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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 읽기에서 '최후의 단정' 같은 것이 불가능하다면
만약 책 읽기에서 '최후의 단정' 같은 것이 불가능하다면 그 어떤 권위도 우리에게 '정확한' 책 읽기를 강요할 수 없을 것이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우리는 어떤 책 읽기의 경우 다른 책 읽기보다 조금 나을 수 있다는 점을-보다 견문이 높다거나, 보다 명쾌하다거나, 좀더 도전적이라거나, 보다 유쾌하다거나, 좀더 불온하다는 따위-깨달았다. 그렇지만 새롭게 눈을 뜨게 된 자유에 대한 감각만은 결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으며, 어떤 서평자가 악평한 책을 즐기거나 그때까지 뜨겁게 칭찬받던 책을 젖혀 두기도 했던 그때의 반항적인 감정을 나는 지금도 꽤 생생하게 돌이킬 수 있다. (129쪽)
나는 그 책들이 나에게 손짓을 보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내 서가에 꽂힌 책들은 내가 책장을 펼쳐 줄 때까지는 나와는 상관이 없겠지만, 나는 그 책들이 나에게-나를 포함하는 다른 모든 독서가들에게-손짓을 보내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 책들은 나의 해설과 의견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모든 책에 대해서 그렇듯이, 플라톤에 대해서도 건방지게 그 내용을 추정한다. 심지어 내가 결코 읽지 않을 책에 대해서조차 뻔뻔스럽게 추정을 내린다. (130쪽)
이런 책을 너희들 같은 인간과 함께 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고등학교 1년 수업 10개월 중에서 3분의 1은 고전 언어들에, 나머지는 독일어와 지리, 역사에 할애했다. 수학은 중요도가 덜한 과목으로 여겨졌고, 체코어와 프랑스어와 체육은 선택과목이었다. 학생들은 배운 과목을 암기했다가 누군가가 주문만 하면 금방 뱉어 낼 수 있어야 했다. 카프카와 같은 시대의 고전학자인 프리츠 마우트너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 반 학생 40명 중에는 그나마 땀을 뻘뻘 흘리는 정성을 기울인 끝에야 고전 일부를 글자 한자 한자씩 번역해 낼 수 있었던 학생이 겨우 서너 명에 지나지 않았다. ······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에게 그런 번역이 고대의 정신이란 게 어떤 개념인지, 그리고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고대의 그 낯설음이 어떤 것인지 아주 흐릿하게나마 짐작이라도 할 수 있게 했다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 그 나머지 학생들, 학급의 90% 학생들은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끝낸다는 사실에도 아무런 기쁨을 느끼지 못한 채 그저 시험만 통과할 뿐이고 졸업하고 돌아서면 금방 깡그리 잊어버렸다.
선생들도 그런 현실에 대한 실망에서인지 학생들이 고전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비난했으며 학생들을 대하는 시선에는 경멸이 담겨 있었다. 몇 년 뒤 자기 약혼자에게 보낸 편지에서 카프카는 "우리에게 『일리아드』를 읽어 주면서 '이런 책을 너희들 같은 인간과 함께 읽는다는 것은 슬픈 일이야. 너희들은 이 책을 이해하지 못 해. 이해한다고 생각할 때조차도 너희들은 아무것도 몰라. 아주 보잘것없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인생을 엄청 치열하게 살아야 하거든' 이라고 말했던 선생을 떠올리게 하는군" 이라고 썼다. 카프카는 평생을 자신이 이해의 첫 자락을 들추는 데 필요한 경험이나 지식조차도 갖추지 못했다는 기분으로 책을 읽었다. (133쪽)
바빌로니아의 탈무드를 보면
18세기 하시디즘의 대가였던 베르디체프의 랍비 레비 이츠하크는 바빌로니아의 탈무드를 보면 책의 첫 페이지가 모두 결락되어 꼭 두 번째 페이지부터 읽도록 되어 있는데 그 이유가 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러자 그 랍비는 "아무리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는 사람일지라도 아직 그 책의 첫 페이지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오" 라고 대답했다.(135쪽)
카프카의 독특한 읽기법
라쉬가 죽고 몇 세기가 지나서, 한때 하시디즘이 번창했던, 독일 문화와 체코 문화와 유대 문화가 합류를 이루는 터전 한가운데서, 또 이 지구상에서 유대인의 모든 지혜를 싹 쓸어 버리겠다는 대학살이 닥쳐 오던 전야의 분위기에서 카프카는 독특한 읽기법을 개발했다. 자신에게 단어를 판독하도록 허용하면서도 그 단어를 판독하는 자신의 능력에 의심을 품고, 그런 식으로 책을 이해하려고 끈질기게 매달리면서도 결코 그 책의 환경과 자신의 환경을 혼동하지 않았던 것이다.(136∼137쪽)
카프카의 작품들이 이해라는 환상을 한 자락 살짝 내비추는 듯하다가 금방 거둬들인다는 점
에른스트 파벨은 1984년에 쓴 카프카의 전기 말미에서 "세계 주요 언어권에서 카프카와 그의 작품을 다룬 문헌은 현재 1만 5천 종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현재 카프카의 텍스트는 글자 그대로의 독서만이 아니라 비유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심리적으로도 읽힌다. 책 읽기야말로 언제나 그 책 읽기를 낳는 텍스트를 수적으로 훨씬 상회한다는 이야기는 좀 케케묵은 관찰일까. 그렇지만 한 독서가가 낙담하는 바로 그 책장에서 또 다른 독서가는 웃을 수 있다는 사실에는 독서 행위가 갖는 창조적인 본질이 담겨 있다. 나의 딸 레이철은 『변신』을 열세 살에 읽고는 매우 익살스런 작품이라고 생각했고, 카프카의 친구인 구스타프 야누흐는 그 작품을 종교적이고 도덕적인 우화로 읽었다.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변신』을 '유일한 진짜 볼셰비키주의 작가'의 작품으로,ㅡ 헝가리의 비평가인 기오르기 루카치는 퇴폐적인 부르주아의 전형적인 작품으로, 보르헤스는 제논의 역설을 재구성한 작품으로 읽었다. 또 프랑스 비평가인 마르트 로베르는 그 작품을 독일 언어를 가장 명징하게 구사한 예로 꼽았으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는 그것을 청년기 고민에 대한 비유로 읽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카프카 자신의 독서 경험을 자양분으로 해서 태어난 카프카의 작품들이 이해라는 환상을 한 자락 살짝 내비추는 듯하다가 금방 거둬들인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카프카의 작품들은 독서가로서의 카프카를 만족시키려다 보니 작가로서의 카프카의 기교를 훼손시켰다는 뜻이다.(140∼141쪽)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카프카는 1904년에 친구인 오스카르 폴라크에게 이런 글을 보냈다. "요컨대 나는 우리를 마구 물어뜯고 쿡쿡 찔러대는 책만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 만약 읽고 있는 책이 머리통을 내리치는 주먹처럼 우리를 흔들어 깨우지 않는다면 왜 책 읽는 수고를 하느냐 말야? 자네가 말한 것처럼 책이 우리를 즐겁게 하기 때문일까? 천만에, 우리에게 책이 전혀 없다 해도 아마 그만큼은 행복할 수 있을지도 몰라. 우리를 행복하게 만드는 책들은 우리가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도 쓸 수 있단 말야.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마치 우리 자신보다도 더 사랑했던 이의 죽음처럼, 아니면 자살처럼, 혹은 인간 존재와는 아득히 먼 숲속에 버림받았다는 기분마냥 더없이 고통스런 불운으로 와닿는 책들이라구. 책은 우리 내부에 있는 얼어붙은 바다를 깰 수 있는 도끼여야 해. 나는 그렇게 믿고 있어."(14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