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에우리피데스 지음 /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에서 인용)

 

 

 


"내 딸아, 이 어미의 마지막 (내게 남은 것이 뭐란 말인가?)

슬픔이여, 내 딸아, 너는 누워 있고, 나는 내 것이기도 한

네 상처를 보고 있구나! 보라,

내 자식들 중 아무도 살해되지 않고 죽는 일이 없도록

너마저 부상을 당했구나. 하나 나는 네가 여자라서 칼로부터

안전할 줄 알았더니, 여자임에도 칼에 쓰러졌구나.

트로이야를 파괴하고 나를 자식 없는 어미로 만든 아킬레스가,

그토록 많던 네 오라비들을 죽인 바로 그자가 너마저 죽였구나!

그자가 파리스와 포이부스의 화살들에 쓰러지고 난 뒤에 나는

'이제는 확실히 아킬레스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겠지.' 싶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그를 두려워했어야 했어. 매장된 그의 유골이

우리 집안을 향해 미쳐  날뛰고 있고, 무덤에 들었어도 그자를

우리는 적으로 느꼈으니 말이야. 내가 자식들을 많이 낳은 것은

아이아쿠스의 손자를 위해서였어. 거대한 일리온은

쓰러져 누워 있고, 백성들의 재앙은 비극적인 종말로 끝났지만,

그대로 아무튼 끝났어. 오직 나에게만 페르가마는

아직도 살아남고, 내 괴로움은 계속해서 이어지는구나!

얼마 전만 해도 나는 그토록 많은 사위들과 아이들과 며느리들과

남편의 힘을 업고 나라에서 제일가는 여자였는데

지금은 무일푼의 추방자로서 가족들의 무덤을 뒤로하고

페넬로페의 전리품으로 끌려가는구나! 그녀는 할당된

양털실을 잣고 있는 나를 가리키며 이타카의 여인들에게 말하겠지.

'이 여자가 헥토르의 유명한 어머니이자 프리아무스의 아내다.'

그토록 많은 자식을 잃은 뒤에 네 어미의 괴로움을 위로하도록

남겨진 너마저 이제 적의 무덤에 제물로 바쳐졌구나!

나는 죽은 적에게 바칠 제물을 낳았던 거야.

왜 나는 이렇게 모질게도 살아 있지? 왜 나는 머뭇거리지?

비참한 노령이여, 왜 나를 살려두는 것이냐? 잔인하신 신들이시여,

어떤 새로운 재앙을 더 보게 하려고 이 노파의 수명을

늘리시는 거예요? 페르가마가 허물어졌을 때 프리아무스가

행복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으리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느냐?

그이는 죽었기에 행복하지. 내 딸아, 그이는 이렇게

죽어 누워 있는 너를 볼 필요 없이 목숨과 왕국을 동시에 뒤로하고

떠났으니까. 너는 공주니까, 생각건대, 너에게는 장례식이

지참금으로 주어지고, 네 시신은 조상들의 무덤에 묻히게 되겠지.

하나 집안의 형편이 그렇지 못하구나. 너에게는 장례 선물로

이 어미의 눈물과 낯선 해안의 모래 한줌이 주어지겠구나.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13권 494∼526행

 

 

 * * *


  

         헤카베 

 

아아, 기구한 내 팔자! 대체 무엇을 탄식하지?

무엇을 비탄하고, 무엇을 통곡하지?

서글픈 노년의 서글픈 내 신세!

참을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이 종살이! 아아, 슬프도다.

누가 나를 돕지? 어떤 가족이,

어떤 도시가? 영감도 가고,

자식들도 갔는데.

어디로 가지? 이리? 저리?
어디로 향하지? 어디서 신이,

어디서 정령이 나를 도울까?


  - 에우리피데스,《헤카베》154-164행

 

 


 

         헤카베 

 

내 딸아, 불행이 하도 많아 어느 것부터 상대해야

할지 모르겠구나. 내가 한 가지 불행에 집착하면

그 불행이 나를 놓아주려 하지 않지만, 또다시 새로운

고통이 거기서 나를 끌고 가 불행을 새로운 불행으로

대체하니까 말이다. 지금도 나는 네 고통을 마음에서

지울 수가 없어 비통해하지 않을 수가 없구나.

한데 네가 고매한 태도를 보였다는 말을 전해 들으니

과도하게 비탄할 마음이 내키지 않는구나. 이상하지

않은가. 나쁜 토양도 신의 도움으로 시운(時運)을

타면 좋은 열매를 맺고, 좋은 토양도 필요한 것이

모자라면 나쁜 열매를 맺는 데 반해, 인간들의 경우

사악한 자는 언제 어디서나 사악할 뿐이고,

고귀한 자는 고귀한 자로 남아 어떤 불행에 의해서도

본성이 파괴되지 않고 항상 선하다는 것은 말이다.

······

오오, 훌륭했던 집들이여! 전에는 그토록 행복했던

가정이여! 재물도 가장 많고 자식 복도 가장 많던

프리아모스여! 그리고 아이들의 늙은 어미인 나!

우리는 옛날의 긍지도 잃고 완전히 영락하고

말았구려. 그러고 나서도 우리는 우쭐대고 있지,

어떤 이는 가장 아름다운 집에서 산다고 해서,

어떤 이는 시민들 사이에서 존경받는다고 해서,

그러나 그런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야. 공허한

망상과 허튼소리 외에는 아무것도 아니야.

어떤 불상사도 당하지 않고 그날그날을

보내는 자야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이지.

(헤카베, 막사 안으로 퇴장)


  - 에우리피데스,《헤카베》585-629행

 

 

 

 * * *

 

 

 


트로이아가 함락되고 남자들이 도륙된 뒤 전리품이 된 트로이아 여인들은 정복자들의 처분을 초조하게 기다린다. 전령 탈튀비오스가 나타나 그들은 정복자들에게 배분될 것이라며, 왕비 헤카베는 오뒷세우스의 몫이 되고 그녀의 딸 캇산드라는 아가멤논에게 배정되었음을 알린다. 또 다른 딸 폴뤽세네는 아킬레우스의 무덤가에 제물로 바쳐졌음이 밝혀진다. 예언의 능력이 있는 캇산드라가 나타나 정복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재앙들을 말해준다. 네옵톨레모스의 몫이 된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어린 아들 아스튀아낙스를 데리고 나타난다. 이어서 탈튀비오스가 아스튀아낙스를 데려가려고 되돌아온다. 후환이 없도록 아스튀아낙스를 죽여 없애기로 그리스군 장수들이 결의했던 것이다. 메넬라오스와 헬레네의 상봉 장면이 이어지는데, 그는 헬레네를 죽이기로 마음먹었지만 헬레네가 애걸복걸하자 마음이 약해져 죽여도 나중에 죽이겠다며 그녀를 데려간다. 탈튀비오스가 또다시 아스튀아낙스의 시신을 갖고 나타나자 헤카베가 손자의 장례식 준비를 한다. 화염에 싸인 트로이아가 무너지는 가운데 트로이아 여인들은 노예 생활을 하기 위해 그리스군 함대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전집1』, 《트로이아 여인들》'작품 소개' 중에서

 

 

         헤카베 

 

그대들은 헥토르의 둥근 방패를 땅에 내려놓으시오.

나에게는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괴로운 광경이오.

지혜보다 무기를 더 중요시하는 아카이오이족이여,

이 아이가 무엇이 두려워 그대들은 전례 없는 살인을

저질렀단 말이오? 이 애가 쓰러진 트로이아를

언젠가 다시 일으켜 세울까 두려웠나요?

······

 

네 엄마가 그토록 자주 빗겨주며 입을 맞추어주었건만,

그곳에서는 이제 박살난 두개골 사이로 살육이

비웃고 있구나. 끔찍하여 더 말하고 싶지도 않구나.

손들이여, 귀엽게도 아비의 손을 꼭 닮았건만

너희들도 마디마디 삐어진 채 내 앞에 놓여 있구나.

가끔 호언장담하던 귀여운 입이여, 너도 가고 없고, 내게

거짓말을 했구나. 너는 잠자리로 파고들며 말하곤 했지.

"할머니, 나는 할머니를 위해 머리털을 많이 잘라 바치고

할머니의 무덤으로 친구들을 한 패 데려가

애절한 작별 인사를 드릴게요." 그런데 불쌍한 것아,

네가 나를 묻는 게 아니라 내가 너를 묻는구나.

너는 아직 젋고, 나는 고향 도시도 자식도 없는 노파인데도!

아아, 그 많은 포옹도, 내 보살핌도,

네 잠도 사라져버렸으니 시인(詩人)은

네 무덤에 뭐라고 묘비명을 쓸 수 있을까?

"그 옛날 아르고스인들이 두려운 나머지 이 아이를

죽였도다!" 헬라스에게 얼마나 수치스런 묘비명인가!

너는 아버지의 유산은 밪지 못했지만, 그 안에

묻히도록 등이 청동으로 된 이 방패를 받게 되리라.

헥토르의 잘생긴 팔을 지켜주던 방패여,

너는 가장 용감한 보호자를 잃고 말았구나.

얼마나 달콤한가, 네 멜빵에 남아 있는 그 애의 손때는,

그리고 네 둥근 가장자리에 남아 있는 그 애의 땀자국은!

그것은 헥토르가 너를 턱에다 밀착시키고 싸우며

그토록 자주 이마에서 흘리던 땀이 나니더냐! (여인들에게)

자, 그대들은 이 불쌍한 시신을 위해 장식물을 가져와요.

지금 수중에 있는 것들 중에서. 운명이 성대한 장례는

허락지 않으니까. 너는 내가 가진 것들을 받게 될 것이다.

잘나간다고 해서 안전하다고 믿고 기뻐하는 자는

어리석도다. 우리의 행운은 변덕쟁이처럼

어떤 때는 이리 뛰고, 어떤 때는 저리 뛰는 버릇이 있어

언제까지나 행복한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말이다.


  - 에우리피데스,《트로이아 여인들》1,156-1,206행

 

 

 

(에우리피데스 지음 / 천병희 옮김,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1』에서 인용)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