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은 『고백록』의 어느 중요한 단락에서 두 가지 방식의 독서법-소리를 내는 방법과 소리를 내지 않는 방법-이 거의 동시에 이뤄지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의 우유부단함에 화가 난 나머지, 또 자신의 과거 죄에 분노를 느끼면서, 그리고 마침내 자신이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며 그때까지 자신의 여름 정원에서 (큰 소리로) 함께 책을 읽고 있던 친구 알리피우스 곁을 빠져 나와 무화과 나무 밑으로 몸을 던져 흐느껴 울었다. 바로 그때 근처의 어느 집에서 어린이(소년인지 소녀인지, 그는 밝히지 않았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는데, 그 노래의 후렴이 "책을 잡고 글을 읽으세"였다. 그 노랫소리가 자신을 향한 것이라 믿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알리피우스가 아직도 꼼짝 않고 앉아 있는 곳으로 다시 달려가 미처 다 읽지 못했던 바울의 『사도행전』한 권을 집어들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그 책을 집어 펼친 뒤 시선이 가장 먼저 닿은 첫 부분을 소리내지 않고 읽었다"고 말한다. 그가 소리내지 않고 읽은 단락은 로마서 13장으로, "육신을 위해 양식을 준비하지 말고 그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갑옷처럼' 걸쳐라"라는 훈계였다. 혼비백산한 그는 문장의 끝에 이른다. '믿음의 빛'이 그의 가슴에 충만하고 '회의의 어둠'은 말끔히 걷힌다.(69쪽)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의 기호'

 

아우구스티누스는 시론과 산문의 운율에 능통한 수사학 교수로ㅡ 또 그리스어를 혐오하면서도 라틴어는 지독히 사랑했던 삭자로서 글이라면 무엇이든 가리지 않고 그저 기쁨을 위해 소리내어 읽는 습관-대부분의 독서가에게 공통적임-을 가지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따르면서 그는 '심지어 눈앞에 없는 사람들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창조된' 문자들은 '소리의 기호'이고 더 나아가 '우리가 생각하는 것들의 기호'라는 것을 알았다.(70쪽)

 

그런 식의 독서 관행이 그대로 살아 숨쉴지도 모른다

 

중세 시대로 한참 들어와서도 작가들은 자신의 독자들이 단순히 텍스트를 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듣기도 할 것이라 가정했다. 심지어 글을 창작할 때도 작가들은 혼자서 소리내어 읽어 보곤 했다. 상대적으로 극히 적은 수의 사람들만이 글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에 대중 앞에서의 독서가 보편적이었고, 그래서 중세의 텍스트들은 거듭해서 청중에게 '이야기에 귀기울여 달라고' 간청한다. 우리가 '아무개로부터 소식을 들었다'(I've heard from So-and-so. 편지를 받았다는 뜻임)거나 '아무개가 말하기를'(So-and-so says. 아무개가 썼다는 뜻임)이라거나 '이 텍스트는 훌륭하게 들리지 않아'(This text doesn't sound right. 잘 쓰여지지 않았다는 뜻임)라는 표현에서처럼, 우리 시대의 일부 관용구에서도 그런 식의 독서 관행이 그대로 살아 숨쉴지도 모른다.(74쪽)

 

지금 눈앞에 없는 사람들의 말까지도

 

구두점이 아직까진 믿을 수 있을 만큼 완벽한 사용 체계가 세워진 건 아니지만 이런 초보적인 아이디어들은 소리 없는 독서의 발전을 부추겼다. 6세기 말경에 시리아의 성 아이잭은 그런 방법의 장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침묵을 훈련한다. 그러면 나의 독서와 기도의 한줄 한줄은 가슴을 기쁨으로 가득 채운다. 그리고 그런 구절들을 이해할 때의 즐거움이 마치 꿈속에서처럼 내 혀를 침묵케 할 때면 나는 내 감각과 사고가 한 점으로 집중되는 경지로 들어간다. 그리고 침묵이 길어지고 뒤죽박죽이던 기억이 가슴 속에서 차분히 정리될 때면 마음 속 깊은 곳에 숨어 있던 생각으로부터 끝없는 기쁨의 파도가 여울져 밀려와 갑자기 내 가슴을 환희로 채운다." 그리고 7세기 중반, 세비야의 신학자인 이시도루스는 소리 없는 독서에 매우 익숙했기 때문에 묵독에 대해 "노력을 들이지 않고, 읽은 것을 곰곰 반추하면서, 읽은 내용들이 기억에서 달아나지 않게 하는 책 읽기"의 한 방법이라고 칭송할 수 있었다. 자기보다 앞섰던 아우구스티누스와 마찬가지로 이시도루스는 독서야말로 시공을 초월해서 대화를 가능하게 한다고 믿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와는 한 가지 중요한 차이점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어원학』에서 "문자들은 지금 눈앞에 없는 사람들의 말까지도 소리 없이 우리에게 전달해 주는 힘을 지닌다"라고 쓰고 있다. 이시도루스의 문자들은 음성을 필요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78쪽)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어느 이름 모를 필사자는 8세기 어느 때인가 필사를 끝내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손가락 3개는 열심히 옮겨 적고, 두 눈은 끊임없이 보고, 혓바닥은 말을 하고, 온몸은 산고(産苦)를 치른다"고 적고 있다. 필사자들은 일을 할 때 자신이 옮겨 적는 단어를 하나하나 발음함으로써 혓바닥으로 말을 했던 것이다.(79쪽)

 

묵독

 

묵독은 책과 독서가 사이에 다른 사람의 눈에는 띄지 않는 의사 소통을 가능하게 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행복한 표현대로 "정신을 상쾌하게" 만들었다.(80쪽)

 

훗날 프로테스탄트로 알려질 사람들

 

1517년 10월 31일, 어느 수도사가 성경을 은밀히 연구한 끝에 돈으로 구입한 믿음을 몰아내고 성스런 신의 은총을 지켜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급기야 그는 비텐베르크의 만성(萬聖) 교회 문에다가 탐욕스런 관행-면죄부 판매-과 성직자들의 권력 남용에 반대하여 95개 항목의 주장을 내걸었다. 이 행동으로 마틴 루터는 제국의 눈에는 범법자로, 교황의 눈에는 배교자로 낙인찍히게 되었다. 1529년 신성 로마 황제인 카를 5세가 루터의 추종자들에게 그때까지 허용했던 권리를 취소해 버리자 독일의 14개 자유 도시들은 루터주의를 신봉하던 왕자 6명과 함께 황제의 결정에 반대하는 항의문으로 맞섰다. "신의 명예와 구원, 그리고 우리 영혼의 영생에 관한 한 우리 모두 신 앞에 일어서서 각자 이유를 설명해야 한다"며 항의자들, 다시 말해 훗날 프로테스탄트로 알려질 사람들은 황제의 권위에 대항했다. 그보다 10년 앞서서 로마의 신학자인 실베스테르 프리에리아스는 교회의 기초가 되는 책은 오로지 교황의 권위와 권력을 통해서만 해석될 수 있는 신비로움을 간직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반면 반대론자들은 우리 인간에게는 증인이나 중개자를 통하지 않고 스스로 신의 말씀을 읽을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82∼83쪽)

 

책과의 의사 소통은 두 뺨의 홍조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보내지는 법

 

수 세기가 흐른 뒤, 그 옛날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이 지구의 끝으로 비쳤을 대양 건너 신대륙에서, 그런 프로테스탄트들에게 신앙의 빚을 졌다고 고백하는 랄프 왈도 에머슨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그렇게도 놀라게 만들었던 독서법을 십분 활용했다. 오로지 사회적 책임감 때문에 참석하게 되는 지루하고도 따분하기 짝이 없는 교회 설교 시간에 그는 파스칼의 『팡세』를 소리 없이 읽었다. 그리고 밤에는 콘코드의 차가운 방에서 "턱까지 담요을 바싹 당겨 쓴 채" 플라톤의 『대화』를 읽었다(어느 역사가는 "에머슨은 그날 이후로 플라톤 하면 그 담요 냄새부터 떠올렸다"고 적고 있다). 비록 에머슨은 이 세상에는 책이 너무 많아 모조리 다 읽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독서가들끼리 요점을 서로 나눠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읽는 행위만은 개인적이고 은밀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굳게 믿었다. 그는 『우파니샤드』와 『팡세』를 포함하는 '성스런' 텍스트의 목록을 만들면서 이렇게 강조했다. "이런 모든 책들은 보편적 양심의 장엄한 표현이며 올해의 연감이나 오늘의 신문보다도 더 우리의 일상 목적에 부합된다. 그렇지만 그런 책들은 밀실에서 무릎을 꿇은 자세로 읽어야 제격이다. 책과의 의사 소통은 입술과 혀 끝이 아니라 두 뺨의 홍조와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받아들여지거나 보내지는 법이다." 침묵 속에서.(83∼84쪽)

 

한 무리의 묵독 독서가들

 

384년 그날 오후 성 암브로시우스의 독서를 관찰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암브로시우스 앞에 어떤 책이 놓여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암브로시우스가 귀찮은 방문객을 피함과 동시에 앞으로 있을 강의를 위해 목소리를 아끼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무리의 묵독 독서가들을, 그 후 많은 세기가 흘러 루터를, 칼뱅을, 에머슨을, 그리고 그를 읽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까지 포함하는 소리 없는 독서가들의 무리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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