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손아귀에 충분히 쥐어질 만큼 작은 물건이 그처럼 무궁무진한 경이를 담는 신비로운 힘

 

1세기 고대 로마의 풍자 시인이었던 마르티알리스는 손아귀에 충분히 쥐어질 만큼 작은 물건이 그처럼 무궁무진한 경이를 담는 신비로운 힘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양피지 쪽들에 호머가 다 담기다니!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의 그 많은 모험이

프리아모스 왕국의 적이었던 오디세이 말야!

그 모든 것이 양피 한 조각에 갇혀 버리다니

겨우 자그마한 몇 장으로 접은 양피 조각에!

 

코덱스의 편리함은 가히 혁명적이었다. 서기 400년경이 되자, 고전적인 형태의 두루마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대부분의 책들은 사각형으로 여러 장 모은 형태로 제작되었다. (191쪽)

 

   

가장 인기를 끌었던 책은 쉽게 독자들의 손에 잡히는 크기로 된 책

 

인류 역사를 통틀어 가장 인기를 끌었던 책은 쉽게 독자들의 손에 잡히는 크기로 된 책이었다. 모든 텍스트에 통상적으로 두루마리가 사용되던 그리스·로마 시대에서조차도 사적인 서신은 일반적으로 손에 잡히는 작은 크기의 밀랍 서판(書板)이 이용되었는데, 이 서판은 다른 부분보다 가장자리를 약간 높게 하고 장식용 커버를 씌워 손상되지 않도록 했다. 때가 되어 서판들은, 다양한 색깔로 다듬어져 세련미가 넘쳤던 양피지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양피지가 요점이나 해설을 신속하게 적는 데 편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192쪽) 

 

우아한 손재능에 대한 동경

 

이제야 필사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말았다는 예측에도 불구하고 인쇄술이 필사 텍스트에 대한 취향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했다는 사실은 마음 속 깊이 새겨 볼 만하다.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구텐베르크와 그의 추종자들은 필사자들의 손재간을 흉내내려고 노력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인큐내뷸러는 외관이 필사본을 쏙 빼닮았다. 15세기 말경에는, 비록 인쇄술이 확립된 터였지만 우아한 손재능에 대한 동경이 사그러들지 않았고, 서구 역사상 가장 기억할 만한 달필의 일부는 아직 미래의 일로 남아 있었다. 책을 대하기가 더 쉬워졌고, 따라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읽기를 배우는 한편으로 글자를 보다 우아하고 두드러지게 쓰려고 애쓰게 되었다. 그래서 16세기는 인쇄의 시대일 뿐만 아니라 훌륭한 육필 입문서의 시대이기도 했다. 기술상의 발전이-구텐베르크의 경우처럼-그 기술로 인해 뿌리째 뽑혀 버리리라고 예상되던 것들을 제거하기보다는 오히려 발전시키는 예가 얼마나 많은지 주목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자칫 간과하가나 무시해도 좋다는 식으로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전통적인 미덕에도 참다운 가치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201쪽)

 

 

인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책 몇 권

 

1494년 마누티우스는 야심찬 인쇄 출판 프로그램을 마련했는데, 그는 훗날 인쇄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책 몇 권을 남겼다. 처음에는 그리스어로-소포클레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투키디데스-이어서 라틴어로-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오비디우스-책을 찍었다. 마누티우스가 볼 때 이런 저명한 작가들은 '중간 매개를 거치지 않고' 직접 읽혀져야만 했다(원래의 언어로,ㅡ 그리고 가능한 한 주석이나 해설 없이). 또한 그는 독자들이 고전 옆에다가 역시 자신이 출판한 문법서와 사전을 놓고 '걸출한 사자(死者)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랐다.(203쪽)

 

 

고전 작가 명단에 특별히 위대한 이탈리아 시인이었던 단테와 페트라르카

 

하루 한 번 이들 학자들은 마누티우스의 집에 모여 앞서 수많은 세월 동안 체계화된 고전 소장품들을 추려 내면서 인쇄할 책에 대해 논의하고, 믿을 만한 자료로 어떤 필사본을 이용할 것인지를 의논했다. "중세 인문주의자들을 다 모아 놓고 보면 르네상스기 인문주의자들이 두드러지게 마련이었다"고 역사학자 앤터니 크래프턴은 적고 있다. 마누티우스는 아주 정확한 눈으로 식별해 냈다. 고전 작가 명단에 특별히 위대한 이탈리아 시인이었던 단테와 페트라르카의 작품을 보탰다.(203∼204쪽)

 

 

그리고 마침내 펭귄이 떠올랐다

 

이제 레인에게 필요한 것은 시리즈의 이름이었다. '월드 클래식스' 같이 거창하지 않아야 하며 '에브리맨스' 처럼 선심 쓰는 체하는 이름이어서도 곤란했다. 제일 먼저 떠오른 것은 동물 이름들이었다. 돌핀, 이어서 포퍼스(참돌고래, 이 이름은 이미 파베르 앤드 파베르에 의해 사용되었음), 그리고 마침내 펭귄이 떠올랐다. 맞아, 바로 그 이름이었다.

 

1935년 7월 30일, 펭귄 시리즈의 첫 열 권이 권당 6펜스에 선을 보였다. 레인은 각 타이틀마다 1만 7천 부만 팔리면 본전을 뽑을 것이라 예상했지만 첫번째 판매는 겨우 7천 부에 지나지 않았다.

 

······ 펭귄 북스의 독특한 특징(엄청난 배부량, 저렴한 가격, 우수한 내용과 폭넓은 타이틀) 이상으로 펭귄의 위대한 성취는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그토록 폭넓은 문학들을 거의 모든 사람에 의해, 그리코 튀니스에서 아르헨티나의 티커만까지, 또 쿡 제도에서 레이캬비크까지(이는 영국 팽창주의적 산물이어서 나도 이 모든 곳에서 펭귄을 사서 읽을 수 있었다), 거의 모든 곳에서 구입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독자들에게 이 세상 어느 곳에나 책 읽는 사람들이 편재해 있다는 상징으로 와닿았다.(213∼2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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