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으로 읽는 변신이야기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오비디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Narcissus], 미켈란젤로 메리시 다 카라바조, 1594 ~ 1596, 로마 국립고대미술관

 

 

 

소년은 사냥에 대한 열성과 더위에 지쳐

이곳에 누워 있었으니, 그곳의 생김새와 샘에 끌렸던 것이다.

그는 갈증을 식히려다가 그사이에 또 다른 갈증을 느꼈다.

물을 마시다 물에 비친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 그것에 끌려 실체 없는

희망을 사랑하게 되었고, 그림자에 불과한 것을 실체로 여겼던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보며 찬탄했고, 파로스 산 대리석으로

만든 조각상처럼 꼼짝 않고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땅바닥에 옆드려 쌍둥이별자리와도 같은 제 눈들과,

박쿠스나 아폴로에게나 어울릴 제 머리털과,

아직 수염이 나지 않은 턱과, 상아 같은 목과, 우아한 얼굴과,

눈처럼 흰 색조와 어울린 홍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찬탄의 대상으로 만드는 그 모든 것을 찬탄했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자신을 열망했으니, 칭찬하면서 스스로 칭찬받고,

바라면서 바람의 대상이고, 태우면서 동시에 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의 눈을 속이는 샘물에다 입맞춘 것이 그 몇 번이었으며,

눈에 보이는 목을 끌어안으려고 물속에 두 팔을 담갔다가

거기서 자기 자신을 껴안지 못한 것이 그 몇 번이었던가!

그는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으나, 그가 보고 있는 것이

그를 불태웠다. 그리고 그의 눈을 속인 바로 그 착각이

눈을 흥분시켰다. 잘 믿는 자여, 왜 그대는 달아나는 허상을 헛되이

붙잡으려 하시오? 그대가 좇고 있는 것은 어디에도 없소.

돌아서 보시라. 하면 그대가 사랑하는 것도 없어질 것이오.

그대가 보고 있는 그것은 반사된 모습의 그림자에 불과하며

그 자체로는 실체가 없소. 그것은 그대와 함께 오고 그대와 함께

머물러 있으니, 그대와 함께 떠날 것이오. 그대가 떠날 수 있다면.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3권 205∼224

 

 

 

[나르키소스와 에코], 니콜라 푸생, 17세기 전반경, 드레스덴 국립 미술관

 


"오오! 숲들이여, 사랑의 고통을 일찍이 나보다 더 잔인하게

느껴본 자가 있는가? 너희들은 많은 애인들에게 편리한 은신처였으니

잘 알리라. 너희들은 그토록 여러 세기를 살았거늘,

기나긴 세월 동안 이처럼 초췌해진 자를 본 기억이 있는가?

나는 사랑하여 바라보지만, 내가 바라보고 사랑하는 것을 찾을 수가

없구나. 나는 사랑으로 인해 그만큼 큰 혼란에 빠져 있구나.

그리고 나를 더욱더 슬프게 하는 것은, 우리를 갈라놓는 것은

대해(大海)도, 길도, 산도, 성문 닫힌 성벽도 아니라는 것이다.

약간의 물이 우리를 떼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 자신도 안기기를

원하고 있다. 내가 맑은 물을 향하여 입술을 내밀 때마다

그도 얼굴을 위로 한 채 나를 향하여 입술을 내미니까 말이야.

그대는 내가 그에게 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겠지. 사랑하는 자들을

갈라놓는 것은 하찮은 것이니까. 그대가 뉘시든 이리 나오시오.

비길 데 없는 소년이여, 왜 나를 속이며, 좇는 나를 피해 어디로

가는 거요? 확실히 내 외모나 나이 때문에 그대가 나를 피하는 것은

아닐 것이오. 요정들도 나를 사랑했으니까. 그대는

상냥한 얼굴 표정으로 내게 뭔가 희망 같은 것을 약속하고 있소.

내가 그대에게 팔을 내밀면 그대도 내밀고,

내가 웃으면 그대도 따라 웃고, 내가 울 때면 그대의 볼에서도

가끔 눈물이 비쳤소. 신호를 보내면 그대도

고개를 끄덕여 대답하오. 그리고 그대의 아름다운 입의

움직임으로 미루어 그대는 내 말에 대답하는데도 그 대답은

내 귀에까지 닿지 못하는구려. 그는 바로 나야. 이제야 알겠어.

내 모습이 나를 속이지는 못하지. 나는 나 자신에 대한 사랑으로

불타고 있는 거야. 내가 불을 지르고는 괴로워하고 있는 거야.

어떡하지? 구혼 받아? 구혼해? 한테 구혼은 왜 해?

내가 바라는 것이 내게 있는데, 풍요가 나를 가난하게 만든 거야.

아아, 내가 내 몸에서 떨어질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랑하는 자의

기도치고는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내가 사랑하는 것이 내게 없었으면

좋겠어. 벌써 괴로움이 내게서 힘을 앗아가니, 내 인생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고 나는 초년(初年)에 요절하고 마는구나.

내게 죽음은 아무렇지도 않아. 죽게 되면 나는 괴로움에서

벗어나게 될 테니까. 나는 사랑 받는 그가 더 오래 살기를 원하지만

이 하나의 숨이 끊어지면 우리는 둘 다 함께 죽게 되겠지."

 

 - 오비디우스, 『원전으로 읽는 변신 이야기』, 제3권 442∼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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