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줄긋기)

조물주의 세심한 배려 144

사회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부당하고 정당한 이유 없는 악의(惡意)는 적절한 처벌을 통해 억제되고, 따라서 그와 같은 처벌을 하는 행위는 도덕적으로 옳고 칭찬할 만한 행위로 간주될 필요가 있다. 비록 인간에게는 자연적으로 사회의 안녕과 존속을 희망하는 욕망이 부여되어 있지만, 대자연의 창조주는 어떤 특정한 처벌행위가 이 목적을 달성하는 데 적절한 수단이 되는가를 발견할 수 있는 능력을 인간의 이성(理性)에 부여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것을 달성하는 데 가장
적절한 바로 그 처벌행위를 즉각적으로 그리고 본능적으로 시인할 수 있는 능력만을 인간에게 부여하였다. 조물주의 세심한 배려는 이런 점에 있어서도 많은 다른 경우처럼 추호도 어그러짐이 없다.

만약 이런 표현이 허용된다면, 그 고유한 중요성 때문에 조물주가 사랑하는 목적이라고 간주될 수 있는 모든 목적들에 대해서, 이와 같은 방법으로 그는 인간에게 끊임없이 그가 의도하는 목적을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부여하는 한편, 마찬가지로 인류에게 그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유일무이의 수단을 그 자체를 위해서 추구하고자 하는 욕망도 부여하였다.

그러므로 자기보존(自己保存)과 종족번식(種族繁殖)이야말로 조물주가 모든 동물들을 창조할 때 불어넣은 가장 큰 목적이라고 할 것이다. 인간은 이와 같은 목적을 추구하려는 욕망과 그 반대되는 것에 대한 반감, 생명에 대한 사랑과 죽음에 대한 공포, 종족의 계속성과 영속성에 대한 욕망과 종족의 완전한 소멸에 대한 반감을 부여받았다.


분개(憤慨)의 감정
149

분개(憤慨)는 방어를 위해서, 그리고 오직 방어만을 위해서, 천성이 우리에게 부여해준 감정인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정의를 지키는 보호장치이자 죄없는 사람을 지키는 안전장치이다.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에게 가해지려는 해악을 물리치고 이미 가해진 것에 대해서는 보복을 하도록 촉구한다. 그리하여 가해자로 하여금 자신의 부정한 행위를 반성하도록 하고, 나아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같은 처벌을 받을까봐 두려움을 갖도록 함으로써 유사한 죄를 범하지 못하도록 한다.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 156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가한 해악에 대한 우리의 정당한 분노 이외에는,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해칠 수 잇는 정당한 동기가 있을 수 없고, 만인의 공감을 받으면서 우리가 남에게 해악을 끼칠 수 있도록 하는 유인(誘因)이란 있을 수 없다. 우리 자신의 행복에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의 행복을 해치는 행위나, 어떤 것이 우리에게 마찬가지로 유용하거나 또는 그 이상으로 유용하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실제로 유용한 것을 빼앗는 행위나, 또는 이와 마찬가지 방식으로 타인을 희생시켜 가면서 다른 사람의 행복보다 자신의 행복을 중시하는 천성적인 선호(選好)에 몰두하는 행위는 공정한 방관자로서는 결코 공감할 수 없는 것이다.


자신의 행복 vs 전 세계의 행복
157

속담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그 자신에게는 전 세계일지 몰라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전 세계의 지극히 하찮은 부분에 불과하다고 한다. 비록 그 자신의 행복은 그를 제외한 전 세계의 행복보다 중요하다고 하더라도, 그의 행복은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그 이외의 다른 어떤 사람의 행복보다 더 중요하지 않다. 따라서 비록 모든 개인이 각자의 마음속에서는 자기 자신을 모든 인류보다 더 선호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가 다른 사람들을 정면으로 똑바로 쳐다보면서 자신은 이 원칙에 따라서 행동할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해서는 안 된다.


공정한 경쟁을 위반하는 것
158

부와 영예와 높은 지위를 향한 경주에서 사람들은 다른 경쟁자들을 이기기 위해 자신의 온힘을 다하여 달리고,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노력을 다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자기 경쟁자들 중 어느 누구를 밀어제치거나 넘어뜨린다면, 방관자들의 관용은 거기서 완전히 끝난다. 그것은 공정한 경쟁을 위반하는 것으로, 방관자들은 그것을 용납할 수 없다. 방관자들에게는 그의 방해를 받은 사람도 모든 면에서 그와 마찬가지로 중요하다. 즉, 방관자들은 이 방해자가 자신을 남보다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는 자애(自愛)에 공감하지 않으며, 그가 다른 사람을 해치게 된 동기에 공감할 수 없다. 따라서 그들은 피해자가 느끼는 자연스러운 분개의 감정에 기꺼이 동감하고, 가해자는 그들의 증오와 분개의 대상이 된다.


회한
160

이것이 바로 회한(悔恨: remorse)이라고 적절하게 불릴 수 있는, 인간이 느끼는 감정들 중에서 가장 두려운 감정의 본질이다. 이것은 과거의 행위가 도덕적으로 옳지 않았다고 하는 감각에 기인하는 수치심, 그 행위의 결과에 대한 비애, 그 행위로 인하여 고통을 받은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 그리고 자신에게 대하여 모든 이성적인 존재들이 갖는 분개가 정당하다는 인식에서 생겨나는 처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심으로 구성된다.


불의의 만연
163, 167

사회는 항상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침해를 입히려고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존립할 수 없다. 서로에 대한 가해 행위가 시작되는 순간, 서로에 대한 분개와 증오가 나타나는 순간, 사회의 모든 유대관계는 산산 조각나고,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그들 간의 불화 감정이 야기한 폭력과 대립에 의해, 사방으로 흩어지고 국외로 달아나게 된다.

만약 강도와 살인자들 사이에서도 어떤 사회가 존재하려면, 주지하는 바와 같이, 적어도 그들 간에 서로 강탈하거나 살해하는 것을 자제해야만 한다. 따라서 자혜(慈惠)는 사회를 유지하는 데 있어서 정의(正義: justice)보다 덜 중요하다. 비록 최선의 상태는 아닐지라도, 사회는 자혜 없이도 존속할 수 있다. 그러나 불의의 만연은 사회를 철저히 파괴시켜 버린다.
······
불의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파괴한다. 따라서 불의가 나타날 때마다 인간은 놀라고, 그대로 놓아두면 그에게 소중한 모든 것을 급속하게 파괴시켜 버릴 불의한 사건의 진행을, 중지시키려 달려든다. 만약 그가 온당하고 공정한 방법으로 그것을 중지시킬 수 없다면, 그는 힘과 폭력에 의지해서라도 그것을 타도해야 한다. 여하튼 그는 불의가 지속되는 것을 중지시켜야 한다. 따라서 인간은 종종 정의의 법을 위반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심지어 극형에 처해 가면서까지 정의의 법을 시행하는 것을 시인(是認)한다고 한다. 공공의 평화를 방해하는 자는 이렇게 해서 세상에서 제거되고, 다른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보고 겁이 나서 감히 그의 행위를 모방하지 못하게 된다.


정의는 모든 건물을 지탱하는 주요 기둥 163-164

정의(正義)는 모든 건물을 지탱하는 주요 기둥이다. 만약 그것이 제거되면 위대하고 거대한 인간사회라는 구조물은 틀림없이 한순간에 산산이 부셔지고 말 것이다. 그런데 이 구조물을 건립하고 지탱하는 일에 대하여 신은 특별하고도 소중한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정의의 준수를 강제하기 위하여, 즉 약자를 보호하고 난폭한 사람을 억제하고, 죄를 지은 자를 응징하기 위하여, 조물주는 인간의 가슴 속에 악행에는 악한 응보가 따른다는 인식과, 정의를 위반할 때 가해지는 응분의 처벌에 대한 공포를 인간 사회의 위대한 파수꾼으로서 심어 주었다.


우리에게 큰 기쁨 또는 빈번한 즐거움의 원인이 되는 생명이 없는 대상들에 대하여
178

우리는 우리에게 큰 기쁨 또는 빈번한 즐거움의 원인이 되는 생명이 없는 대상들에 대하여도 일종의 감사의 감정을 품는다. 한 선원이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난파선에서 도망쳐 나올 때 타고 왔던 나무판자로 불을 피운다면, 그의 행동은 부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일 것이다. 우리는 차라리 그가 그것을 주의와 애정을 가지고 어느 정도 귀중한 기념물로 보관하기를 기대한다. 사람은 자신이 오랫동안 사용해온 담뱃갑, 주머니칼, 지팡이를 좋아하게 되고, 그것들에 대해 진정한 사랑과 애정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 만일 그가 그것을 깨뜨리거나 분실한 경우, 그는 실제 손해의 가치와는 전혀 균형이 맞지 않게 속상해 한다. 우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살아온 집, 우리가 오랫동안 즐겨 찾고 감상하던 그늘과 신록을 제공해준 나무 등을 은혜를 베푼 자에게 표시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이는 일종의 존경의 마음으로 바라본다. 그러한 집이 허물어지거나 또는 그런 나무가 베어지는 것은, 비록 이루가 그것 때문에 어떤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어도, 우리를 대단히 우울하게 만든다.

고대의 드라이어드(Dryads)와 레어스(Lares)는 나무와 집의 수호신들인데, 최초에 이런 미신을 만들어낸 사람은 그런 사물들에 대해 자신이 가졌던 감정의 암시를 받아서, 만약 그런 사물들에게 생명이 없다면 그 스스로의감정이 비합리적인 것이 되므로, 그곳에는 생명이 있다고 보았던 것 같다.


보은의 목적
180

우리가 우리의 은인에 대하여 가장 매력을 느끼는 것은 그의 감정과 우리의 감정이 일치하며, 그리고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그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우리 자신의 가치를 중시하고 우리 자신을 존중해 준다는 점이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과 똑같이 우리를 평가해 주고,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하는 것과 똑같은 주의력으로 우리를 다른 사람들과 구별해 주는 사람을 발견하면, 우리는 매우 기뻐진다. 우리의 은인의 마음속에 이와 같은 호의적이고 유쾌한 감정을 가지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그에게 갚으려는, 즉 보은이 노리는 주요 목적 중의 하나이다.


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 181∼182

분개의 감정이 달성하고자 하는 주요 목적은 우리의 적으로 하여금 고통을 느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하여금 자신이 자신의 과거의 행동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고, 또한 그로 하여금 과거의 행동을 후회하도록 만들고, 그로 하여금 그가 해악을 가한 그 사람이 그와 같은 식으로 대접을 받아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만드는 데 있다. 우리를 해치거나 모욕을 준 사람에 대하여 우리로 하여금 분개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우리를 무시하는 태도, 우리보다 자기기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불합리한 태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언제라도 그의 편의에 따라 또는 기분에 따라 희생되어도 좋다고 생각하는 그의 터무니없는 자애(自愛: self-love) 등이다. 그의 행동에 나타난 두드러진 도덕적 부적정성, 그의 행동에 담겨 있는 큰 오만과 불의는 종종 우리에게 우리가 당한 해악 그 자체보다도 더욱 큰 충격을 주고, 우리를 격분하게 만든다. 다른 사람들이 응당 받아야 할 몫에 대한 보다 올바른 감각을 그에게 심어주는 것, 그가 우리에게 지고 있는 빚이나 그가 우리에게 행한 잘못을 그가 깨닫도록 해 주는 것 등이 우리가 보복하려는 주요 목적이다. 만약 이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다면 보복은 항상 불완전하다.


조심성 없는 행동 197

우리는, 한 사람의 조심성 없는 행동에 의해 다른 사람이 고통을 당해서는 안 되며, 비난받을 만한 부주의로 인해 발생한 손해는 부주의한 행위를 한 사람에 의해 배상되어야 한다는 것보다 더 공정한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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