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로우의 강 - 강에서 보낸 철학과 사색의 시간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지음, 윤규상 옮김 / 갈라파고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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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여행하는 내내 강물 따라 흐르기를 바라는 독자는 내해內海를 다니는 자신의 작은 배가 큰 물결이 이는 바다에 이르면 바닷물이 자꾸 솟구쳐 올라와 멀미가 난다고 불평한다. 하지만 바다의 흐름은 배 쪽으로 밀려오는 것이 아니라, 해와 달 쪽으로 밀려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런 책들을 읽으며 글이 지닌 흐름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숨 쉴 때처럼 페이지마다에서 솟아오르고 드르릉 돌아가는 맷돌처럼 옳으니 그르니 따지는 생각들을 싹 씻어버리리라는 것을 짐작해야 한다. 물결이 자신의 앞이나 뒤에서 좀 더 높은 곳까지 솟구쳐 오르는 것이다.

홍수처럼 잔물결을 일으키고, 물방아 시내처럼 둑길 아래로 즐거이 흘러가는 글들도 많다. 그런 이야기가 마루터기에까지 닿을 때면 피타고라스, 플라톤, 얌블리코스155가 그 곁에 멈춰 선다. 그런 작가들의 길고 끈질기고 힘줄 많은 글월들은 꾸준히 흘러가며 자연스럽게 뒤섞인다. 그것은 군인이나 사업가를 위한 글처럼 읽히는데, 그 안에 신속함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가들과 비교할 때 엄숙한 사상가나 철학자들은 이제껏 배내옷을 벗지 못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들은 지난밤 선봉이 진을 친 곳에 오늘밤 후미가 다시 진을 치는 로마군대의 행진보다도 느리다. 슬기로운 얌블리코스는 물기 많은 늪지처럼 소용돌이치며 반짝인다.

(중략)

처음부터 끝까지 건강하기만 한 글은 무척 보기 드문 게 사실이다. 사람들은 글에 담겨진 생각에서 나오는 빛깔과 향기를 놓쳐버리기 일쑤이다. 빛깔이야 어떻든 아침이슬과 저녁이슬을 보면 기쁨을 느끼고, 색깔이야 어떻든 하늘을 보면 기쁨을 느낄 수 있단 말인가. 가장 매력적인 글은 지혜가 가득 담긴 글이 아니라,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는 진솔한 글이다. 말하는 이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안다는 듯, 탁 터놓고 잘라 말하기에, 슬기로운 글은 못 된다 해도 적어도 확실히 터득된 글이기는 하다.


월터 롤리 경161의 글은 대가 중에서도 눈에 확 뜨이므로, 글투가 뛰어나다는 것만으로도 그는 자세히 살펴볼 값어치가 있는 인물이다. 그의 글투에는 사람의 발걸음과 같은 자연스러운 강약이 있고, 현대 최고의 저술가도 내놓지 못하는 글월과 글월 사이에 숨 돌릴 공간이 있다. 그의 글은 영국의 공원, 좀 더 정확히 말해 높이 자란 나무들이 잔 나무들을 억눌러 빈 공간을 말을 타고 달릴 수 있는 유럽의 숲과 같다.

당시의 모든 뛰어난 작가들은-우리 시대를 헐뜬는 말처럼 들리더라도 용서하기 바란다-오늘날의 작가들보다 훨씬 활기 넘치는 글을 척척 써냈다. 우리가 현대 작가를 읽던 중에 그들의 글에서 끌어온 구절들을 읽게 되면 돌연 흙질이 좋고 깊은, 싱싱한 초록의 땅을 만난 것처럼 느껴진다, 겨울철이나 이른 봄날에 뜻밖에 싱싱한 풋나무를 보게 되듯, 푸른 나뭇가지 하나가 페이지에 가로놓인 것처럼 보여 기분이 상쾌해진다. 이런 글들을 꾸준히 읽어가다 보면 삶의 체험에 놓인 바탕을 알게 된다. 짧은 글에 담겨진 암시를 통해 많은 일들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글은 사상과 경험에 뿌리를 내렸기에 상록수처럼 푸른 잎이 우거져 꽃처럼 피어나지만, 우리 시대의 꾸며낸 글들은 수액과 뿌리는 없이 꽃의 화려한 색깔만 띠고 있다. 모든 사람은 말이 지닌 꾸밈없는 아름다움에 매료되게 마련인데도, 그들은 그렇게 현란한 글투로 남을 흉내 낸 글을 쓴다. 그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글을 화려하게 쓰고 싶어 한다.

(중략)

모든 글은 오래된 단련의 결과이다. 일반 서민들의 말이 아니면 어디에서 표준영어를 찾을 수 있겠는가? 가장 좋은 말은 말하지 않은 것과 다를 바 없으니, 그런 말은 글쓴이가 더 잘할 수 있었을 어떤 행위와 무척 가까운 사이이기 때문이다. 아니, 아주 급한 사정에 의해서든, 불운에 의해서든 그것이 행위를 대신한 것과 다를 바 없으므로, 결국 가장 진실한 작가는 사로잡힌 기사의 몸이어야 한다. 운명의 여신은 그런 계획을 갖고서 롤리로 하여금 실제의 삶을 넉넉히 겪어보도록 한 다음 그를 죄수로 만들어, 그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삼고, 자신이 했던 중요하고도 진실한 행동을 말로 옮기도록 한 것이 아닐까.

(중략)

한가로이 공부만 하는 것보다 더 수치스러운 일이 있을까? 장작 패는 법이라도 배워라. 학자도 땀 흘려 일하고, 여러 사람과 대화하고, 갖가지 일을 보고 들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 꾸준히 해야 하는 노동은 공부 못지않게 집중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글과 말에서 쓸데없는 수다와 감상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노동을 하는 것이다. 당신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일하고 나서 그 시간 동안 생각의 흐름을 놓쳤다고 안타까워할지 모른다. 하지만 저녁에 집으로 돌아와 그날의 경험을 단 몇 줄이라도 적어보라. 상상력은 뛰어나나 게으른 공상에 불과한 글보다는 훨씬 음악에 가까운 진실한 글이 나올 것이다. 작가란 모름지기 노동자들의 세계를 다뤄야 하므로, 그의 삶의 원칙도 그러해야 한다.

짧은 겨울해가 지고 어둠이 오기 전에 패서 묶어내야 할 장작들이 많이 쌓여 있는 작가를 상상해보라. 그는 일터에서 쓸데없이 춤을 추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시간을 아껴 굳은살이 박힌 투박한 손으로 도끼를 들어 장작을 내리찍는 소리가 쩌렁쩌렁 숲을 울릴 것이다. 이렇게 일하는 투박한 손에서 나온 그의 글들은 도끼 소리가 잦아들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도 독자들의 귀에 쩌렁쩌렁 울릴 것이다. 학자는 손에 못이 박힐 정도로 강인한 진실을 쓰기 위해 애써야 한다. 손에 박힌 못이 그가 쓰는 글을 튼튼하게 만들어준다. 실제로 몸이 활기차지 못하면 정신의 노력이 나아질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도 없다. 우리는 글 쓰는 훈련을 거의 받지 못한 고된 노동을 하는 사람들이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되는 처지에 내몰렸을 때, 금세 힘차고 정확한 글투에 도달하는 모습에 깜짝 놀라곤 한다. 솔직하고 생기 있고 성실하면서 잘 다듬어진 글투는 학교가 아니라 농장과 일터에서 더 잘 배울 수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런 투박한 손으로 쓰여진 글들은 잘 무두질된 가죽끈이나 사슴의 근육, 소나무 뿌리에 못지않게 질기고 억세다.

뛰어난 표현과 관련하여 한 마디만 더 덧붙이자면, 훌륭한 생각이 형편없는 의복에 싸여 있는 경우는 정말 보기 드물지만, 훌륭한 생각이라면 월로프족166의 입술에서 나온 말일지라도 뮤즈의 아홉 여신과 미의 세 여신이 맞들어서 그에 알맞은 옷을 입혀줄 것이다. 그런 교육이 바로 교양이고, 그 속에 든 재치가 대학에 기금을 가져다준다.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는 이렇게 배겨내지 못하는 온갖 장식들을 조금씩 없애버림으로써 이룩되었다. "시빌167이 오랜 세월 이어져올 수 있었던 것은 신의 능력을 받아 진지하고 꾸밈없으며, 향내 풍기지 않는 영감을 받은 입술로 말했기 때문이다."

학자는 될수록 자주 농부가 소를 부르는 소리에서 강조하는 방법과 특징을 배우려 애써야 한다. 농부의 소 부르는 소리가 글로 쓰여진다면 공들인 자신의 글보다 훨씬 나을 것임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누구의 글이 진정으로 공들인 글일까? 우리는 정치가나 문학가의 얄팍하고 나약한 미문美文에서 벗어나 한 달 동안 해야 할 일들을 간단히 적어놓은 농부의 달력이나 작업일지와 같은 것들로 관심을 돌림으로써 활달한 기풍과 정신을 되찾아야 한다. 글이란 글쓴이가 펜 대신 쟁기를 집어든다면 끝까지 깊고 곧게 밭고랑을 낼 것이라는 느낌을 읽는 이에게 주어야 한다. 학자라도 활달하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되고 진지한 노동이 있어야 한다. 그런 뒤에 굳게 펜을 잡아야만 도끼나 칼을 휘두르듯이 펜을 품위 있고 효과적으로 휘두를 수 있다.

키가 자기 종족의 표준을 훌쩍 넘어서고, 허리둘레 또한 모자라지 않은 일부 문학가들이 갈겨대는 얄팍하고 생기 없는 미문을 생각할 때, 그 근력과 힘줄의 엄청난 낭비에 깜짝 놀라게 된다. 어떤가, 이러한 대비가! 엄청난 몸집과 나약한 글투 사이의 이러한 어긋남은 왜 생기는가? 황소도 내리쳐 쓰러뜨릴 수 있는 두 손으로 숙녀의 손으로도 가볍게 해치울 수 있는 무른 물건이나 자르다니! 이것이 등에 뼛골이 있고, 뒤꿈치에 아킬레스건이 있는 건강한 사내가 할 짓인가? 스톤헨지168에 커다란 돌을 세운 이들은 단 한 번 힘을 썼을 뿐인데도 온힘을 다했기 때문에 그 일을 해냈다.

그렇지만 대단히 능률적인 노동자는 하루를 일에 치여 보내는 법이 없다. 오히려 어슬렁어슬렁 일하는 그는 안락하고 한가하다. 지극히 하고 싶은 일이 아니면 아예 손도 대지 않는다. 그는 열매를 맺힐 시간의 알맹이만 성실하게 이용한다. 암탉이 왜 하루 종일 알을 품어야 하는가? 암탉은 하루 한 번 이상은 알을 낳지 않는다. 암탉은 또다시 알을 낳기 위해 모이를 쪼아대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는다. 손톱 깍는 일과 같은 하잖은 일일지라도 그에게 시간을 넉넉히 갖게 해주자. 새싹은 짧은 봄날이 마치 영원이라도 되는 양 서두르거나 허둥대지 않고 천천히 돋아난다.

           그러니 자신의 욕구를 돋우는 데 한 시절을 보내라.
           꿋꿋이 서 있으면 서두르지 않아도 자라난다.

어떤 시간은 일을 하기에는 도무지 알맞지 않고, 숨을 들이쉴 작정이나 하기에 알맞은 것 같다. 그럴 때는 피가 끓어 당장 달려들려고 조바심을 낼 일이 아니라, 반쁨은 벌써 이루어졌다는 듯 조용히 뒤로 물러나 문을 닫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서 이리저리 거닐어야 한다. 씨앗이 자체에 들어 있는 배젖으로 싹을 틔워 땅 밑으로 내려 보내고 나서야 햇빛을 향해 자라나듯, 우리의 결심도 그렇게 하고 나서야 땅에 뿌리를 내리고 굳건해진다.(130∼136쪽)


주석
155. Jamblichus(245∼325): Iamblichus Chalcidensis로도 알려져 있다. 후기 신(新)플라톤 철학과 서구 이교(異敎) 사상의 방향에까지 큰 영향을 미친 아시리아의 철학자.

161. Sir Walter Raleigh(1552∼1618): 영국의 귀족, 시인, 작가, 군인,조신(朝臣),탐험가. 1591년 엘리자베스 여왕의 허락을 받지 않고 여왕 시녀와 결혼한 죄로 런던타워에 갇힌다. 풀려난 후 자신의 영지로 물러나나, 1594년 남미의 '황금 도시' 소식을 듣고 남미로 항해하고, 그 경험을 토대로 엘도라도 전설에 큰 기여를 한 책을 썼다. 1603년 엘리자베스 여왕이 죽고, 제임스 1세에 대항하는 모의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다시 런던타워에 갇히나 2차 엘도라도 탐험을 위해 풀려나지만, 이 탐험은 성공하지 못하고, 귀국 후 스페인을 달래려는 영국정부에 의해 살해된다.
166. Wolofs:세네갈과 감비아 대서양 연안에 사는 흔인 종족.
167. Sibyl: 델포이 신전이 세워지기 전 델포이 여자 예언자 시뷜레에서 온 말로, 예언자, 신탁을 전하는 사람의 뜻.
168. Stonehenge: 영국 Salisbury 평원에 있는 선사 시대의 거석기둥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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