨티나에서는 노트의 표지에 국가 영웅이 한 명씩 그려져 있는 것이 보통이었으며, 간혹 아르헨티나의 역사나 전투 장면을 묘사한 스티커를 붙여 놓고 그 페이지만을 별도로 뗄 수 있도록 만든 노트도 있었다)에 대한 소유욕이 대단해서 자주 그 가게를 맴돌곤 했다. 문방구류는 앞쪽에 있었고 책은 뒤편에 몇 줄로 진열되어 있었다. 서적 코너에는 콘스탄시오 C. 비힐(죽은 뒤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많은 포르노 문학 작품을 수집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이 어린이들을 위해 쓴 커다란 그림책이 있었다. 이 책은 글씨가 크고 그림이 밝은 것이 특징이었다. 그 문구점에는 또 노란 표지의 로빈 후드 시리즈도 있었다. 또 표지가 두꺼운 포켓판 책들이 두 줄로 자리잡고 있었는데, 어떤 것은 표지가 초록색이었고 어떤 것은 분홍색이었다. 초록색 시리지는 아서왕의 모험을 그린 책과 번역이 형편없는 저스트 윌리엄의 스페인어판 책, 『삼총사』, 호라시오 키로가의 동물 이야기들이 들어 있었다. 분홍색 시리즈는 루이자 메이 올콧의 소설들과 『엉클 톰스 캐빈』, 세귀르 백작 부인의 이야기, 하이디 전집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326쪽)

 

(나의 생각)

나의 어린 시절의 경험과 어쩌면 그렇게도 비슷할까. 세상은 넓디 넓고, 대륙별로 혹은 나라별로 그토록 다양한 사람들이 아무리 다른 언어와 생활 습관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독서 경험'에서만큼은 놀랍도록 '긴밀한 유사성'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몹시도(심지어 충격적일 정도로) 놀랍다.

 

교육을 많이 시킬 경우 여자들이 말다툼을 하거나 쓰잘데없는 쑥덕공론을 벌이게 된다는 것

 

비록 플라톤이 자신의 이상적인 공화국에서는 소년 소녀 할 것 없이 모두에게 강제로 교육을 시키게 될 것이라고 썼지만 그의 제자 중 하나인 테오프라스토스는 여자들에게는 가정을 꾸리는 데 필요한 만큼만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는 교육을 많이 시킬 경우 여자들이 말다툼을 하거나 쓰잘데없는 쑥덕공론을 벌이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스 여성 중에는 교육받은 사람들이 적었기 때문에 (비록 고급 창녀들은 '완벽하게 교육받은' 것으로 추정되지만) 교육받은 노예들이 여성들에게 큰 소리로 소설들을 읽어 주곤 했다. 당시 작가들의 언어 구사 능력이 세련되었던 데 비해 전해오는 작품이 상대적으로 적다는 사실을 근거로, 역사학자 윌리엄 V. 해리스는 이런 소설들이 대단한 인기를 누렸던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교육 수준을 갖춘 일부 여성들 사이에서 가볍게 읽혔을 것이라는 주장을 편다.(327쪽)

 

무저항에 빠지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

 

이렇게 허용된 픽션을 읽으면서, 1세기 그리스의 가부장적 사회에서부터 내리 12세기 비잔티움까지(이런 유의 소설이 마지막으로 쓰여진 때), 여자들은 쓰잘데없는 이야기에서 어떤 형태의 지적 자극을 발견했음이 분명하다. 사랑하는 연인들의 고민과 위험과 진통을 통해 여성들은 간혹 뜻밖에도 사고하는 데 필요한 자양분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세기 뒤 성녀 테레사는 어린 시적에 기사도 소설을 읽으면서 (간혹 그리스 연애 소설에 고무받아) 훗날 자신이 신앙심 깊은 글을 쓸 때 발휘할 문학적 표현의 상당 부분을 섭취했다. "나도 그런 책들을 읽는 데 익숙해졌는데 그 하찮은 행위는 다른 일을 하고픈 나의 욕망과 의지를 식혀 주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 몰래 이런 헛된 짓을 하느라 밤낮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 짓에서 느끼는 환희가 얼마나 컸던지 나는 만약 읽을 책이 없었다면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런 짓거리가 헛되어 보였을지는 몰라도, 마르그리트 드 나바르의 이야기들과 라 파예트 부인이 쓴 『클레브 공작 부인』, 브론테 자매와 제인 오스틴의 소설들은 연애 소설을 읽는 이러한 풍조 덕분에 상당한 인기를 누렸다. 영국의 비평가인 케이트 플린트의 지적처럼, 이런 소설류를 읽는 건 여성 독서가들에게 "픽션이라는 아편이 유발하는 무저항 속으로 침잠하는 수단을 공급해 주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다. 더욱 감동적이게도 자아감까지 심어 줘 무저항에 빠지는 사람이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초기부터 여성 독서가들은 사회가 자신들의 서가에 놓아 주는 것들을 뒤엎어 버리는 방법을 발견했다.(328∼329쪽)

 

 

『겐지 이야기』와 『마쿠라노소시』

 

발터 벤야민은 "책을 획득하는 방법 중에서도 책을 직접 쓴 것이야말로 가장 칭송할 만한 방법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고 논평했던 적이 있다. 헤이안 시대의 여자들도 깨달았듯이 어떤 경우에는 책을 직접 쓰는 방법만이 유일한 길일 수가 있다. 헤이안 시대의 여자들은 그들만의 새로운 언어로 일본 문학사에서, 아마도 전시대를 통틀어 가장 중요한 작품 몇 편을 남겼다. 이런 작품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무리사키 부인이 쓴 기념비적 작품 『겐지 이야기』인데, 영국 학자이자 번역가인 아서 웨일리는 아마도 1001년에 시작해서 1010년 이전에 끝냈을 이 작품을 두고 세계 최초의 진정한 소설이라고 격찬했다. 다른 하나는 『겐지 이야기』와 비슷한 시기의 것으로, 작가 세이 쇼나곤(淸少納言)의 침실에서 창작되어 그녀의 목침 서랍에 보관되었다고 해서 '베개책'이란 의미를 갖는 『마쿠라노소시枕草子』라 불리는 책이다.(334쪽)

 

그들 자신의 삶을 향해 거울을 받쳐 들고 있었던 셈

 

『겐지 이야기』와 『마쿠라노소시』같은 책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문화적·사회적 삶이 소상하게 나타나지만 그 당시 궁정의 남자 관리들이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던 정치적 술책에 대해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웨일리는 "이런 책들에서 여성들이 지극히 남성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매우 애매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은 당혹스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언어와 정치 현장으로부터 유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이 쇼나곤과 무라사키 부인조차도 이런 활동에 대해서는 풍문 이상으로 묘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떤 예이든 이런 여성들은 근본적으로 그들 자신을 위해 글을 쓰고 있었다. 다시 말해 그들 자신의 삶을 향해 거울을 받쳐 들고 있었던 셈이다. 문학을 통해 그들이 추구한 것은 남자 작가들이 관심을 갖고 심취했던 관념이 아니라, 세월의 흐름이 느리고 대화도 드물고 풍경마저도 계절이 몰고 오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혀 변화가 없는 그런 세계의 영상이었다. 『겐지 이야기』는 동시대 삶의 거대한 캔버스를 펼쳐 보이고 있지만 주된 목적은 작가 자신과 같은 여성들에게 읽히는 것이었다. 다시 말해 심리적인 문제에서 그녀만한 지능과 예리한 안목을 갖춘 여성들이 그 독자층이었다. (334∼335쪽)

 

'몹시 유쾌한 것' 두 가지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는 인상과 묘사, 뜬소문, 유쾌하거나 불쾌한 일들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기록한 것 같다. ······ 그녀가 풍기는 매력의 상당 부분은 바로 그런 담박함에서 기인한다. 여기서 '몹시 유쾌한 것' 두 가지만 예로 들어 본다.

 

아직 한번도 읽어 보지 못한 이야기를 무더기로 발견하는 것.

아니면 아주 즐겁게 읽었던 책의 두 번째 권을 손에 넣는 것.

그렇지마 가끔 실망스럽기도 하다.

 

편지는 이제 진부할 정도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얼마나 멋진가! 누군가가 먼 지방에 떨어져 있어 그 사람의 안부를 걱정하고 있는데 갑자기 편지가 날아든다면 마치 그 사람을 직접 대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자신의 감정을 편지에 쏟아넣었다는 시실은 더없는 위안이 된다. 비록 그 편지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을 때조차도.

 

(335∼36쪽)

 

 

소외된 일상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격리된 그룹 내에서는 적어도 두 가지 이상의 책읽기가 일어나는 것 같다. 먼저 첫 번째 독서법부터 살펴보자. 이 경우 독서가들은 상상력이 풍부한 고고학자들처럼 공인된 문학의 행간을 파헤치면서, 클리타임네스트라와 거트루드, 그리고 발자크의 창녀 이야기에서는 자신들을 투영할 거울들을, 말하자면 자신들처럼 버림받은 인물들의 흔적을 잡아 내려고 노력한다. 두 번째 부류의 독서법에서는 독서가들 본인이 부엌이나 바느질방, 그리고 아이들의 방에서 지내야 하는 소외된 일상의 이야기를 미주알고주알 기록으로 남기기 위해 스스로 작가가 된다.(336쪽)

 

자신들의 이야기를 발견할 곳이 달리 없기 때문

 

캐롤린 G. 하일브런의 조심스런 형태 구분은 또한 헤이안 시대의 여류 작가들이 생산해 낸 문학의 변천-모노가타리(이야기), 마쿠라노소시, 그리고 기타 등등-과도 상통한다. 그런 텍스트에서 독자들은 자신과 비슷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 자신의 삶이 이상적인 것인지 아니면 형편없는 것인지 깨닫게 된다. 일반적으로 격리된 독서가들에게는 이런 점들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문학은 고백적이고 자전적이고 심지어 교훈적이기까지 한데,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거부당한 독서가들의 경우 그들 자신이 생산해 내는 문학이 아니고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발견할 곳이 달리 없기 때문이다. 남성 동성 연애자들의 책 읽기에 관한 논의에서-여성의 책 읽기, 더 나아가 권력의 영역에서 배제된 모든 그룹의 책 읽기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다-미국 작가인 에드먼드 화이트는 누구든지 자신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부터 왜 다른지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데, 이때의 설명은 '침실이나 술집 아니면 정신병원 침대에서 거듭 되풀이되는 구두(口頭) 이야기로' 일종의 원시적인 픽션이 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아니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적대적인 세계를 향해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과거를 보고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정체성까지 만들어 냄으로써 미래를 다듬기도 한다. 무라사키 부인에서와 마찬가지로 세이 쇼나곤에서도 오늘날 우리가 읽고 있는 여성 문학의 전조가 담겨 있는 것이다. (339쪽)

 

누구나 여행을 할 때는 기차 안에서 읽을 무엇인가를 가져야 하기 때문

 

조지 엘리엇보다 한 세대 뒤인 빅토리아 시대,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는 자신의 작품 『진지함의 중요성』에서 그웬들린이라는 인물이 자신은 일기를 휴대하지 않고 여행을 떠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 이유는 '누구나 여행을 할 때는 기차 안에서 읽을 무엇인가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그것은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었다. 그녀의 상대인 세실리도 일기를 '단순히 나이 어린 소녀가 자신의 생각과 일상을 기록하는 것이지만 종국적으로는 세상에 발표하고 싶은 희망을 담고 있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발표, 즉 원고를 복사하거나 큰 소리로 읽어 주거나 아니면 인쇄로 텍스트를 재생산해 내는 행위로 인해 여성들은 자신들과 유사한 목소리를 발견했고, 그들이 처한 처지도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으며, 그런 경험을 확인함으로써 장래 자신들의 진정한 이미지를 구축할 탄탄한 바탕을 발견하게 되었다.(339∼3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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