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역사
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정명진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0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독서는 두 눈으로 시작된다

 

독서는 두 눈으로 시작된다. 키케로는 텍스트를 단순히 듣기만 할 때보다는 두 눈으로 볼 때 더 명확히 기억 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감각 중에서 가장 예민한 것은 시각"이라고 쓰고 있다. 성 아우쿠스티누스도 두 눈을 "세계로 들어가는 출입구"라고 극찬했으며 (후에는 저주했지만) 토마스 아퀴나스도 시력을 "지식을 획득하는 감각 중에서 가장 위대한 것"이라 했다.(47쪽)

 

인간의 눈은 마치 카멜레온과 같아서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인간의 눈은 마치 카멜레온과 같아서 관찰 대상의 다양한 형태와 색깔을 받아들여 그 정보를 눈이 지닌 이해력을 통해 전지전능한 내장, 즉 심장, 간, 폐, 쓸개, 혈관을 포함하는 장기의 집합체로 전달함으로써 인간의 모든 동작과 감각을 지배하는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한다.(49쪽)

 

독서를 박탈당한 상태 

 

『걸리버 여행기』의 주인공인 걸리버는 라퓨타 섬의 스트럴드브러그를 묘사하면서 나이 아흔에도 이들 늙은이들은 책 읽기로 시간을 즐길 줄 모른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그들의 기억력이 한 문장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며, 이런 결함으로 인해 그들은 그렇지 않았다면 즐길 수 있었을 유일한 즐거움인 독서를 박탈당한 상태에 놓여 있다."(58쪽)

 

글을 읽을 때 두 눈이 이곳 저곳으로 마구 뛰어다닌다는 사실

 

우리는 뭔가를 읽을 때 두 눈이 책장의 글을 따라 중단 없이 움직이는 것으로, 예를 들어 서양의 글을 읽을 때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1세기 전, 프랑스의 안과 의사인 에밀 자발은 글을 읽을 때 두 눈이 이곳 저곳으로 마구 뛰어다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점프나 단속성 운동은 초당 약 2백도의 각도를 움직이는 속도로 1초에도 서너 번씩 일어난다. 책장을 가로지르는 눈의 움직임의 속도는-그러나 움직임 그 자체는 아니다-인지력을 방해하며, 우리가 실제로 '읽는' 행위는 눈의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의 찰나에서 이뤄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독서가 두 눈의 실질적인 단속성 운동에 따르지 않고 책장에 나타나는 텍스트의 순서나 스크린상의 텍스트와 같은 두루마리식 연결에 결부되는 이유는 뭘까. 그것도 머리 속으로 문장 전체나 사상을 받아들이면서 말이다. 이 의문에 대해서도 과학자들은 아직껏 해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59쪽)

 

내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런 존재가 되었는가에 따라

 

이 모든 것들이 암시하는 것은, 지금 책 앞에 앉아 있는 나라는 존재도 나보다 앞섰던 알 하이삼처럼, 텍스트를 구성하는 단어들의 철자와 빈 공간을 이해하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검정과 흰색의 기호 체계에서 메시지를 뽑아내기 위해 나는 먼저 깜빡거리는 눈으로 그 체계를 파악하고 이어서 나의 뇌에서 뉴런들의 체인-이 체인은 내가 읽는 텍스트에 따라 달라진다-을 통해 기호들의 암호 체계를 재구축하고, 내가 어떤 존재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서 그런 존재가 되었는가에 따라 그 텍스트에 뭔가-감정, 육체적 감각, 직관, 지식, 영혼-를 불어넣는다.(60쪽)

 

지극히 개인적인 재구축 과정

 

멀린 C. 위트록 박사는 1980년대에 "하나의 텍스트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로 읽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텍스트를 위해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낸다"고 적고 있다. 이런 복잡한 과정을 통해 "독서가는 텍스트에 정성을 기울인다. 그들은 텍스트의 의미를 정확히 표현하기 위해 이미지와 언어의 형태적 변화까지 창조해 낸다. 너무나 감동적이게도, 독서가들은 텍스트를 읽어 내려가면서 자신들의 지식, 경험에 얽힌 기억과 글로 쓰여진 문장, 절과 단락 사이의 관계를 구축해 나감으로써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렇다면 독서는 감광성 종이가 빛을 포착하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텍스트를 자동적으로 포착하는 과정이 아니라, 당혹스럽고 미로 같기도 하고 예사로우면서도 지극히 개인적인 재구축 과정이 되는 것이다.(61쪽)

 

인간 정신의 활동 중에서도 가장 복잡다단한 활동의 상당 부분을 밝혀 내는 것

 

미국의 E.B. 휴이는 금세기 초 이렇게 시인했다. "뭔가를 읽을 때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를 완벽하게 분석해 내는 일은 심리학자들에게는 성취의 정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작업은 인간 정신의 활동 중에서도 가장 복잡다단한 활동의 상당 부분을 밝혀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아직도 거기에 대한 해답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우리는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의 본질이 도대체 무엇인지 명확하게 정의내리지도 못하면서 읽기를 계속하고 있다. 독서 행위가 기계적인 모델을 통해 설명될 수 있는 과정이 결코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또 뇌의 특정 부위에서 독서가 이뤄지고 있음을 잘 알지만 우리는 또한 그런 부위도 독서에 관여하는 우일한 것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일련의 독서 과정은 사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텍스트와 사고를 구성하는 단어, 즉 언어를 해독하고 이용할 줄 아는 능력에 달려 있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안다. 연구원들이 염려하는 것은 자신들이 내리는 결론이, 그 결론을 표현하는 바로 그 언어에 대해 의문을 제시하는 꼴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점이다. (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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