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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유니버스 ㅣ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신이 갖고 있는 카드를 훔쳐보는 것은 어려울지 모릅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신이 주사위를 던지거나 텔레파시를 사용했다는 것은 조금도 믿을 수 없습니다.
차라리 신은 자연의 법칙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었다고 한다면 믿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확률적인 법칙이 있다는 것, 다시 말하면 신이 그때그때 주사위를 던지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나는 결코 믿을 수 없습니다. -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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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어려운 과학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재주를 타고난 모양이다. 이 책은 그가 '전기'에 관해 쓴 아주 흥미로운 책이다.
만약 전기가 사라진다면...... 완벽한 정전 사태가 일어나면 과연 사람이 몇 주나 버틸 수 있을까? 영화《오페라의 유령》에서 고혹적인 아리아를 들려주었던 에미 로섬(Emmy Rossum)이라는 여배우가 있다. 그녀는 이 영화에 등장하기에 앞서 출연한 어느 영화에서 엄청난 혹한에 갇혀 목숨이 간당간당한 적이 있었다. 바로 지구의 기상 이변 때문에 미국이 통째로 냉동실처럼 급속도로 얼어붙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린《투모로우》라는 영화에서의 모습이 그랬다.
그녀가 냉동 상태인 뉴욕의 도서관에 갇혀 오로지 벽난로의 '불'에만 의존해서 살아가는 상황은 이 책의 저자가 서문에서 가정한 '완벽한 정전 사태'보다도 훨씬 더 나쁜 상황의 가정이었을까? 그렇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자신의 가정대로 '만약에' 전기 자체가 사라진다면 그것은 태양이 꺼지는 것을 목격할지도 모를 것이라고 주장한다. 말 그대로 우주의 완전한 파괴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 전기는 어느 날 갑자기 탄생한 것이 아니다. 전기는 무려 130억 년 전부터 지금까지 쉼 없이 작동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신비로운 '전기'를 인류가 제대로 짚어낸 역사는 고작 200년 밖에 되지 않았다. 이 책은 한 마디로 과학자들이 전기를 찾아내고 그것을 인간생활에 활용하게 된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쓴 책이다.
이 책을 읽다보면 두 가지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첫 째는 어린 시절에 누구나 겪었을법한 '전기'에 얽힌 다양한 경험들을 새삼 떠올려보게 된다는 점이다. 또다른 한 가지는 '전기'의 발견에 큰 업적을 남긴 '위인' 혹은 '과학자'들을 새삼 두루 접하게 된다는 점이다.
초등학교때 자연 과목을 배울 즈음에 경험했던 '전기의 추억'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머릿속에 'on' 상태로 불이 들어온 채 깜빡거리면서 전기를 통(通)하게 해주었다. 꼬마전구와 전지를 직렬과 병렬로 이어붙이면서 불이 들어오는지를 확인하던 일, 건전지 속에 뭐가 들어있는지 깨트려보니 굵은 심과 시커먼 가루 밖에 없어서 실망스러웠던 기억, 라디오와 텔레비전 속을 뒤집어서 갖가지 모양의 트랜지스터를 구경하던 일 등등.
초등학교때 배운 자연과목은 중.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지구과학, 생물, 물리, 화학으로 세분되어 우리들의 머리를 아프게 했었던 추억도 새롭다. 패러데이의 법칙, 플레밍의 오른손과 왼손의 법칙, 암페어와 볼트와 와트, 뇌의 구조와 뉴런과 신경전달물질 등등이 이 책을 읽는 동안에 오랜 기억 속의 먼지를 털고 다시금 떠오른다. 마치 내 머리 속의 비디오 재생기가 수십년 묵은 녹화 테이프를 머금은 채로 스위치가 듬성 듬성 'on'으로 바뀌는 듯한 느낌이다. 여간 흥미로운 경험이 아니다.
위대한 과학자들의 얘기 또한 마찬가지다. 위인전처럼 인물사진과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곁들여 놓았다. 볼트씨, 앙페르씨, 와트씨는 기본이고, 벨, 헤르츠, 패러데이, 마르코니, 에디슨 등등 수많은 과학자들의 흥미로운 얘기들이 이 책 속에 가득하다.
알렉산더 그레이엄 벨이 농아였던 메이블을 위해 전화기를 발명하기 위해 애썼던 실험, 텅 빈 공간 속의 매질(媒質)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한 패러데이의 실험, 북대서양을 가로지르는 해저 전선 가설을 통한 작업 등은 결국은 거대한 공간을 뛰어넘어서도 서로 '통(通)'하고자 하는 인류의 오래된 숙원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 다름아닐 것이다. 오늘날 끊임없이 기술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휴대폰, 위성 GPS, 블루투스, 무선인터넷 등도 곰곰히 생각해보면 결국 어딘가에 있는 누군가와 끊임없이 '접속(Connect)'하고자 하는 인간의 필요를 좀 더 편리하게 해결하고자 하는 쪽으로 향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특히 헤르츠가 무선 파동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는 눈물겹다. 이 발견 덕에 마르코니(노벨상 수상자)의 원거리 무선 전신이 성공하였고, 그에 따라 1895년에 설립된 마르코니사는 아직까지도 세계적인 기업으로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1912년에 타이타닉호 침몰 소식을 2,253㎞ 떨어진 미국에서 수신하게 된 데이비드 사노프는 RCA라는 회사의 설립자가 된다. 이 회사는 라디오 기기를 판매해서 대성공을 거두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업계의 거목같은 존재로 여전히 남아있다.
2차 대전 당시의 영국 공군(RAF)와 독일 공군(루프트바페)의 싸움 얘기도 흥미롭다. 얼떨결에 RAF 제복을 입고 공수 침투 작전에 투입된 아마추어 무선통신사 콕스의 얘기는 2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전쟁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흥미롭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하루 아침에 영웅이 된 콕스가 침투작전에서 빼내온 레이더 기술이 '드레스덴 폭격'이라는 대규모 학살 현장에 사용된 것은 비참하다. 당시 폭격기 사령부의 군목이 이에 대해 '폭격의 윤리학 이전에 윤리학에 대한 폭격'이라고 항변했다는 대목까지도 친절히 소개해 놓았다.
실패의 원인은 기술에 있다기보다는 상상력의 부족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소프트웨어라는 개념을 발전시킴으로써 생각하는 기계를 고안한 앨런 튜링의 이야기는 이 책에서 남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트랜지스터의 발견과 실리콘의 발견은 현대의 가장 위대한 발견 가운데 하나라고 할 만 하다. 통하였느냐 혹은 안 통하였느냐 이것이 문제였고, 이 문제는 결국 '반도체'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나아가 '0'과 '1'로 표현되는 이진법을 바탕으로한 '디지털 세상'으로 발전하게 된다. '황의 법칙'으로도 유명한 삼성전자의 황창규 사장이 오늘날을 '규석기 시대'(Si, 실리콘의 재료인 규소와 시대를 지칭하는 구석기를 결합한 조어)라고 외치고 다니는 이유도 충분히 납득할만 하다.
'전기'에 대한 문제도 결국에는 '인간'의 문제와 연결되기 마련인가 보다. 우리의 몸 또한 전기의 작용으로 움직인다. 불멸의 코일인 DNA 조차 전기력의 통제를 받는다고 한다. 아드레날린이나 엔돌핀과 같은 수십가지 신경전달물질 또한 마찬가지이다. 전기를 띤 분자와 이온이 뇌 속에서 어떻게 움직이는지 알면 알수록, 우리는 기분에 대해 더 잘 분석하고 심지어 통제할 수 있다고 한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전기의 속성을 이해하여 새로운 기술을 탄생시키는 여러 단계 중 가장 최근의 영역이라고 말한다.
"깜박깜박 발생하는 단기 기억은 몇 초나 몇 분 만에 사라져버릴지 몰라도 우리의 더 깊은 기억들, 우리의 인간성 자체를 이루는 기억들은 뇌 세포들이 일으키는 전기적 역장의 배열이 유지됨에 따라 수시간, 수개월, 심지어 수십년 까지 끝없이 유지될 수 있다. ......
연약한 생명체인 우리 인간은 이 전하들이 때로 거칠게, 때로 규칙적으로, 때로 절도있게 움직이며 구성하는 세계 속에 잠시 살고 있을 뿐이다. 우리 또한 전기가 다스리는 세상의 한 부분인 것이다."
철학자인 모티머 J. 애들러는 단지 과학 지식을 늘리기 위해서만 과학 서적을 읽는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오히려 과학사나 과학 철학을 이해하기 위해 과학서적을 읽는다는 말이 더 적합할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 비춰보면 보더니스의 이 책은 과학사와 과학 지식을 늘리는 데는 매우 적합한 책인 반면, 과학 철학이 다소 부족하다는 아쉬움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이 점은 아마도 저자가 순수수학을 전공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주제넘은 상상도 해보았다. 그렇지만 이 책의 말미에 덧붙여진 '더 깊이읽기'와 '더 읽을거리'를 읽고 나서는 이런 오해를 풀게 되었다.
오히려 저자는 일부러 어려운 과학 철학을 꺼내지 않았을 뿐이라고 생각된다. 이 책에서는 수학자다운 무미건조함과 딱딱함이나 어려운 과학 철학은 좀체로 접하기 어렵다. 결국 저자는 어려운 과학 주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만드는데 최선을 다한 셈이다. 저자는 가급적 많은 사람들과 '통(通)'하기 위해 광대역 주파수를 골랐음에 틀림없다.
이 책의 저자인 데이비드 보더니스는 E=mc2라는 책의 저자로도 유명하다. 에너지는 질량과 빛의 속도의 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이 이 공식의 내용이다. 이 어려운 공식을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이 유명한 공식이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이론이라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마침 어제(18일)가 아인슈타인이 타계한지 50주년이 된다고 한다. 그는 상대성 이론 등으로 우주와 시간, 공간, 물질에 대한 개념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인물이다. 전세계는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기념해 24시간 동안 지구 한 바퀴를 도는 아인슈타인의 빛 행사를 가진다고 한다. 이 빛은 우리나라에도 오늘 저녁쯤에 도착한다고 한다. 오늘처럼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발견이 주목받는 날도 그리 흔치는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